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Jbenitora May 25. 2024

출근에 걸리는 시간과 추억의 상관관계

신규 사회복지사를 뽑으며 드는 생각

첫 국민학교는 집에서 한 블록 거리였다. 오후반인걸 까먹고 숨바꼭질하며 공중전화에 숨어 있다가 엄마에게 붙잡혀 학교에 끌려가도 지각하지 않을 거리였다.


부모님이 내 집마련의 꿈을 이뤄 이사를 가게 되고는 전학 간 국민학교까지 20분 거리가 되었다. 친구들과 같이 재잘재잘 얘기하며 다니면 먼 거리는 아니었다. 등하굣길에 산딸기를 따먹기도 하고 컴퓨터 가게에서 500원을 내고 플로피디스크에 게임을 복사해서 집에 오며 즐거워하기도 하였다.


중학교는 뺑뺑이로 정해졌는데 가까운 곳을 두고 꽤 먼 곳으로 배정받았다. 버스를 2번 타고 다녔는데 그땐 환승이 없을 때니 회수권을 하루 4장씩 써야 했다. 그래도 30분은 족히 걸렸다. 오전 수업만 하고 마치는 토요일에는 걷기도 했는데 1시간은 더 걸렸다. 그렇게 아낀 회수권 값으로 새우깡하나를 사서 먹으면서 집에 오면 그렇게 행복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의 또 몇 배 거리였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서 정류장에 내려서 또 15분을 걸어야 했다. 선생님의 몽둥이찜질을 피하려면 아침 만원 버스에 어떻게든 몸을 구겨 넣어야 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별이 빛나는 밤에' DJ의 목소리를 미니카세트를 통해 이어폰으로 들으며 막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갈 때 중학교 친구라도 만나면 그렇게 반가웠더랬다.  


대학교는 타 지역이라 아예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총 8학기 중에 운 나쁘게 기숙사 배정에서 떨어진 한 학기는 자취를 했다. 학교 공대 뒷 산의 오솔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민가였다. 비라도 오면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지 않으면 다닐 수도 없는 길이었지만 내 생애 첫 자취였다. 후레시 조명에 의지해 밤길을 걸을 때면 소나무 중간가지에 흰 소복을 입은 누군가가 내려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즐거웠던 건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냐는 경험 우선의 자의식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첫 직장은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였다. 아버지가 다른 차를 사시면서 그간 타시던 차를 물려주셔서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두 번째 직장 역시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였다.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는 사거리 한편에 위치하여 간간히 막히긴 했지만 넓은 도로가 있어 접근성이 좋았다. 회사 주변에서 술을 마시고 집까지 걸어도 30분이면 OK였다.


세 번째 직장은 집에서 차로 1시간 5분 거리였다. 아예 다른 도시에 직장이 있었지만 직장을 옮기기 1년쯤 전에 생긴 직통도로 덕에 1시간 내외면 출근이 가능했다. 대부분이 신호가 없는 고속도로 구간이어서 편도 75km 정도는 길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침을 깨우는 라디오 DJ의 활어와 같은 목소리를 벗 삼아 출근하였다.


집 옆에 사무실이 있고 잠시 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일도 바로 길 건너 건물에서 하고 있어서 지금은 출근 시간이 의미가 없다. 내 삶을 돌아보며 등교시간과 출근시간을 정리해 보니 통근시간이 길다고 고생한 것도, 짧다고 즐거운 것도 아니었다. 누구와 어울려 다녔는지, 어떤 마음으로 다녔는지가 그 시간을 힘들게도 즐겁게도 만드는 것이었다. 


며칠 전, 새로 사회복지사를 뽑기 위해 면접을 보는데 출근하는데 40분이 걸리는 사람과 20분이 걸리는 사람이 30분 차이로 면접에 참여했다. 최종 결정은 원장님의 몫이지만 40분보다는 20분을 뽑지 않을까 예상해 보았는데 역시나 20분이 합격했다.


6월부터 일하게 될 20분 거리에 사는 신규 사회복지사의 출근길이 앞으로 쭉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