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여운 녀석들을 어떻게 버린단 말입니까
귀여운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짐승의 새끼들이 귀여움을 장착하고 태어나는 것은 생존 본능이라지만, 세상에 어린 동물들 외에 하찮고 귀여운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귀여운 아기를 보면 ‘아우~ 귀엽다‘정도의 감탄사 정도는 내뱉어 줘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소품샵이나 다이소(아니 요즘 다이소 퀄리티 왜 이리 좋습니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구경하다가 지갑을 열게 되기 마련이니 나는 참 귀여움에 특히 취약한 물욕 여신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귀여운 것들 중 참 버리기 힘든 종류가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인형이다. 용돈이 없던 아주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사줄까 물었을 때 주저 않고 커다란 곰인형을 대답했었다. 선물 받은 그 곰인형을 한동안 침대에서 끌어안고 자기도 했고, 작게나마 용돈이 생긴 후로는 인형 뽑기 등을 통해 인형을 곁에 두곤 했다.
인형 뽑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신혼이었던 2018년 무렵 회사 일이 참 힘들었다. 야근 연속에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맡겨지는 상당한 업무량에 지쳐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내 스트레스를 풀게 해 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인형 뽑기 기계! 당시 신촌집 근처에는 조금 규모가 큰 마트가 하나 있었다. 그 마트 입구에 인형 뽑기 기계가 두 대 있었는데, 매일 그 뽑기 기계에 3-4천 원씩 갖다 바치며 뽑기 기술을 연마하곤 했다. 인형 뽑기는 그렇게 나름의 스트레스 푸는 취미가 되었고, 작은 인형을 하나둘씩 전리품처럼 집으로 가져오다 보니 인형이 점점 많아졌다. 한두 개쯤이야 가방에 달고 다닌다 쳐도 수십 개나 되는 인형을 어찌한담… 전셋집에서 전셋집으로 옮겨 다니며 필수품이 아닌 많은 것들이 짐이 될 때였다.
뽑은 인형 중 포켓몬스터 캐릭터 인형이 제법 되어 한꺼번에 당근에 올려 처분한 적도 있다. 열몇 개 정도의 인형을 대략 3천 원 정도에 올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아빠 손을 꼭 붙들고 와서 내게 꼬깃하게 접은 천 원짜리 세 장을 주고 인형을 구매해 갔다. 엄마미소 가득 장착하고 인형을 아이에게 넘겨 주었었다. 하지만 이렇게 훈훈하게 인형 처분을 마무리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대부분의 인형은 중고마켓에 올려도 잘 팔리지 않는다. 나눔을 해도 안 가져가는 것이 인형이다. 팔거나, 누구를 주거나 이 둘 중 하나가 안되면 버려야 한다. 너무 힘든 결정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인형의 대부분은 추억이 깃들어 있다. 인형 뽑기로 뽑은 인형은 뽑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던 신입사원 시절의 힘듦을 기념(?)하게 하고, 미국에서 살던 시절에 엄마가 게라지 세일(미국 주택가에서 창고 앞에 좌판을 깔고 각 가정에서 쓰던 물건을 파는 벼룩시장)에서 사 온 손 붙잡고 있는 곰인형 커플, 신혼 때 남편이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던킨도너츠 사은품으로 나왔던 검은 개 인형(개 이름은 잊어버렸다;), 회사에서 진행한 코딩 교육 수료 기념으로 받은 곰인형, 과장 승진 교육에서 만든 캐릭터 인형, 동생이 나와 닮았다며 선물해 준 아따맘마 단비인형, 대학교 축제에서 기념으로 받은 대학교 캐릭터 곰인형… 등등 모든 인형들에 추억이 깃들어 있는 것을…
그런데 이렇게 인형이 쌓이다 보니 관리하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장 앞에 진열해 놓으면 먼지가 쌓여 주기적으로 털어줘야 한다(하지만 털지 않고 이삿날까지 먼지가 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고 자는 인형이면 종종 빨아줘야 한다. 각 잡혀있는 물건이 아니기에 적재해 놓을 수도 없고 난감하다.
우리 첫째가 날 닮았는지 인형을 참 좋아한다. 내가 집으로 들고 온 인형도 본인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형 욕심쟁이인데, 지금 만 7세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 첫째 방 침대 위를 보면 누울 자리보다 인형이 놓인 자리가 더 넓어 보인다. 몇 개는 정리하자고 말해 보아도 들은 체 만 체다. 엄마처럼 버리기 아까워하는 우리 첫째는 아마 끝까지 이고 지고 갈 모양이다. 모전자전이다. 그런데 둘째는 다르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둘째라 대부분의 장난감을 형에게 물려받아서 그런지 딱히 욕심이 없다. 다이소에서 인형 하나 사줄게 말해 봐도 이것저것 꺼내어 한 번 끌어안아본 후 제자리에 놓곤 한다. 어찌 이렇게 다른지… 아무튼 수많은 반려 인형 중에는 내 것이 아닌 아들 것도 상당하여 더욱 버리지 못하는 것도 있다. 나중에 독립하면 다 가져가려나.
이 글을 쓰면서 집에 있는 인형을 하나 둘 떠올려 보았다. 역시나 버릴 인형이 한 개도 없다ㅠ 남의 인형도 재활용 의류수거함에 처박혀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픈데(지난번에 본 인형은 너무나 멀쩡한 돌고래 인형이었다!) 내 것은 오죽하랴. 귀엽고 소중한 내 인형들… 드래곤볼에 나오는 캡슐처럼 인형 캡슐로 만들어 소장하고 있다가 추억 여행을 떠날 때 한 번씩 꺼내어 쓰다듬어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귀여운 물건들과 죄책감 없이 이별할 수 있는 방법, 어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