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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ul 19. 2024

비워서 더 채운 어느 날

관심작가를 정리하였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구독하는 브런치 관심작가가 700명이 넘은 걸 알았다.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준 작가님들의 브런치를 방문하고 무지성으로 구독을 누른 결과였다. 브런치스토리가 상부상조하는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부지런히 눌렀다. 심지어 업로드된 글이 없는 아이디도 향후 작가로 발을 디딜 때 힘이 될 수 있을까 하여 제외하지 않았다.


나름 선행의 결과는 내가 좋아하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흥미 있어하는 작문스타일을 가진 작가와의 거리를 멀어지게 했다. 내 관심사가 아닌 분야를 올리는 작가 분의 글을 읽어서 여러 형태의 글을 접하는 건 좋지만 시간은 유한하지 않는가? 또한 구독을 한다면 정기적으로 들어가서 응원 댓글을 달고'좋아요'를 누르고 그게 안되면 글을 읽기라도 해야 할 텐데 700명이란 숫자는 그런 시도마저 아찔하게 만드는 숫자였다.

그러고 있는데 아내가 불렀다.

"집안 청소 좀 해야겠어요."

"내가 보기엔 깨끗한데요."

"안 쓰는 거 좀 버리고 책도 정리해야 돼요."


집 거실은 TV도 소파도 없지만 넓은 바닥은 책과 빨래로 엉망이었다. 둘째가 책을 책장에서 빼서 갖고 노니까 매번 하는 정리가 무의미한 생각에 놔두었다. 건조된 빨래들도 넓은 거실에 쏟아붓고는 즉시 개어두지 않았다.


이미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만큼 자란 둘째의 아기 식탁이 부엌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조립식 아기침대도 옷방구석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쓰지 않는 물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본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놀고 있는 이때 안 쓰는 물건들을 버리고 치웠다.

널브러진 빨래를 개어서 옷장에 넣고 책을 정리했다. 아기용품은 다 끄집어내어 집밖으로 뺐다. 너저분한 다른 것들도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반나절 정리에 집이 훤해졌다. 집안에 공명이 울릴 정도로 비워졌다. 밟히는 것이 없어졌고 동선을 막는 것도 사라졌다.

'마음을 먹고 움직이는 것이 어렵지... 치워 놓으니 이렇게 좋은걸...'


집 정리를 마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까부터 고민하던 관심작가 정리를 시작하였다.

'이왕 할 정리라면 구독자 수가 적을 때 하자!'


먼저 글을 올리지 않은 분들을 관심작가에서 제외하였다. 브런치 플랫폼에서 글이 업로드되지 않는 일면식도 없는 작가를 구독하는 것이 난센스였다. 글이 없지만 작가로서의 나를 응원하는 가족 및 지인들만 그들이 글을 올릴 때까지 독려하는 의미로 남겼다.


두 번째로는 글의 업데이트가 몇 달 간격이거나 최소 반년 간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는 작가분들이 대상이었다. 브런치 역시 꾸준한 크리에이터가 살아남는 곳일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정리 대상은 나와 결이 맞지 않는 글을 올리는 작가분들이었다. 소설이나 시를 올리는 분들, 짧은 글들을 매일 숙제하듯 올리는 분들, 부동산이나 돈벌이 방법을 쓰는 분들이 그 대상이었다. 글을 읽어도 내 감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제외했다. 이런 글을 올리시는 분들 중에서 내 글을 좋아하고 구독해 주신 분도 있겠지만 내가 그분들의 글을 보기에는 아직 지식이나 감성적으로 부족한 것이었다.


정리를 하면서 수백 명의 작가를 방문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정리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관심작가들을 정리하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숫자가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품을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소유를 하여야 행복한 것이었다.


누가 구독자 수가 많아지는 것을 싫어하겠는가? 그것이 많은 기회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를 보조해 줄 것을 누구나 아는 세상이다. 출간의 기회에도, 출간 후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저 의리로 친하다는 느낌으로 사준 책은 서재에서 곧 쫓겨난다는 것은 진리이다. 모든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이 찐 팬을 만나고 그들과 벗이 되어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비우고 나니 내 글을 읽어주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작가님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더 커지고 올린 글의 검색량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여유로운 마음이 가득 찼다.


비움 그것은 채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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