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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an 11. 2023

고민은 의외의 곳에서 해결된다

 아기처럼 뽀송하던 피부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키가 쑥 크는 동시에 뺨과 이마에 여드름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여드름을 없앨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지식인들의 머리를 빌려올 수도 없었다. 여드름으로 번들거리는 것을 비누로 잘 씻어주는 정도가 관리의 전부였다.


 한번 난 여드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빨갛게 올라올 때는 만능약인 안티푸라민을 바르고 시간이 더 지나 하얗게 올라오는 화이트헤드는 손으로 짰다. 많이 부풀어올라 노랗게 익은 여드름을 손으로 쥐어짜면 흉터처럼 남기도 하였다. 블랙헤드가 된 곳은 볼펜 뚜껑으로 눌러 짜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자 시간이 자유롭고 용돈이 풍족해졌다. 관리에 조금 더 신경을 쓸 수 있었다. 여드름 약을 사서 바르고 볼펜뚜껑 대신 피지 제거기를 샀다. 아침저녁으로 여드름에 좋다는 비누를 써서 꼼꼼히 얼굴을 씻었다. 그럼에도 여드름은 쉽게 떠나가 주지 않았다. 사회에서 보다 피부관리가 어려운 군대생활도 여드름과 함께 하였다.


 복학을 하여도 여전했다. 선배들에게 없어지지 않는 여드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들도 시간이 지나니까 낫더라는 도움이 안 되는 조언을 해줄 뿐이었다. 드디어 인터넷 시대가 펼쳐져 지식인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지만 속시원히 해답을 얘기해주는 사람은 없고 온통 화장품이나 병원 광고뿐이었다.


 회사원이 되자 전성기가 지났는지 뺨에는 여드름이 거의 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여드름자국이 군데군데 남았고 코, 이마, 턱에 자리를 잡은 여드름은 여전했다. 어쩌다 코에서 여드름이 올라오는 날에는 딸기코가 되었다. 턱 아래에는 우둘투둘 하지만 짜낼 수 없는 여드름이 꽤 있었다. 아무리 여드름에 좋다는 비누를 써도, 스킨과 로션을 듬뿍 발라도, 자주 씻어도 효과가 없었기에 BB크림을 바르고 다녔다. 여드름이 낫지 않는다면 가리는 수밖에 없었다.  


 빠른 치료를 위해 의학의 힘도 빌려 보았다. 그중 여드름 치료를 장기로 내세우는 피부과병원은 기대와는 다르게 의사가 몇 초 얼굴을 쳐다보는 게 다였다. 그리곤 간호사인지 상담실장인지 모르는 사람이 상담실로 안내했다. 그녀는 개인이 관리하다가 손으로 짜내면 흉터가 되고 자꾸 만지게 되면 낫지 않는다며 여드름 관리비로 3회에 15만 원을 얘기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 3회를 받아 보았는데 차도가 없었다.


  여드름을 레이저로 관리해준다는 병원은 최신 레이저기기로 살갗을 지졌다. 레이저치료는 여드름을 짜면서 올록볼록 해진 피부를 복원하고 흉터를 제거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현재진행형인 여드름을 낫게 하진 못하였다. 시술로 벌게진 피부를 가리고 다닌다고 욕만 보았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쓰면서 지쳤을 때쯤 30대가 되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분명 해결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타투숍에 시술을 받으러 갔다. 내 또래로 보이고 무뚝뚝하다 생각되던 타투이스트는 쭉 조용히 있다가 타투를 다 새겨갈 때쯤 질문을 했다.


"얼굴에 여드름이 좀 있으시네요. 혹시 관리받으세요?"

"아니요, 피부과도 가보고 좋다는 것들도 써봤는데 안 나아서 포기하고 있습니다."

"저도 지성 피부인데 손님보다 여드름이 더 심했었습니다."

"네? 사장님도 여드름 피부였습니까? 피부가 깨끗하신데요."

"저도 턱, 이마에 여드름이 퍼져 있었는데 관리를 받고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도 성인이 되어서도 안 없어지는 여드름 때문에 이렇게 BB크림을 바르고 다닙니다."

"손님, 그러면 제가 다니는 여드름 관리숍을 알려드릴까요? 여기는 여드름이 왜 나는지 알려주고 그 근원을 제거해 줍니다."

"알려주시면 좋죠. 매번 좋다고 찾아간 곳에서 좋은 결과를 못 얻어서 포기한 상태거든요."

"대신 여드름을 짤 때 엄청 아픕니다. 어떤 분은 그걸 못 견디고 중간에 뛰쳐나가기도 한다더군요."

"평생 고민이 해결되는데 무조건 참아야죠.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저를 믿고 최소 5번 이상 관리받아보세요. 진짜 깨끗이 나을 겁니다."


 시술을 마치고 그는 내게 여드름 관리숍 이름과 위치를 알려주었다.


 쇠뿔도 당김에 뺀다는 기분으로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그가 알려준 여드름 관리숍으로 향했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이라  내부는 조용했다. 인기척을 내니 고객의 여드름 관리를 해주던 원장님이 손을 멈추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였다. 30분쯤 지나니 원장님 하던일을 마치고 나왔다. 여드름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하자 그녀는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곤 대뜸 여드름이 뭔지 아냐고 물었다.


"여드름은 털을 만드는 모낭에 붙어있는 피지선에서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질환 아닌가요?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입니다."

"맞아요. 그럼 여드름은 뭐 때문에 생기나요?"

"피부에 유분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잘 들으세요. 여드름은 여드름 균들이 피부 아래에 딱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네?"


그녀는 얼떨떨한 모습의 내게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여기 턱에 여드름 있죠?"

"네"

"이 안에 피지가 가득 차있는데 여드름 균이 이걸 자꾸 만들어 내요. 그래서 안 없어지는 거예요. 이런 여드름은 한번 짜면 균이 없어질 때까지 짜줘야 합니다."

"제가 여드름을 한번 짜면 피가 날 때까지 짜긴 합니다. 근데 이건 짜보려 해도 커지지 않고 짤만한 구멍도 없어서 눌러도 안 나오길래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여드름은 맨손으로 짜면 흉터가 나기가 쉽습니다. 때문에 전용 도구를 이용해 작은 구멍을 내서 짜내야 하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한 네댓 번 정도 관리받으면 다 나을 수 있겠네요. 대신 짤 때 여드름뿐만 아니라 안에 죽은 피까지 다 짜내기 때문에 아플 겁니다."

"원장님, 저는 낫기만 한다면야 아픔은 참을 수 있습니다."

"네 알겠어요. 총각은 여드름 관리 좀 받으면 여자친구가 생기고 장가도 갈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예약 날짜를 잡고 가고 관리 비용은 첫날에 와서 계산하시면 됩니다."

"네 원장님,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쁠 수 있는 농담조의 장가드립을 들으며 얼마나 자신 있으면 저런 얘기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기대가 커졌다.


 여유 있게 6회를 끊었고 관리받는 시간을 평일 퇴근시간 이후로 정해 4일 간격으로 꾸준히 다녔다. 여드름을 끝까지 짜내는 원장님의 손은 역시나 매웠다. 안 아픈 데가 없었지만 코나 눈 가까운 민감한 부위의 여드름을 짤 때는 주먹이 꽉 쥐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윈장님은 약 1시간을 짜내고는 얼굴에 천연 성분의 화장품을 잔뜩 발라 마사지를 해주었다. 마사지 후에는 다리에 온열기를 차고 침대에 누워 1시간 정도 잠을 이뤘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따갑던 피부가 안정되었는데 항상 꿀잠을 자서 피로도 많이 풀렸다.


 타투이스트와 원장님의 호언처럼 6회의 관리로 얼굴의 여드름은 자취를 감췄다. 오돌토돌하던 이마와 턱이 깨끗해졌다. 원장님은 이제 천연화장품으로 스스로 관리하면 된다며 여드름이 혹시 다시 올라오면 한두 번 더 방문해서 관리를 받으라고 하였다. 이로서 나의 오랜 여드름 고민이 완전히 해결되었다.


 10대부터 30대가 될 때까지 나를 괴롭혀 온 여드름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연히 얻은 정보로 치료되었다. 이 일로 중요한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는 인간관계 하나하나를 소중히 하면 뜻하지 않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열 떠돌이의 정보 보다 한 전문가를 만나야 고민을 단박에 쉽게 풀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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