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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은 Jun 17. 2024

책이 너무 많아서

다독가이자 애서가는 책이 너무 많아

나는 책 욕심이 많다. 독서하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종이로 된 책을 '소장'하고픈 욕망이 꽤나 큰 편이다. 뭐랄까, 내 손에 한 번 들어온 책은 끝까지 품어줘야 한다는 괜한 책임감 때문일 수도 있고,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을 보며 드는 은근한 만족감을 포기할 수 없어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주 오래전부터 품어온 이룰 수 없는 꿈(나는 시골에서 나만의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언젠가는 이 책들이 필요한 때가 오겠지 싶어서일 수도 있고.


결혼 전,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세로로 긴 책장 하나와 책상 옆에 붙어있는 두어 칸 정도의 작은 책장 정도로도 충분했었다. 하지만 결혼하며 '서재'를 별도로 마련하면서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 한쪽 벽면을 책장으로 만든 후, 아주 신나게 책장을 채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소소한 취미로 시작한 '출판사에서 책 제공받고 서평 쓰기' 활동은 체감상 기하급수적으로 장서 수를 늘리는 데 일조했다. "책을 좋아하는데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대가로 신간 책을 공짜로 준다고?" 별도로 현금을 만들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아니었지만, '신간'과 '무료제공'이라는 단어의 위력은 내게 있어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나의 SNS 북스타그램 팔로워가 서서히 늘어나는 만큼 그렇게 일주일에 한 두 권씩 쌓여간 책들은 더 이상 책장에 꽂힐 데가 없어 이중으로, 책 위에 옆으로 뉘어서, 그것도 모자라 책장 앞 바닥에 더미로 쌓일 정도가 되자 이것 참 어떡하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나의 책 욕심은 일정 부분 책육아를 위한 그림책과 동화책으로 옮겨갔으나, 이는 우리 집에 보관하는 책의 양을 두 세배로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 연령에 맞추어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전집을 때로는 당근으로, 때로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물려받고 나니, 3x3 아홉 칸 책장이 두 개로 늘어나, 아이 방 한쪽 벽면도 책으로 가득 차게 되어 버렸다. 물론 이렇게까지 하고 나니, 아이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뿌듯했지만 실평수 18평 정도의 좁은 이전 집에서 책을 계속 보관하는 것은 무리였다.


닥치는 대로 신간 서평 의뢰를 받다 보면 개중엔 한 번 읽고 치워도 될 만큼 내용이 부실한 책도 있었다. 이런 책들은 가차 없이 당근으로 판매하거나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처분하려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있었으니, 한 번 아주 깨끗하고 소중하게 읽은 책을 아무리 염가에 팔려고 해도,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만큼이나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근에 올린 책은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고, 서평의뢰를 통해 받은 책은 대개 출판사 증정 도장이 찍혀 있어 재판매가 불가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책을 어떻게 처분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검색해 보았다. 드러나 있지 않다 뿐이지 생각보다 많았다! 애서가들이 이렇게나 많았을 줄이야. 일단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위에서 말한 당근 혹은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파는 법이 있었고,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고 공유도서관에 내 책을 맡기는 방법, 일반 도서관에 기증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하지만 공유 도서관은 내 책이 여러 사람들에게 '조리돌림'(믿기지 않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보통 책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다) 당하며 훼손당하는 것이 싫었을 뿐만 아니라, 매년 내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내키지 않았고, 일반 도서관 기증은 출간 후 5년 이내라든지 몇 권 이상이라든지 하는 단서 조항이 있어 허들이 높았다. 아, 주변에 나눔 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한 두 번 해보니 뭔가 싫은데 억지로 받는 느낌이 있어 관두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책 읽을 시간은 부족하기 마련이니까.


이쯤 되고 나니,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방법, 바로 폐지로 버리는 방법밖에는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는 것에 관하여 굳이 변명을 하자면, 책이 많은 사람들은 책을 중고로 파느니 차라리 버린다고 한다. 중고 서점으로 흘러 들어간 책이 팔림으로써 작가나 출판사에 돌아가는 이득은 '0'이라는 점 때문이다. 중고 서적을 판매한 수익은 모두 중고 서점 몫이라고 하니, 쓰러져가는 출판계를 위해서라도 마음이 쓰리지만 버리는 편이 차라리 낫다.


자, 그럼 책을 폐지로 버리는 것은 쉬우냐 하면 그것도 또 아니다. 책이라는 물성 자체가 모이면 상당한 무게를 자랑하는 것이기에 많은 양을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특정 요일과 장소에 버리려면 큰 결심이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책 수거 업체에 문의했다. 폐지 비용이라도 받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수거업체 사장님은 난색을 표했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거 자체만이라도 원하면 해줄 수 있다고 하셨다. 고민 끝에, 무거운 책을 수거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어디냐 싶어 부탁드렸다.

 

상당한 양의 단행본과 오래된 그림책 등을 처분했다.

한 번밖에 읽지 못한 단행본이 이렇게 폐지로 흘러가는구나 싶어 마음이 쓰렸다. 이렇게 책을 처분할 때마다 내게 커다란 공간이 있어 나만의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모든 여유 공간은 자본을 필요로 하기에 이룰 수 없는 꿈으로 간직해야겠지만 먼 훗날엔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오늘도 쉽지 않은 꿈을 꼭꼭 접어 마음속 깊이 넣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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