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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만해서 다행이다

둘째와의 두 번째 응급실

by CJbenitora

재작년 봄에 둘째가 처가에서 탁자 모서리에 눈썹 부분을 부딪히는 바람에 살을 꿰매어야 했다. 당시 피가 철철 쏟아지는데 너무 놀라서 소리만 '악 악' 질렀더랬다. 즉시 둘러업고 소아전문병원을 들렀다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여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날 당직의사 선생님이 상처를 꿰매어 주었고 가까이에서 보면 아직도 그 상처가 보인다.


다시 한번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2025년 2월 25일 저녁 7시, 둘째가 아내가 일하는 요양원 1층 응접실 소파에서 놀고 있다가 앞으로 미끄러지면서 대리석 탁자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히며 바닥에 쓰러졌다. "퍽" 하는 소리에 놀라 아이를 돌려 안으니 이마 한가운데가 움푹 파였고 피가 철철 쏟아졌다. 재작년 사고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 아내는 이번 사고를 바로 앞에서 목격하고는 그때의 나처럼 벌벌 떨었다. 나는 당시에 장모님이 하신 것처럼 침착하게 피나는 부위를 막았다. 다행히 간호선생님이 퇴근준비를 하고 계셔서 그 모습을 보고 상처에 거즈를 대고 붕대로 아이가 만지지 못하게 고정시켜 주었다.


아이를 급히 차에 태워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혹시나 하여 가까운 큰 병원 응급실에 가보았으나 아이가 너무 어려서 CT를 찍으려면 마취를 해야 하는데 마취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서 안된다고 하였다. 외상도 중요하지만 머리 내부의 손상을 봐야 했기 때문에 원래 가려던 대학병원 응급실로 다시 서둘렀다. 응급실은 첫 번째 왔을 때에 비해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아이는 그때처럼 엄마와 응급실로 들어갔고 첫째와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이마의 피는 멈췄기 때문에 최대한 흉터 없도록 다음날 성형외과에 가서 꿰매기로 하였고 CT촬영을 위해 둘째를 마취했다가 깨우는데 시간이 걸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기다리는 동안은 배고픈 줄 몰랐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고픔이 느껴졌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서 들어가기로 했다. 편의점이 보이고 그 옆 가게의 주차장이 비어있어서 거기에 차를 대기로 했는데 운전하던 아내가 원래 주차하는 길로 안 가고 질러가려 했다. 보도블록을 못 보고 그냥 돌진하다가 "펑"하며 차가 덜컹거렸다. 앞바퀴에 펑크가 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사고로 혼란해진 정신이 아직 제자리로 오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바로 길건너에 정비소가 있어서 그 앞에 차를 세우고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분법으로 사고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돈이나 시간을 들이면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사고와 어떤 일이 있어도 전과 같을 수 없는 사고이다. 전자는 이번에 겪은 사고이다. CT촬영결과 아이의 뇌는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 외상만 수습하면 된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가장 흉터 없이 상처를 잘 치료하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시간이 지나면 이전과 같을 수 있다. 얼마 전 내가 달리기 하다가 넘어져서 쓸린 팔꿈치 상처와 그 여파로 생긴 물혹도 정형외과에서 고름을 주사기로 빼내고 드레싱을 받으며 항생제를 먹으면 이전과 같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판단을 잘못하여 보도블록에 충돌해서 펑크 난 앞바퀴도 타이어만 갈면 이전과 같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넘어질 때 이마가 아니라 눈 쪽으로 떨어졌다면... 소파가 아니라 계단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졌다면...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도로로 뛰쳐나가서 빠르게 달려오는 차와 부딪힌다면... 이건 절대로 전과 같을 수 없다. 이런 사고는 억만금의 돈을 들여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막기 위해 평소에도 주의를 잘 살피고 이상이 있으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또 한 번 아이의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터져 나오는 사고를 겪으면서 아이는 바로 옆에서 보고 있다고 해도 눈을 돌리는 사이에 금세 사고를 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만하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언제 또 이런 사고가 있을지 불안한 것이 육아라서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이에게 첫 번째 사고 때는 막 뛰기 시작하던 시기라 기억이 안 나겠지만 이번 사고는 아이도 아픔이 생생한지 "소파에서 어떻게 되었어?" 하니까 "머리 쿵했지!"라고 한다. "장난치면?" 하니까 "안되지!" 한다. 아이도 이번 일로 위험한 일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부모의 마음은 모르고 깔깔대는 둘째를 보며 여러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만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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