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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an 06. 2023

나의 헌혈 연대기와 헌혈센터의 핵심역량

 헌혈을 처음 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헌혈 버스가 왔다는 교내 방송을 듣고 수업하기 싫었던 많은 학생들이 헌혈에 동참했다. 1학년 때는 나이 조건에 걸려 참여를 못 했는데 이제는 참여가 가능했다. 덕분에 수업하나를 재끼고 영화관람권에 음료수와 과자도 챙겨 왔다. 이제 헌혈할 정도는 컸다는 뿌듯함과 수업을 안 들었다는 해방감에 주전부리까지 헌혈에 대해 좋은 감정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 없었다.


 두 번째 헌혈은 군대 가서였다. 헌혈을 좋게 생각한다고 해도 고등학생은 공부가 우선순위였고 밤 12시까지 하는 야간 자율학습에 주말도 예외 없는 등교라서 헌혈을 할 현실적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도 그간 안 하던 헌혈을 할리 없었고 군대라는 제약 안에 갇히자 헌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자유가 제한된 현실에서 헌혈차가 오면 우선적으로 지원했다. 힘든 훈련에서 잠시나마 열외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주에 있을 때는 족적을 남기는 방법으로 헌혈을 택했다. 호주 정부에서 나의 세금 납부이력을 관리하고 있고 호주 은행에 계좌 개설 정보가 있고 마트마다 만들어 둔 멤버십카드에도 정보가 있었지만 그걸로 부족했다. 길을 다니다 봐 둔 한적한 동네 헌혈센터를 찾았을 때 간호사는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외국인이라 어느 정도 경계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그녀의 친절한 말투에 사라졌다. 한국에서 헌혈을 해 봤냐는 것부터 시작된 그녀의 꼼꼼한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한 후 헌혈을 했다. 호주는 한국처럼 기념품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나의 목적은 헌혈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헌혈을 하고 나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참을 헌혈을 하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렵고 주말 역시 쉬는 시간 쪼개서 헌혈센터로 이동하고 피를 뽑는 번거로운 과정에 1시간 이상 버릴 각오를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어떤 고귀하고 숭고한 정신이 있지 않는 한 헌혈이 남의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주말, 시내를 걷는데 헌혈을 독려하는 사람들이 띠를 매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마침 누구를 기다려야 할 상황이라 시간을 때울 겸 헌혈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헌혈센터에 들어서니 깨끗한 공간에 간호사들은 친절했고 기념품도 주었다. 시스템도 몇 년 새 싹 바뀌어 스마트폰 시대에 맞춰 앱을 통해 헌혈 횟수를 확인하고 자신의 혈액으로 얻은 건강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번 헌혈을 하고 나니 헌혈센터에서 주기적으로 문자가 왔다. 연말 행사로 기념품을 더 챙겨준다던지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던지 하는 문자는 시간이 될 때마다 가서 헌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헌혈 횟수는 쌓여갔다.


 26번째 헌혈을 하러 동네 헌혈센터를 찾았을 때였다. 오전에 일을 하나 처리해놓고 헌혈센터에 들어서니 11시 40분쯤이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고 헌혈의자 3곳에 사람이 모두 앉아있었다. 별도 안내하는 사람이 없어서 컴퓨터 앞에서 문진을 작성하고 있는데 간호사 한분이 나오더니 곧 점심시간이라 지금은 헌혈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점심시간에 대한 안내는 온라인에도, 입구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본 적이 없었는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인가요?"

 "12시부터 1시까지입니다. 죄송하지만 1시 이후에 다시 오시겠습니까?"

 "그때는 오기가 어려워서 지금 온 건데요."

 "오후에 시간이 안되시면 여기서 내려가셔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성남센터는 헌혈을 하고 있으니 거기로 가세요."


 사전 안내 없이 점심시간 때문에 안되다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다른 센터로 가라고 하는 대목에서 화가 났다.


 '그럼 그쪽 센터는 점심시간 없이 하는데 여기는 점심 다 챙겨 먹고 한다는 얘기인가?'

 '점심시간 문구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데 사회 통념상 이해하고 넘어갈 일인가?'

 '공공서비스라면 최소한 잘 보이는 장소에 정확한 안내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좋은 마음으로 헌혈하러 왔다 마음 상할 일은 아니었다. 내가 다음에 오면 될 일이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도 있는데 밥 먹어야 할 그들도 이해해야 했다. 알겠다고 하고 돌아 나왔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헌혈이 딱 하기가 싫었다. 헌혈이 뭐 대단한 일도 아니고 피를 뽑는 대신 기념품을 받아오는 매혈 행위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나름 사회에 공헌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사라졌다. 정기적으로 오는 안내에 시큰둥해졌다. 기념품 1+1 행사를 한다는 헌혈 문자가 들어와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헌혈 주체인 대한적십자사에 대한 마음도 그냥 사업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있고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여유 혈액이 별로 없다는 문자가 왔다. 마침 그날은 시간 여유가 있었는데 혈액이 모자란다니 마음이 약해졌다. 


 '내 헌혈을 통해 한 명이라도 건강이 좋아진다면 꽁한 마음을 풀어도 되지 않을까?'


 차를 타고 다른 센터로 가기에 늦은 오후 4시라 동네 센터로 향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멘트라도 들으면 그냥 나올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간호사들의 응대가 친절했다. 이렇게 나의 헌혈을 다시 시작되었고 2022년 연말에 총 30회를 채워 헌혈 유공패 은장을 받았다. 헌혈을 시작한 지 26년 만이었다.


 나는 헌혈을 사명감으로 해온 사람이 아니다. 헌혈을 통해 얻은 피가 수술에 쓰이거나 의약품 제작 등 유용하게 쓰인다지만 나는 피가 어디에 쓰이는지보다는 헌혈로 뭘 얻을 수 있는지를 더 따져온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헌혈을 할까 말까 하는 마음과 줄다리기를 할 것이고 얼마나 더 헌혈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의 헌혈연대기를 통해 하나는 말할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 등 헌혈 사업주체의 핵심역량은 헌혈센터 직원 하나하나의 친절하고 배려있는 말과 행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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