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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Sep 12. 2023

두 번째 10km 달리기 대회

한 젊은 여성이 해가 뜨기 직전 어슴푸레한 강가를 달린다. 머리를 말총처럼 묶고 이어폰을 끼고 알록달록 예쁜 조깅화를 신고 있다. 카메라가 줌 아웃되면서 해가 서서히 뜬다.


어느 한 브랜드의 광고 영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대학생 시절 본 이 장면으로 인해 내 맘속에서 조깅이란 말은 곧 활기차고 부지런함을 뜻하게 되었다. 취업을 하면 출근 전 새벽조깅을 습관으로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였다.


졸업을 하고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고대하던 조깅을 할 수가 없었다. 일이 익숙하지 않아 한동안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었다. 1년쯤 지나자 서서히 일과 생활의 균형이 생겨났다. 이제 조깅을 해볼까 하니 더운 계절이었다. 땀에 흠뻑 젖는 조깅보다 시원한 물속에서 전신운동을 할 수 있는 수영이 더 매력적이었다. 여름 내내 아침 수영을 다녔다. 매일 아침 6시부터 한 시간 동안 수영을 하고 집에 오면 밥맛이 꿀맛이었다. 남보다 일찍 시작하니 하루가 길었고 그만큼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풀렸고 다음날을 위해 일찍 잠드니 저절로 건강해졌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해가 짧아지고 날이 추워졌다. 회식도 늘어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빠지는 날이 늘었다.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하자는 마음을 먹고 수영을 관두었다. 반년정도 쉴 요량이었지만 그다음 해, 또 다음 해도 수영장 가는 일은 없었다.


강산이 한번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회사와 집을 쳇바퀴처럼 도는 삶을 살고 있었다. 운동 없는 내 삶에 자극제가 필요했다. 퇴근하는 길에 현수막에 쓰인 글자가 눈에 띄었다. ‘마라톤 대회 참가자 모집’이라는 문구였다.


학창 시절 일 년에 한 번씩 체력을 측정하였다. 윗몸일으키기, 공 던지기 등 다양한 운동을 통해 학생들의 체력을 기록하였는데 ‘체력장’이라고 불렀다. 운동종목에는 달리기도 있었다. 몸집이 평균보다 작고 평소 운동을 따로 하지 않은 나는 100미터 단거리 달리기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한데 1,500미터 장거리 달리기는 다른 애들보다 처지지 않았다.


둘이 경쟁하며 뛰는 단거리와는 달리 장거리는 반 아이들 오륙십 명이 한 번에 같이 뛰었다. 운동장을 돌수록 쳐지는 애들을 제치며 등수를 높여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뛰다 보면 상위 열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부 이길 수 있었다. 비록 어릴 때 기억이지만 체력장에서 장거리 달리기의 좋은 기억이 있다 보니 마라톤도 잘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니 동생이 퇴근해 있었다. 한 달 뒤에 있을 마라톤에 대해 설명을 했다. 직업이 헬스 트레이너라 매일 운동을 하는 동생도 달리기 실력을 확인하는 겸 달리면 재밌겠다기에 같이 참가하기로 하였다. 마라톤은 5km, 10km, 하프, 풀 코스로 나뉘어 있었다. 풀코스와 하프코스는 초보가 참여하기에는 급이 높았다. 무리하지 않고 10km 코스를 신청했다. 대학교 축제 때 멋 모르고 같은 거리의 달리기 대회를 나갔을 때 후반의 체력 딸림으로 인해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간 내 체력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확인하는 지표도 될 것이었다.


계획을 세워 매일 아침 조금씩이나마 조깅을 하기로 하였다. 다음날,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났다. 해가 아직 머리를 내밀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침의 때 묻지 않은 맑은 공기가 상쾌했다. 도시의 소음도 아직 없었다. 동네를 10분 정도 뛰었다. 초장부터 무리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땀도 없이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은 15분, 그다음 날은 20분을 뛰었다. 몸은 여전히 가벼웠고 땀이 조금 났다.


평일 날 며칠 연습을 하니 완주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이 해이해지니 게으름을 피웠다. 주말에는 연습 시간을 비워놨으나 한 번도 뛰지 않았다. '기본은 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 가득했다. 그렇게 몸풀기만을 하다가 어느새 마라톤 대회날이 되었다.


출발 시간이 아침 9시라 8시까지 행사장에 도착했다. 반바지와 반팔 T 차림에 신발은 몇 년째 신고 있는 평범한 운동화였다. 번호표를 받아 옷에 부착했다. 요즘은 번호표에 칩이 심어져 있어 일일이 사람이 기록은 재지 않아도 알아서 시간이 기록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모이고 시간이 되자 풀코스부터 차례로 출발하였다. 드디어 10km 참가자들이 출발선에 섰다. 못해도 500명은 됨직한 사람들이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빵" 소리와 함께 동생과 같이 출발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바글바글 하던 인파가 한 줄로 늘어섰다. 동생은 먼저 간다며 속도를 내었다. 나는 처음부터 체력을 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내 분수에 맞춰 천천히 뛰었다. 2~3km쯤 달리니 속도가 비슷한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달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특별히 힘은 들지 않았지만 무릎이 삐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5km쯤 달리니 급수대가 있었다. 종이컵을 들고 반은 마시고 반은 이마에 부었다. 컵을 도로가에 던지고 달리는데 동생이 반환점을 돌고 나오고 있었다. 서로 씩 웃었다. 동생이 돌아 나왔으니 조금만 가면 반환점이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멀었다. 반환점을 돌고 나니 이제껏 뛰어왔던 거리만큼을 또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기만 하였다.


7~8km쯤 달리니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계속 뛰는 건 하겠는데 삐걱거리며 아프니까 겁이 났다. 내 그룹 사람들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속으로 '힘들다 힘들다'만 반복하고 있다가 문득 사촌 여동생의 말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사촌 여동생 집에 들렀을 때 여동생은 요새 자기는 직장을 다니며 친구들과 틈틈이 10km 달리기에 나간다고 하였다. 참여에 의의를 두고 재미 삼아 달려서 얻은 완주 메달이 족히 10개는 되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기록은 1시간 5분에서 10분 사이라고 했다. 자기를 포함한 달리기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여성들은 모두 이쯤일 거라고 하였다. 보통의 젊은 남자들은 평균적으로 1시간을 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제야말로 속도를 내어야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힘들고 무릎이 아프다고  속도로 달리면 평범한 젊은 여성들보다도  늦을  뻔했다. 심장이 터지지 않을 정도로만 힘을 내서 뛰었다. 이제 대회장까지 오르막이 하나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막을  버티고 걷고 있었다.  중에 간간이 보이는 뛰는 사람들도 걷는 것과 다름없는 속도였다. 그들을 하나하나 제치니 조금 생겼다.  죽을  숨을 헐떡이고 다리는 절뚝이고 있었지만 마지막 1km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결승선을 통과하였다.


'58분 00초'


버티던 몸에 힘이 빠지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 1시간을 넘기지 않은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이미 10분이나 일찍 들어와 쉬고 있던 동생이 물을 건넸다. 꽤 오래 잔디바닥에서 쉬고서야 절뚝이면서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동생과 점심을 먹었고 사우나에서 2시간을 휴식했다. 이날 무리한 무릎이 회복되어 정상적으로 걸을 때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이렇게 내 인생의 두 번째 달리기 대회는 10km를 58분에 뛰었다는 기록과 함께 무릎부상을 남겼다. '달리기 시합을 나가는 일은 내 인생에선 다시없다'는 생각과 함께 무릎이 약한 걸 알았으니 수영이나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강산이 한번 더 변하고 세 번째 대회를 출전하기까지 달리기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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