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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Aug 10. 2022

게임 캐릭터도 펀치 버튼을 누르면 주먹을 휘두른다

 출근을 하자마자 아침부터 상사 W의 방에 불려 들어갔다. 어제 창원의 경영 클래스에 갔던 W는 거기서 사회를 본 직원 S를 1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혼냈다. 난 경영 클래스를 총괄한다는 이유로 S와 같이 혼나야 했다.


 나는 한 달에 2번 간격으로 학기별로 10회 내외로 운영하는 기업 CEO와 임원들을 위한 경영 클래스를 개설, 운영하는 팀의 장이었다. 우리 본부는 서울 인천 경기를 제외한 전국의 큰 도시에서 경영 클래스를 운영했다. 내가 직접 관리하는 대구와 부산 말고도 대전, 광주, 울산, 창원, 포항 클래스가 있었다. 이들 클래스는 숙련된 담당자들이 책임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었다. 그중 창원 클래스는 사회경력은 짧지만 이 직장에서는 나보다 오래 근무한 직원 S가 맡고 있었다. 창원은 다른 지역 클래스에 비해 우리가 원우(院友)라고 부르는 수업에 참여하는 경영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였다.


 박사 학력을 가진 상사 W는 간혹 강사로서 경영 클래스의 강단에 서기도 했는데 마침 전날 수업이 창원이었다. W는 강의를 하러 간 김에 클래스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확인 하고 원우들과 인사도 할 생각으로 S의 차를 타고 함께 움직였다. W는 반년 만에 가는 창원 클래스라 기대를 한 모양이었는데 S의 클래스 운영이 그 수준에 못 미친 모양이었다.


 보통 경영 클래스는 원우들이 퇴근하고 참여하는 저녁 강의이기에 담당자는 오후에 해당 지역으로 출발한다. 교재, 출석부와 같은 준비물을 캐리어에 챙기고 가는 길에 다과와 저녁 대용할 죽이나 김밥을 산다. 강의장인 호텔에 대략 1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호텔 지배인의 협조를 얻어 강의장을 정리하고 PT화면을 프로젝터로 띄우고 사운드를 점검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수업 세팅이 끝나면 다과와 교육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프린트물이나 리플릿을 강의장 뒤편에 깔아 둔다. 강의장 입구에 출석부를 깔고 원우가 수업시간에 패용할 명찰도 정리해둔다. 그날 강의할 교수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고 원우들이 오기 전까지 그날 전할 공지사항과 강의와 교수 소개를 연습한다. 원우들이  명씩 출석하면 인사를 하고 강의 시작 때까지 근황을 나누면서 원우기업에서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한다. 이것이 강의  담당자의 표준 이다.


 W의 말에 따르면 어제 S가 실수한 것은 크게 4가지였다.


 첫째는 수업시간 30분 전에야 강의장에 겨우 도착을 해서 수업 준비를 한 점이었다. 모든 게 세팅이 되고 원우를 맞이해야 하는데 음식 깔고 교재 놓는 도중에 원우들이 차례로 들어오니 응대는 당연히 안되고 운영자로서의 품위도 떨어지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둘째는 50명의 원우가 등록된 창원 클래스에 보통 30명 정도가 참석하는데 그날따라 원우들이 15명밖에 오지 않은 것과 그 때문에 넉넉잡아 주문한 음식이 대부분 남아버린 것이었다.


 셋째는 강의 전에 사회를 볼 때 스크립트를 외우지 못해 써놓은 것을 연단에서 읽으면서 진행하였고 자신을 주목하는 원우들을 쳐다보기보다 읽기에만 바빴던 점이었다.


 넷째는 쉬는 시간에 원우들과 컨택을 하면서 각 회사의 이슈를 파악하는 등의 원우 응대가 중요한데 이를 하지 않고 구석에서 멀뚱히 폰만 쳐다본 것이었다.


 이런 실수와 함께 W의 화를 머리끝까지 나게 한 결정적 원인은 한 원우가 쉬는 시간에 W에게 와서 요즘 수업이 재미도 없고 참석자도 별로 없어서 다음 학기에는 우리 기업에서 참여하는 경영진 3명은 등록을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고 한 것이었다. 그 원우의 소속 기업은 S가 자신 있게 다음 학기에도 재등록할 거니 걱정 말라고 했던 곳이었기에 충격이 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W 본인은 강의를 잘 준비했는데 운영이 엉망이라 강의 평점까지 평소보다 낮게 나왔다며 길길이 화를 냈다.


 분노를 어느 정도 토해내고 안정을 찾자 W는 나에게 S를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라고 하고 둘 다 그만 나가보라고 했다. 아침부터 내가 모르는 S의 행동 때문에 된통 혼나고 나오니 어이가 없었다. S에게 저 말이 다 사실이냐며 어제 일을 찬찬히 설명해보라고 했다. S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비록 30분 전에 도착했지만 수업 준비를 차질 없이 잘하였고 운영도 잘했다고 했다. W가 저러는 것은 자기 강의 평점이 나쁘게 나온 것에 기분이 상해서 모든 것을 S탓으로 돌리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회사는 강사들이 강의평점으로 인센티브를 더 받는 구조이고 자존심 문제도 걸려 있어 민감하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S에게 "W가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니까 이러는 거다 좀 잘해라!" 하며 위로해 주었다.


 그날 오후에 갈 부산 클래스 운영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가는데 W가 나를 다시 불렀다. 방에 들어가니 W는 소파에 반쯤 기대앉아있었다. 멀뚱히 서있는 나를 보고 그동안 S 관리를 똑바로 한 것이 맞냐고 물었다. 내가 맡은 두 지역만 해도 인구에 걸맞게 클래스가 4개라 원우 관리, 수업 준비, 강사와 커리큘럼 관리, BtoB프로젝트 까지 바쁘다 보니 챙길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올초에 창원 클래스를 담당할 직원을 정할 때 일머리 있는 직원 D에게 맡겨서 직원 역량도 키우고 클래스에 변화도 주자고 했지만 D보다 선임인 S에게 맡기자고 한건 W였다. W는 내 말을 듣고는 머쓱한지 건너편에 앉아보라고 하였다.


 "S를 어떻게 생각하노?"

 "성격 모나지 않고 착한 친구지요."

 "일은 어떻노?"

 "좀 못 미더운 점이 없진 않지만 그동안의 짬밥이 있는데 평균 이상은 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얼마 전에 내가 S에게 창원 원우 리스트 가져다 달라고 한 거 기억나나?"

 "네,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은데요."

 "그거 아직도 안 가져다줬다."


 W는 S가 자신의 지시에 피드백이 없던 사례를 몇 가지 더 얘기해주고는 어제 얘기도 꺼냈다.

 "S가 어제 한 것 봐봐라 그게 한 지역을 책임지는 운영자가 할 일이가?"

 "말씀대로라면 운영자로서의 책임감은 없는 행동인 것 같네요."

 "내 말이 그 말 아니가. 최 과장 당분간 좀 힘들더라도 창원 클래스 할 때마다 S 혼자 보내지 말고 같이 좀 가라. 코치 좀 해주고..."


  이렇게 해서 2주 뒤 다음 창원 클래스는 S와 함께 가게 되었다. 가기 전에 S에게 지난번 지적받은 것을 상기시켜주며 원우들에게 전화하여 참석여부를 전부 확인하게 했다. 그에 따라 다과 양을 적절하게 맞추고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발하자고 하였다. 사회자로서 말해야 할 것을 적은 스크립트를 전부 외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준비되었는지 물었다. 다 외워 뒀다는 말에 다른 준비물을 확인하고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조금만 노력하면 창원 클래스를 다른 반들보다 더 내실 있게 키울 수 있을 거라며 칭찬을 섞어가며 사기를 올려주었다.


 창원 반에 도착했다. 둘이서 같이 사전 세팅을 하니 원우가 오기 전에 모든 것을 마칠 수 있었다. 강사는 수업 15분 전에 도착을 하였고 강의 시작하는 저녁 7시까지 우리는 입장하는 원우들과 인사하며 얘기를 나눴다. 시간이 되자 S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 멘트를 하였다. 그 순간 이때까지 좋았던 분위기가 깨졌다. 스크립트를 보지 않고 하는 그의 말은 떨리고 있었고 눈은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 모르고 있었다. 멘트가 숙달이 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연습하라고 했건만...'

결국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스크립트를 줄줄 읽는 S를 보며 답답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S는 쉬는 시간에도 원우들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겉돌고 있었다. 평소에 원우들에게 친하게 말을 건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은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유대감이 생기는데 원우들은 S와 얘기하기보다 몇 달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나와 더 얘기하고자 했다.


 수업시간이 끝나고 참석한 원우는 총 18명, S가 준비한 다과는 40명 분, 30명은 무조건 넘긴다던 S는 어떻게 된 거냐는 말에 "아까는 다 온다 하셨는데..."라는 혼잣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20인분이 넘는 김밥과 죽, 과자를 버릴 수는 없으니 챙겼다. 밤 9시 30분, W에게 오늘 강의 운영 상황과 결과를 문자로 보고하고 복귀했다.


 다음날 W는 오전 9시 정시 출근한 나를 불러 전날 강의에 대해 물었다. 사회를 더듬거리면서 보았던 얘기, 원우들과의 대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던 모습, 예상 원우 숫자가 틀려 다과가 남았다는 등 모든 사항을 전달했다. 사전에 완벽히 체크하라고 얘기했는데 지켜지지 않았다는 얘기도 했다. W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다시 2주가 흐르고 창원 클래스를 S와 함께 갔다. 이번에는 다과를 20인분만 준비하라고 단단히 일렀고 사회 스크립트를 외우기 좋게 간략히 핵심만 적어 일주일 전에 S에게 주었다. 창원 원우들과 통화한 것을 일일이 확인했고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서로 어떤 원우들을 맡아 어떤 얘기를 물어볼 건지도 배분했다.


 강의가 끝나고 나는 S에게 한 달 전 W가 그랬던 것처럼 화를 내고 있었다. S는 한 달 전, 2주 전의 모습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참석한 원우는 20명인데 다과는 여전히 40인분을 습관처럼 주문해 놨으며 스크립트는 여전히 못 외워 들고 읽었다. 쉬는 시간에 내가 접촉한 원우들과의 상담내용을 건네면서 S가 맡은 원우들은 어땠는지 물어보자 강사님이 요청한 게 있어서 그거 해준다고 원우들과 상담을 못했다고 S는 당당하게 얘기했다.

 "내가 내 클래스도 아닌 창원 클래스에 저녁 9시가 넘는 이 시간까지 너와 같이 있는 이유가 뭐냐?"

 "제가 못 미더워서 아닙니까?"

 "그래, 잘 아네. 그럼 너를 믿도록 해줘야 할 것 아니야, 내가 해 놓으라는 것 제대로 한 게 하나라도 있냐? 스크립트는 외우지 못해, 다과는 또 저렇게 남아, 원우들 상담도 안 해... 너 이 반 더 안 키울 거야?"

 "......"

 "야 인마, 하다못해 게임 캐릭터도 펀치 버튼 누르면 주먹을 휘두른다. 네가 격투 게임하는 사람이라면 네 캐릭터 선택하겠나? 펀치 누르면 멀뚱멀뚱 다른 거 할 텐데..."

답답한 마음에 아쉬운 소리를 한참 쏟아붓고 귀가하였다.


 다음날 아침 W가 또 불렀다. 그간의 나의 조언과 그걸 지키지 않은 S에 대해 말했다. 묵묵히 듣던 W는 이제 결정했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최 과장, 내 생각에는 S는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노?"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일 시키시려고요?"

 "아니, 내 보내려고..."

 "네?...... 말을 잘 안 듣고 자기 고집 내세우긴 하지만 사람이 나쁘지는 않잖습니까? 다른 것 시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니다. 내가 최 과장보다 S와 더 오래 일했다 아니가. 요 몇 달간 나도 기회를 몇 번 줬는데 그게 기회인지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하더라."


 생각지도 않은 W의 말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W는 S가 나가면 D를 창원 클래스 담당으로 시키겠다고 하며 다음 주부터 D와 함께 창원 클래스에 가서 지도해주라고 하며 말을 마쳤다. W의 방을 나와 문을 닫으면서 내가 W라면 그 결정이 달라질 것인지를 생각해보았다. 그간의 정 때문에 시간을 끌겠지만 결국에는 나도 정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W와 S는 오랜 시간 면담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또 며칠 후 S는 한 달간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퇴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S에게 퇴사는 스스로 한 결정이 맞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회사를 나가면 뭘 할 거냐고 물으니 오랜 꿈이었던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고 하였다.

 "내가 너랑 창원에 가서 했던 얘기 상처되지는 않았나?"

 "아니요, 다 맞는 말이긴 했으니까요."

 "S야 솔직히 나는 인간적으로는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일이 너한테 안 맞았을 뿐이다."

 "네..."

 "나는 네가 뭘 하든 응원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너를 꼭 필요로 하는 일은 반드시 세상에 있다."

 "네 열심히 해서 꿈을 이뤄 볼게요."


 그렇게 S는 퇴사했다. '내가 좀 더 붙잡아 놓고 하드 트레이닝을 시켰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했더라도 S가 따라왔을지는 의문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좋은 강의를 제공하고 기업이 닥친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함께 제공하는 우리 회사의 특성상 완벽한 연습과 친밀한 사교 관계는 반드시 갖춰야 할 특성이다. S는 이 일이 재밌다고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었지만 이런 특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갈수록 클래스의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면 개선점을 고민하고 뭐라도 실행해야 할 텐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 조언도 듣지 않았다.


 난 화를 냈지만 그를 미워하진 않았다. S는 그냥 이 일이 자신과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조직은 그런 그가 맡은 업무에 자신을 맞추지 않자 내보냈을 뿐이었다. 이 모든 일은 S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그가 가장 빛날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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