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밖에서 먹기로 하였다. 장모님과 아내는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사무실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10분 내로 정리가 된다고 먼저 가라고 하기에 아이들과 나왔다. 아이들은 차를 타는 것보다 걷고 뛰고 싶어 했다. 목적지인 중화요릿집이 집에서 멀지 않아서 걷기로 했다. 장모님과 아내가 마치고 차를 타고 오면 도착시간은 비슷할 것이었다.
아이들 페이스에 맞춰 걸어가면서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보거나 길가에 핀 민들레 씨앗을 꺾어 불어야 했기에 걸음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걷기는 효율적으로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걷는 시간은 곧 세상을 탐색하고 노는 시간이었다. 우리 셋은 달리고 뒤를 보고 걷고 숨바꼭질을 하면서 이동과 놀이를 같이 하며 시간을 즐겼다. 아이들을 위해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일상에서 소소한 것을 함께 하면서 느끼는 이런 행복도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간혹 흘낏흘낏 아내가 운전하는 차가 오는 가를 살피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중화요릿집 앞이었다. 가게 내부의 불이 꺼져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 짜장면이 먹고 싶다던 첫째에게 왕돈가스를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돈가스 집까지는 아이들과 놀면서 걸으면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렇다고 요 앞의 갈비탕 집은 내 입맛에 안 맞고, 길 건너 돼지국밥은 아이들이 먹을지 알 수 없는 메뉴였다. 아이가 돈가스를 먹겠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처럼 걸어가다가 아내가 차를 타고 오면 같이 타기로 했다.
한 블록을 더 걸어 올라가다가 횡단보도가 나왔다. 편도 2차선 도로라 짧은 횡단보도였다. 오가는 차가 없었다. 일부러 잡기놀이를 유도해서 빠르게 건너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도로를 건너갈 때면 아이들은 으레 장난을 치려고 하기 때문에 건너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아빠 잡아봐라"라고 외치며 잽싸게 건너가자 아니나 다를까 그 모습을 보고 둘째가 뛰어왔다. 초등학생인 첫째는 학교에서 배운 데로 좌우를 살피며 건너올 것이므로 둘째만 잘 건너오면 되는 것이었다.
이때 저 멀리서 배달 오토바이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반이상 건너온 둘째가 아빠가 더 뛰지 않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자 자기를 잡아보라는 듯 다시 형아가 있는 건너편으로 뒤돌아 달려갔다.
"아니야, 이리 와!" 소리 내어 불렀지만 아이는 웃으며 도망갈 뿐이었다.
첫째가 둘째를 잡았다. 그렇게 하는 중에 오토바이는 가까이 다가왔다.
'첫째에게 다시 갈 줄이야'
"오토바이 지나갈 때까지 좀 잡고 있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둘째라서 첫째에게 꼭 잡고 있으라고 했다.
오토바이는 속도를 더 줄이더니 횡단보도 앞에 섰다.
'아이들이 지나가길 기다려주는구나'
첫째가 건너편에서 아이를 잡고 있을 때 후딱 지나가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천천히 다가오던 오토바이라서 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애들 보고 건너라고 말하려던 그때, 오토바이를 탄 초로의 아저씨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거, 가만있지 말고 애들 데리고 가세요!"
전혀 예측 못한 핀잔주는 말투에 불같이 화가 솟아올랐다.
"아저씨가 뭔데 애들을 데려가라고 하세요. 애들은 건너편에서 가만히 있잖아요."
"애들을 빨리 데려갈 생각을 해야지 말이야. 어른이 가만히 서서..."
"멈춰 서서 가만히 기다려 줄 것 아니면 그냥 지나가시면 되잖아요."
"뭐라고요?"
"그냥 지나가세요."
"아니 이 사람이, 왜 큰소리예요!"
"그러는 아저씨는 뭔데 눈을 치켜뜨고 큰소리로 애를 데려가라 마라 합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은 우리의 주고받는 고성을 듣고 쳐다보고 있었고 첫째와 둘째도 그 자리에 서있었다.
오토바이 아저씨는 더 할 말이 없어지자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액셀을 밟고 골목길 사이로 사라졌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 아이들에게 갔다. 아이들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했고 아이들은 여전히 보도블록 사이에 핀 민들레 꽃씨를 불어가며 놀았다.
'내가 그 아저씨의 한마디에 발끈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토바이 아저씨는 내가 마치 애를 방조하고 있는 사람처럼 얘기했다. 명령조로 말을 하니 듣는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아이들을 챙겨야 되는데 왜 안 챙기느냐'로 받아들여졌다. 아까까지 아이들과 같이 걸으며 놀아주던 속 깊던 내가 그 한마디로 부정당한 것이었다.
천천히 속도를 줄여 오던 오토바이가 멈췄으면 아이들을 보면서 "어서 건너가~" 라며 양보의 말이 나오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 것도 이유였다. 고개를 홱 돌려 나에게 "가만있지 말고 애들 데리고 가세요!"라고 고함 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차가 없을 때 횡단보도를 빨리 건너게 하려던 내 의도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애들을 놓고 먼저 건너가 버린 비정한 아버지만 남은 시점에서 분노는 생각할 사이도 없이 치솟아 올랐다.
'한마디 말의 위력이 엄청나구나!'
일부러 상대를 화나게 할 일이 없어야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도발이 필요할 때 빠르게 옆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하등 생각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그가 한 일을 쓸모없는 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돈가스 집으로 향했다. 중간에 아내를 만나 전골집으로 갔고 식사를 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몇 번을 되돌아보았다. 앞으로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할 일이 있을 때 오늘 일을 꼭 되새길 것이라 다짐했다. 오늘은 내가 당했지만 다음엔 내가 가해자일 수 있었다. 상대를 화나게 하지 않고 행동을 고칠 수 있는 여러 시도를 해볼 필요성을 깨닫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