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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한 겨울 끝자락의 경남 고성여행 2/2

당항포 공룡엑스포공원

by CJbenitora

해가 지고 있었다. 고성 읍내와 가까운 호텔을 숙소로 잡았기에 40분을 달렸다. 숙소에 도착하니 7시가 다 되었다. 호텔 프런트에서 예약자 이름을 말하니 방키를 주었다. 직원분은 아이가 자기 짐을 자기가 끌며 가는 모습에 대견해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러 읍내로 나갔다.


고성은 확실히 시골 느낌이 많이 났다. 8시도 안 되었는데 식당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래도 시내 곳곳에 편의점이 많이 보여서 식당을 못 찾으면 삼각김밥이라도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천천히 돌아보았다. 차로 시내를 누비다 보니 칼국수와 수제비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하나가 열려있었다. 밤 시간에는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둔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대었다. 대도시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배려로 보였다.


식당에 들어가 해물칼국수와 김치수제비를 시켰다. 아이가 매운 것을 못 먹기에 칼국수를 시킨 것이었다. 아이는 포크를 따로 달라하지 않고 젓가락을 쥐고 몇 번 입에 넣기를 실패해 가며 먹었다. 맛있는지 물으니 맛있다고 대답하였다.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는 식탁 앞에서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먹기 싫어서 딴짓을 하던 녀석인데 오늘은 온전히 먹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칼국수 면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을 보니 내가 다 뿌듯했다. 나 역시 맵고 진한 김치수제비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었다.


식사 후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아이가 잘 먹었다고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은 식당 주인도 아이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잘 가라고 인사해 주었다. 차를 세워 둔 데까지 걸어가다 보니 야식으로 먹을 음료와 과자가 당겼다. 아이와 얘기해 편의점에 들러 먹고 싶은 것을 각자 3개씩 사기로 했다. 아이는 초콜릿이 들어간 과자와 빵을 샀다. 나는 나초과자와 음료수를 샀다. 계산이 끝나자 아이가 자기가 골라 산 과자를 차까지 들고 갔다. 매번 마트에 들를 때마다 물건을 고르고 장바구니를 드는 건 어른들이었다. 이번이 아이에겐 자기가 고른 물건을 직접 들고 가는 첫 경험이었다. 그렇게 호텔로 돌아와 우리는 각자 챙겨간 노트북과 태블릿을 펴놓고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늦게까지 놀았다.


다음날 역시 갈 곳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아침에 급히 업무로 처리할 것이 생겨서 20분 거리의 통영시내에 들렀다. 호텔로 돌아오면서 몇 년 전에 일하러 가는 길에 들렀던 용전소류지 쪽으로 향했다. 고성 읍내에서 바닷가 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나오는 곳인데 청둥오리 같은 철새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고성 읍내가 바다와 인접하다는 것을 보여주러 데려간 것이었다. 오랜만에 갔더니 주변에 아이들이 놀기 좋은 놀이터가 생겨있었다. 아이는 놀이터를 보자 바다는 뒷전이었다. 놀이터에는 미끄럼틀, 그네, 애벌레 모양의 시소, 뜀동산이 있었다. 평일 오전이고 동네 놀이터에 사람이 많지 않은 동네라 노는 아이는 두세 명이 다였다. 아이는 홀로 여기 뛰고 저기 뛰며 놀았다. 호텔 체크 아웃 시간이 다 되어갈 때까지 아이를 놀게 해 주었다.


호텔에 돌아와 11시 반에 체크 아웃을 하고 읍내 한켠에 있는 소불고기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빠와 놀러 온 8살 아이는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의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식당분들은 메뉴에 없는 소시지구이와 생선가스를 서비스로 주었다. 불고기와 고춧가루 없는 반찬만 먹던 아이는 서비스 음식을 깔끔하게 먹어 치웠다. 이틀째에도 아빠 마음에 쏙 드는 식사를 하는 아이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는 아이가 직접 계산을 하게 하였다. 어제 집을 나설 때 아이의 외할머니가 "저금하지 말고 가서 맛있는 거 사 먹는데 써!"라며 5만 원을 아이에게 쥐어 주었다. 그 돈으로 직접 식대를 계산하는 것이었다. 주방에 계신 분 까지 나와서 아이가 계산하는 걸 보았다. 거스름돈을 얼마 받으면 되는지 묻는 식당 주인의 질문에 아이가 긴장해 24,000원을 2,400원이라고 말하는 통에 우리는 모두 유쾌하게 웃었다. 거스름돈 지폐에 있는 인물들이 누군지 묻는 종업원 아주머니의 장난스러운 질문에는 아이가 정확하게 인물의 이름을 댔다. 집에선 따로 교육시킨 것이 없는데 잘 알고 있는 아이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지난밤에 검색해 둔 당항포 공룡엑스포 공원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는 아까 그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다고 했다. 미리 계획한 바가 없는 여행이라 망설임 없이 놀이터로 향했다. 오전에는 서너 명 뛰어놀던 놀이터에 아까의 열 배도 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읍내 주민들과 주변 아파트 사람들이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려 나온 것이었다. 어른들은 돗자리를 깔고 얘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뛰어다녔다. 우리 아이도 같이 놀 아이들이 많아서 아까보다 더 신나게 놀았다. 뜀동산에서 형들이 하는 것을 보고 높이 뛰어보고, 동생들이 데구루루 구르는 걸 보고 같이 굴렀다. 이렇게 2시간을 더 놀았고 다음 목적지로 정한 당항포로 이동하였다. 까딱하면 놀이터에서 바로 집에 가게 생겼기에 아이를 설득한 결과였다. 체력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면 어두워질 때까지도 놀이터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었다.


차를 타고 30여분 달려 당항포에 도착했다. 아이는 그새 차에서 잠이 들었다. 입구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주차를 하는데도 아이는 꿈쩍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이를 업고 공룡엑스포 공원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쥐라기 공원 영화에서나 보던 티라노 사우르스의 실물을 재현한 거대 조형물이 서있었다. 공룡나라에 입성한 느낌이 들었다. 넓은 정원에 다양한 공룡 조형물들이 실물과 같이 서있었다. 입이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아이를 흔들어 깨우니 슬쩍 눈을 떴다. 실눈으로 공룡을 본 아이는 눈을 다시 감더니 이게 꿈인가 하는 표정으로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내 등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공룡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아이의 잠이 확 깨울 정도로 공원은 잘 꾸며져 있었다.


놀이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서 여기서 관람할 시간은 2시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속성으로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블로그 등의 후기를 보면 이곳은 오전에 와서 하루종일 노는 곳인데 수박 겉핥기를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에 자연사 박물관, 긴 미끄럼틀, 공룡전시관, 공룡나라 체험 영상까지 번갯불에 콩을 볶았다. 이순신 장군의 당항포 해전의 현장이 한눈에 보이는 하늘 정원에도 갔다. 아이에게 공룡과 역사공부를 같이 시키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아이는 이순신은 알아도 당항포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시 튀어나온 아빠의 공부 욕심은 아이가 더 클 때까지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저 아래로 내려갈 때는 달리기 시합을 하자는 아이와 같이 달리는 것이 더 의미가 있었다.


6시 폐장시간을 30분 앞두고 우리는 천천히 공원을 나왔다. 어제 사 둔 음료수를 한 캔 씩 마시고 집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아이를 더 잘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 하니 아이가 이제 많은 것을 혼자 할 만큼 컸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기 짐 자기가 들기, 먹은 것 스스로 계산하기, 하고 싶은 것 정하기, 이 모두 혼자 결정하고 혼자 했다.


또한 8살 아이에겐 관광지는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외여행도 유명 관광지도 의미 없었다. 여기 왔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도 여러 장소를 둘러보았다는 것도 의미 없었다. 동네 놀이터라 하더라도 마음껏 뛰어놀 공간에서 해가 지도록 신나게 노는 것이 훨씬 값어치가 있었다.


아이에게 경남 고성은 아빠와 둘이서 신나게 놀았던 곳으로 남을 것이다. 아빠의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은 나이를 먹어도 이때를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더 만들 것이다. 이번 여행으로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거워하는 이때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이 같은 시간을 다른 곳에 쓰는 것보다 훨씬 값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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