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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May 20. 2024

현 시대 노인의 죽음

죽음에 대한 소회

현대의 노인들은 점점 몸이 약해지다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몇 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가족요양이다. 배우자나 자녀 혹은 며느리가 하루종일 수발을 한다. 두 번째 단계는 방문요양으로 하루 4시간 정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4시간의 자유를 맛본 가족들은 세 번째 단계인 주간보호센터 이용으로 넘어간다. 8시간의 보호도 힘에 부치면 네 번째 단계로 요양원에 입소를 하고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0년에 걸쳐 생활한다. 그 외 호스피스병동이나 요양병원 이용은 선택이다.


요양원에서 3개월 간 일을 하면서 돌아가신 분이 세분 있었다. 그분들은 모두 죽기 전에 갑자기 몸의 상태가 좋아지는 회광반조(回光返照) 현상이 있었다. 말이 별로 없던 분이 말을 한다거나, 혈색이 좋아진다거나 하면 보호자들에게 즉시 알리고 면회를 받았다.


세분 중 가장 젊은 한 분은 탈북민으로 울산의 대표 호텔에서 주방장을 지낸 분이었다. 그분은 먹는 것은 없는데 아랫배가 자꾸 부풀어 올랐다. 의사 소견을 받아 미음을 드리고 관리를 하였다.

"뭐 이런데가 다 있어!"

남들 주는 간식을 주지 않는다며, 식사 때 자기만 밥 대신 죽을 준다며 불평했다. 몸이 좀 회복되는 듯하여 정상식사로 돌릴 수 있는지 촉탁의사에게 검진을 받고 돌아온 그날 밤 그는 명을 다했다. 병원에 잘 다녀오라고 인사할 때 알겠다던 그 모습이 선한데 그의 자리는 금방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주간보호센터로 옮겨서 다시 3개월이 지났다. 처음 주간보호에 다니시는 어르신들을 보았을 때 요양원에 비해 건강하고 인지가 있는 모습에 마음이 가벼웠다. 수시로 배회를 하는 어르신들 몇 분 아니고는 응대에 그리 힘들지 않았다. 최소한 대소변을 가리고 걸을 수 있는 분들이었다.


요양원보다는 그 정도가 덜하지만 그분들도 몸과 정신이 약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주위 사람들에게 침을 뱉는 버릇이 있던 한분은 보호자와 의사의 상의하에 약을 몇 번을 조정하면서 침 뱉는 버릇이 없어졌다.


다만 약 조절 때문인지는 몰라도 옆에서 손만 잡아주면 잘 걷던 분이었는데 3개월 만에 지팡이를 짚고도 걷는 것이 힘들어졌다. 말을 걸면 소리 내어 대답을 하던 것도 소리 나는 쪽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는 수준이 되었다. 변의와 요의 표현이 안되어 시간 맞춰 모시고 가지 않으면 옷에다 실수를 해대었고 그 횟수도 일주일에 한 번에서 이틀에 한번 꼴로 잦아졌다.


사례관리를 하면서 운동을 시켜보고 인지향상을 위해 블록을 제공하여도 한번 나빠진 신체와 인지상태는 좋아질 줄 몰랐다. 다음 수순인 요양원입소를 권하였고 보호자는 가족들과 상의해 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이분께 신경을 쓰는 사이, 인지가 좋고 주간보호센터에서 가장 나이가 젊은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파킨슨을 앓고 있어 조, 중, 석식 전에 약을 먹지 않으면 몸이 떨리고 힘이 없는 분이었다. 약을 먹고 30분 정도 지나면 정상인과 같아 보이는 분이라 처음에는 그분의 어려움을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가 보였다.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중간에 깨면 떨리는 몸 때문에 6시경에 먹어야 하는 아침약을 3시에서 4시 사이 새벽에 먹었다. 그러면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모시러 가는 9시경에는 소위 약발이 떨어져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쩌다 정상적인 시간에 먹으면 센터에 등원해서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점심 식사 전에는 침대방에서 누워 지냈다. 몸에 힘이 없어 가래침을 꿀꺽하고 삼키는 것이 어려웠고 물을 먹다가 체하는 일이 많아 물을 진득하게 만들어주는 가루를 타서 마셔야 했다. 그는 우울증도 심해서 옆에 사람이 계속 있어주길 원했고 병원 진료받기 전까지 먹을 약이 하나라도 모자라면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였다.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밥을 안 먹는 날이 늘어가서 이 분도 요양원 입소를 하여 케어를 받으셔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별세소식이 들렸다. 월요일에는 병원 진료가 있어서 못 나온다고 이틀 전인 토요일에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께 얘기하였는데 바로 그 월요일에 돌아가신 것이었다. 


이분 역시 돌아가시기 전주에 평소 한 번도 참여한 적 없던 요가시간에 생활실에 나와 적극적으로 요가를 따라 했다. 경력이 오래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도 저분은 약만 제때 잘 드시면 된다며 자기들도 요가에 참여하시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하였다.


사망으로 인한 퇴소 처리를 하며 보호자께 사인을 조심스럽게 여쭸으나 정확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최근 식사를 통 못하셔서 약해진 기력에 약을 제때 드시지 못하여 침 한 번을 넘기지 못해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장례까지 끝나고 나니 송영폰에 요 몇달간 어르신이 남긴 문자만이 어르신의 존재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모두 죽을 것 같으니 오늘은 센터에 못 나가겠다거나, 힘이 없으니 집까지 데리러 올라오라거나, 새벽에 약을 못 삼켜 오늘 죽는날인 것 같다는 등의 절박한 문자들이었다. 


며칠 전 TV에 나오는 튤립을 같이 보며 여행 갔던 얘기를 하던 모습이 내가 본 어르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신나게 얘기하던 그의 웃던 모습을 떠올리며 세상을 떠나는 날의 내 모습도 같이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 이것은 살아생전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겼느냐와도 상관없다. 반사회적인 악인이 아닌 이상 누구나 태어날 때 축복 속에서 태어나야 하듯 누구나 죽을 때도 축복 속에서 죽는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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