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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은 May 27. 2024

선물에는 다 의미가 있는 거잖아?

한 시절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내가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내가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속하는 범주 중 하나는 바로 ‘선물’이다. 부모님이 특별한 날 주신 선물, 아이가 직접 만들어 건넨 선물, 친구의 생일 선물, 지인의 축하 선물 등… 그간 나쁘게 살아온 것만은 아니었는지,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받곤 했다. 예전만큼은 덜하지만, 나는 선물이라는 것에 참 불필요할 정도로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선물을 줄 때도 받는 사람의 반응을 1부터 10까지 예상해 보고는 고심 끝에 고르는 편이었다. 내가 선물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마도 나부터가 줄 때에 많은 생각을 하며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는 입장인 상대방은 어떨지 몰라도.


하지만 30+N년을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종류의 ‘선물’들이 쌓였다. 옛 남자친구가 사귈 때 준 선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보관을 해왔으나, 이제는 점점 이런 선물들도 더 이상 둘 곳이 없기에 보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러한 결심에는 이 나이쯤 되니, 내가 의미 부여하는 것만큼, 나에게 그 선물을 준 사람은 선물을 준 기억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선물을 주는 그 순간에만 마음을 표현하고 그 뒤에 기억하는 데에는 그다지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최근에 버려야겠다고 결심한 오랜 선물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 S에게 받은 쪽지 유리병 선물이다. S와 나눈 대화도 제법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는 단짝까지는 아니었지만, 같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지방 소도시의 특성상 다수의 학원에서 함께 공부를 하던 사이였다. 서로가 기억하는 우정의 깊이는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생일 때 무엇을 갖고 싶냐는 S의 질문에 나는 직접 쓴 편지가 가득한 의미 있는 선물이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고, 그녀가 의외로 흔쾌히 이 요청을 수락하여 생일 때 돌돌 말린 쪽지가 가득한 유리병을 내게 안겨주었을 땐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내게 이걸 준다고? 의아함과 고마움, 그리고 바쁜 수험생에게 시간을 쓰게 만들었다는 미안함을 한꺼번에 느끼며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친구가 직접 쓴 쪽지가 가득한 유리병 선물

고등학교 때 이 선물을 받았으니까 거진 20년 가까이 된 유리병이다. 참 예쁘고 소중한 선물이긴 한데, 뭔가 애매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저 속에 든 쪽지의 내용이 궁금해졌던 나는 조심스럽게 코르크 마개를 열고 두어 개 정도 쪽지를 꺼내어 돌돌 말린 것을 펴 보았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게도 내용은 허탈한 것뿐이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A는 A다”와 같은 내용이어서 실소를 내뿜었던 내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어 그 뒤로는 저 남은 쪽지들을 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 선물을 준 S와는 지금도 간간히 연락하는 사이지만, 아직도 의문이다. 이 친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쪽지들을 적어 넣었던 것일까. 가끔 물어볼까 싶다가도, 어차피 이 선물을 줬다는 것 자체도 기억을 못 할 텐데 싶어 관두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선물 하나씩 이별을 고하다 보면 시시때때로 수만 가지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아, 물론 내게 좋은 의미로 정말 좋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은 정말 잘 모셔두고 있다. 가령 재수중일 때 두 번째 수능을 앞두고, 먼저 대학에 진학한 둘이 “지은아, You can do it”이라고 새겨 선물해 준 무드등 같은 것 말이다. 내 이름이 적힌 물건을 어찌 버릴 수 있으리오. 친구가 손뜨개로 만들어 준 담요와 가방은 또 어떻고. 시간과 정성을 들인 선물은 끝까지 들고 가도 후회는 없다.


최근에 동생이 아주 오래전 선물해 준 게임 캐릭터 인형을 우리 아이가 아주 잘 갖고 놀고 있다. 어떤 캐릭터인지도 모르면서 제 맘대로 포켓몬스터 캐릭터 이름을 붙이고 논다. 부피가 큰 인형이었기에 버릴까 말까, 동생한테 비싼 거냐고(게임 직관하러 가서 손수 얻어온 인형이라고 했다) 물어보고 버릴까 오만가지 생각을 했었는데 아이가 잘 가지고 노니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이렇게 또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늘었지만 하는 수 없지.


요즘 SNS에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라는 가사의 노래가 유행인 듯한데, 나도 따라 외치고 싶다. ’물건 버리는 것은 참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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