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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Aug 06. 2024

풀에서 배우는 교훈

집 앞에 작은 화단이자 밭이 있다. 작년까지는 장인어른이 개간하여 파, 고추, 상추를 심었다. 올해는 이 밭을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다. 지금은 잡풀이 무성하다. 비가 오면 앞다퉈 자라는 잡초들로 빼곡해진 밭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용도로 쓸 뿐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밤이고 낮이고 섭씨 30도를 넘는 폭염이 왔다. 가만히 놔둬도 잡초들은 키를 키워가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자라고 있던 호박의 줄기는 누렇게 변했다. 이제야 주먹보다 조금 커진 호박의 성장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었다.


요즘 들어 포도도 잘 안 익는다 했더니 결국 포도와 호박이 시름시름 한 건 물을 충분히 주지 않아서였다. 해가 벌써 떠서 잠시만 서 있어도 땀이 줄줄 났다. 아침 7시였다.


호박과 포도나무에 물을 충분히 주었다. 밭을 손댈 생각이 없었는데 움직이다 보니 내 키보다 훨씬 높이 자란 잡풀들을 뽑을 마음이 생겼다. 화단밖으로 나오거나 호박의 성장에 지장을 줄 만한 녀석들을 뽑기로 했다.


하나하나 별개인줄 알았던 줄기들 몇 개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호박 주변의 잡초들은 물이 없는 척박한 환경에도 뿌리를 있는 힘껏 뻗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종삽으로 뿌리 끝을 따라 파는데 끝이 없었다. 결국 밭 구석에 던져놓았던 호미를 덤불 속을 뒤져 찾아냈다. 호미로 끊다시피 하여 하나씩 제거했다.


밭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땡볕에도 나와서 밭을 관리하는 이유가 농작물보다 더 질긴 생명력을 지닌 잡초의 제거 때문이었던가!'


시간을 아끼기 위해 키가 작은 잡초 몇 개를 동시에 잡고 뽑았다. 뽑히지 않았다. 하나씩 꺾으면 잘 꺾이는 화살도 몇 개를 뭉쳐서 꺾으면 잘 꺾이지 않듯 잡초도 하나씩 뽑아야 하는 것이었다. 여러 개를 잡고 뽑으려다가 아침이라 풀리지 않은 몸에 무리가 가고 있었다.


잡초를 몇 개를 뽑고 나니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솟아났다. 밭에서 바깥쪽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가시가 있는 나무 하나만 더 뽑기로 했다. 뿌리 위 두꺼운 줄기부터 잎이 달린 가느다란 줄기까지 가시가 돋아난 그 나무는 맨손으로는 잡을 곳도 마땅찮았다. 호미로 뿌리를 파내는데 그 깊이가 보통이 넘었다. 뿌리를 잡고 뽑으려니 끄덕도 하지 않아 줄기에 있는 가시를 호미로 긁어냈다. 줄기까지 잡아서 뽑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남아있는 가시에 오른손 엄지 옆을 베였다. 따끔하더니 가로로 1cm 이상 찢어지면서 선혈이 맺히기 시작했다. 얕게 베인 것이라 입으로 한번 빨고는 잠시 뒤 피가 멈춘 것을 보고 다시 작업을 했다.


어차피 제거를 할 생각이었지만 피를 본 이상 나무를 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깊게 박힌 뿌리는 호미와 삽으로 간신히 사방을 끊은 다음에야 뽑혔다. 뽑은 가시나무를 밭 가운데 덤불에 던져두고 나서야 내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손에는 손잡이에 피가 묻은 호미가 들려있고 흰 러닝셔츠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신고 있는 샌들은 흙 투성이에 얼굴에는 먼지와 솎아낸 풀에서 나온 가루가 잔뜩 묻어있었다.


잡초 몇 개 뽑고 났더니 오전 8시 30분이 되어있었다. 한 시간 반의 노동에도 전체 밭의 1/5도 채 정리하지 못했다. 여기서 마치기로 했다.


오전의 밭정리를 통해 몇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을 주지 않으면 작물부터 말라갔다.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물을 주면 잡초를 키우는 꼴이라는 것이다. 잡초의 생명력은 대단했다. 뿌리가 보통 깊은 게 아니었다. 비가 오지 않는 척박함에도 잡초는 살기 위해 뿌리를 사방으로 뻗는 노력을 하였다. 사람이 관리해 줘야 열매 맺는 작물과 비교되었다.

'기특하지만 어쩌랴. 실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건 작물인데.'


작은 잡초는 손으로 잡고 뽑으면 잘 뽑혔지만 두세 개를 같이 잡고 뽑으면 뽑히지 않았다. 작다고 무시할 수 없었다. 보잘것없는 잡초도 뭉쳐져 있으면 쉽게 뽑기 어려웠다.

'여러 병서에서 말하던 각개격파가 승리의 필수 조건이란 말이 이거였구나.'


누가 시키지도 않은 밭정리를 하고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나오니 에어컨을 틀어놓은 실내가 천국이었다.

'당연하듯 켜놓은 에어컨 덕에 이 더위에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거였네.'


베인 상처에 약을 바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처가 이만하길 감사합니다. 땀 흘려 일할 텃밭이 있어 감사합니다. 일하고 나서 시원하게 쉴 수 있어 감사합니다.'


책 하나 읽은 것보다 풀과의 실전을 치르면서 더 많은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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