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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an 17. 2023

운전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들

 운전은 컨설턴트에게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컨설턴트는 의뢰를 받으면 본인이 할 수 있는 한에서 모두 수락한다. 하지 않으면 일의 의뢰가 뜸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활동반경이 크고 넓을수록,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을수록 일은 많아진다. 일을 의뢰받은 건마다 수입이 되므로 운전을 통해 활동반경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일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서울에 살아도 전국을 누비며 다닐 것이고, 취미생활을 즐기며 커리어도 유지하려고 한다면 자기 지역에서만 국한된 활동을 할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수입과 여유시간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것이 프리랜서 컨설턴트이다.


 나의 경우 심사피크 시즌에는 1달에 5천 km는 너끈하게 운전을 한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의 모 공단 본사의 심사원으로 위촉이 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으나 그건 일 년에 몇 건 안 된다. 4시간 심사를 위해 4시간 운전하는 일이 더 많이 발생한다. 육아로 인해 활동반경을 최대한 소백산맥 동쪽으로 국한하고 있어도 사는 곳이 경상도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그렇다.


 이렇게 운전대를 오랫동안 잡다 보면 여러 가지를 느끼게 된다. 그중 2가지만 얘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정속운전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내주행의 제한속도가 시속 50km가 보편화된 지금도 카메라가 없는 지점에서는 60~70km를 달리는 차량을 간간이 볼 수 있다. 도시 외곽에 주로 위치하는 자동차 전용도로의 경우는 더 심해서 80km가 제한 속도이지만 1차선을 그렇게 달리다가는 쌍라이트 세례를 받거나 2차선을 둘러 앞지르는 차량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고속도로는 끝판왕이다. 편도 4차선의 넓은 도로의 2차선에서 100km의 최고 허용속도로 달리고 있으면 앞지르기 허용차선인 1차선으로 차들이 슝슝 앞질러 간다. 뒤에서 줄지어 오던 차량 중 일부는 3차선으로 추월하기도 한다. 80km가 제한 속도인 트럭들도 심심하면 3차선으로 넘어와 추월을 하고 어떤 경우는 2차선까지 차지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자주 겪다 보면 100km로 가는 내가 잘못하는 것 같아 뒤차가 좁혀오는 거리만큼 속도를 더 내기도 한다. 그러다 과속단속 카메라를 보면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뒤차의 눈치를 이렇게 봐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뒤따른다. 이런 행태에 익숙해지니 요즘은 나 역시 100km로 달리는 차를 추월하기도 하고 90km로 달리는 차를 보며 답답하다고 한소리 하기도 한다. 이렇게 개인의 운전습관은 사회적, 법적 약속보다 운전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체험한다.


 두 번째는 얌체운전자와 초보운전자의 차이이다. 보통 양보는 다른 운전자의 처지가 딱해 보일 때, 암묵적인 약속이 있을 때, 양보로 인해 교통흐름이 더 원활해질 것이라 생각할 때 하게 된다. 여기엔 양보받는 차량이 양보하는 사람의 앞길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규정을 지키며 정속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데 앞차와 나 사이를 옆에서 쌩하고 껴드는 차량이 있다면 이 차량을 얌체차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천천히 진입한다면 속도를 줄이고 거리를 벌려 들어오게 해 줄 텐데도 약삭빠르게 껴든다. 그렇게 차가 껴들면 놀라서 기분이 잠깐 상하게 되는데 얌체차량은 또 그런 식으로 금방 시야에서 사라진다. 잠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사라지기 때문에 나의 운행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초보는 사정이 다르다. 딱한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만 속을 뒤집을 때가 많다. 한 번은 고속도로 진입 톨게이트 앞에 멈춰 하이패스 입구 쪽으로 들어오려는 차가 있었다. 상황을 보니 그 차는 톨게이트 입구를 헷갈려 멈춘 것으로 보였다. 하이패스 입구로 들어가는 게 맞는 것으로 판단하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뒤 따라오는 차들이 끊기지 않으니 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쌩쌩 고속도로 입구를 통과하는 차들을 속절없이 기다리는 초보를 보니 마음이 짠해서 속도를 줄이며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초보는 점멸등을 켠 내차를 보고는 이제 들어올 용기가 났는지 천천히 들어와 하이패스를 통과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하이패스 입구를 통과했으면 속도를 내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야  텐데 통과해서도 속도를 내지 않았다. 고속도로 진입점 까지 차선이 하나라 싫어도   속도에 맞춰야 했다. 엉금엉금 가면서 안에서는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뒤차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이때부터는 양보를 해준 나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냥 무시하고 갔으면 벌써 한참을 갔을 텐데 거북이 뒤에서  번째 꼬리가 되어 있으니 양보를 조금 전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양보가 의미가 있으려면 초보가  거라 예상 다음 행동까지 감당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쭙잖은 대인배가 되려다 혼자  끓이는 사람이 되었다. 양보를  자신에게 화날 정도라면 초보를 보고도 배려를  하는 사람이 되더라도  자리를 얼른 피하는  상책이다. 초보보다는 차라리 실리적이고 상황에 최적화된 판단을 하는 얌체가 낫다고 생각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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