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와 실행력
보슬비가 내리던 날, 점심 무렵에 포항에 사는 친척동생이 놀러 왔다. 최근 반년 새에 3번째 보는 것인데 볼 때마다 차가 바뀌어 있었다. 그는 미국 주식을 했다. 국내주식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는 그는 차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동생이 주식 활황장에서 번돈을 헛되이 쓰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기가 번돈을 쓰고 싶은데 쓴다는데 뭐라 할 순 없었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바를 얘기해 줄 뿐이었다.
"형은 돈 많은 사람, 좋은 차 타고 다니는 사람이 전혀 부럽지 않아"
"그럼 누가 부러운데?"
"책 많이 읽는 사람이지. 특히 하루종일 돈 걱정 없이 책 읽는데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 제일 부러워."
"형도 책 많이 읽잖아."
"애들 키우느라 잘 못 읽어. 둘째가 이제 말하기 시작했는데 뭘. 얼마 전부터 긍정확언을 외치면서 천권 읽기를 같이 하고 있는데 짬짬이 읽으려니 시간 많은 사람이 부럽다."
"책 읽으면 뭐가 좋은데?"
"천재가 되는 길이 책에 있더라. 우리가 아는 위인들은 하나같이 독서광이었어. 세종대왕, 이순신,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다빈치 같은 사람들 말이지... 그들처럼 천재 한번 되어 보려고."
동생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없이 글 읽는 즐거움에 이어지는 글 쓰는 즐거움에 대한 내 일장연설을 묵묵히 들었다. 그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업데이트할 때마다 챙겨보는 팬 중의 한 명이었다.
말이 끝나고 나서 나도 동생에게 궁금한 걸 물었다.
"미국 주식은 어떻게 하는 거야? 내가 워런버핏의 가치투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장 증권사에 계좌 만드는 것부터 막힌다."
"형, 그럼 이 앱부터 깔아봐!"
시중은행의 2%대의 낮은 금리에 목돈이 놀고 있는 느낌이 계속 들고 있던 중이었다. 주식 고수인 동생을 만난 김에 투자를 하는 방법을 물은 것이었다.
동생은 미국주식을 사는 방법을 얘기하기 전에 주식의 가치를 보는 앱을 소개해 주었다. 간략히 차트 보는 법까지 알려주고 S&P500 지수를 따르는 대표 ETF를 소개해주었다. 처음 듣는 용어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검색을 해 가며 주식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구겨 넣었다.
"오늘 너를 안 만났으면 정기예금 만기 된 것을 또 예금에 넣었을 거다. 사람은 편한 것을 하려고 하거든… 오늘 증권앱 하나 정해서 깔고 예금 찾은 것을 증권거래 계좌에 넣는 것부터 해볼게"
하나도 모르겠던 것이 설명을 듣고 검색을 해볼수록 정리가 되었다. 동생과 같이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까지 이어서 얘길 나누며 미국주식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가까워졌다.
오후 3시가 넘어가자 비가 그쳤다. 대강의 이야기를 마친 우리는 동생이 가보고 싶다던 대왕암으로 갔다. 내 입장에선 생각만 하면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지만 동생은 평생을 살면서 처음 온다고 했다. 좋은 포인트를 짚어서 안내를 해주었다. 출렁 바위를 건너고 뷰포인트 몇 개를 돌고 숲길을 산책하였다. 대왕암까지 가려다가 젖은 길에 미끄러질 것을 염려해 돌아오긴 했지만 동생은 만족했다.
"그럼 갈게 오늘 시간 내서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
"뭘, 조심히 가고 다음에 볼 때까지 네가 사면 좋다는 주식을 사보고 주식공부도 해볼게. 배웠으면 즉시 써 봐야지. 너도 시간 날 때마다 흥미 있는 책을 잡고 읽어서 다음에 볼 때 나와 누가 많이 읽었는지 비교해 보자."
그렇게 동생을 보내고 주식초보용 유튜브 영상 몇 편을 보고 증권 앱을 깔았다. 거래용 계좌 외에도 cma, isa계좌가 뚝딱 만들어졌다. 은행계좌에서 잠자던 돈들을 증권계좌로 옮겼다. 놀러 온 동생 덕에 혼자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일 하나를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멘토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스스로 공부하여 투자할 곳을 찾아서 주식을 사고 묻어두는 것뿐이었다. 내가 동생을 멘토로 두어 한참을 망설이던 것을 바로 실행한 것처럼 동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주식으로 돈을 만진 일부 허깨비 부자들과 같은 길을 걷지 말고 남는 시간을 독서에 써서 마음 부자도 같이 되어 있기를 바라는 나의 오지랖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