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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은 May 14. 2024

취미 콜렉터가 남긴 것들

취미는 사물을 남기고…

나만큼이나 취미가 다양한, 아니 다양했던 사람이 있을까. 취미. 그러니까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다. 나는 손으로 사부작거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어릴 적엔 십자수나 뜨개질을 매우 하고 싶어 했고,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주머니 사정 및 ‘공부 안 하고 쓸데없는 것을 한다‘는 엄마의 도끼눈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고이 마음속으로만 간직했었던 나는 첫 수능을 본 후 봇물 터지듯 취미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일단 생각나는 취미 리스트를 추려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비즈공예.

고3 때 절친과 첫 수능이 끝나고 함께 비즈공예 공방을 다니며 다양한 액세서리를 만들어 보았다. 팔찌, 반지, 귀고리, 목걸이 등 반짝반짝한 물건들을 주로 만들었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이때 만든 액세서리 모음 상자를 이고 지고 다녔는데, 이번 이사를 계기로 이별을 고하였다.


비즈공예 공방에서 만들었던 액세서리

2. 캔들아트.

나에게 괴로움만을 안겨 주었던 첫 직장을 9개월 만에 퇴사한 후,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2달 동안 양초 공예를 배웠다. 소이 캔들이나 플로팅 캔들,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다양한 양초 만들기 기법을 배웠다. 신나서 왁스나 에센셜 오일, 만들기 틀, 색소, 비커 등을 잔뜩 구매해 한가득 지니고 있었는데, 신혼 때 당근을 통해 염가로 모두 처분했다. 너무 저렴하게 구매한 것이 기뻤는지, 구매자는 내게 스타벅스 기프티콘까지 보내줬더랬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호흡기나 환기 문제 등으로 인해 초를 켤 수 없어 아쉽지만 보내주어야 했다. 나의 캔들아트 취미의 흔적은 거실장에 있는 다양한 양초 공예 결과물로 남아 있지만, 이것들에게도 조만간 이별을 고할 예정이다.


3. 프랑스 자수.

신혼 때 시작한 취미다. 내가 결혼하던 때 즈음, 온라인 취미 클래스가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야근이 많았던 때라 온라인 취미 클래스는 내게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온라인 취미 클래스의 장점은 클래스 신청과 동시에 필요한 재료를 한꺼번에 배송해 준다는 점이다. 프랑스 자수 초보 클래스를 신청하니, 며칠 뒤 첫 작품을 수놓을 천 파우치와 수틀, 색색깔의 실, 그리고 바늘 등이 집으로 배송되었다. 강의를 수강하며 파우치와 에코백을 연달아 수놓고 나니 다양한 색상의 실과 여러 바늘, 그리고 자수 결과물이 남았다. 스티치를 좀 더 연구해 보고자 사들인 프랑스 자수 책과 함께 말이다. 이 취미를 시작할 때의 원대한 꿈은, ‘딸을 낳게 되면 내가 원피스나 티셔츠에 예쁘게 꽃을 수놓아서 입혀야지’ 였는데, 일단 첫 아이와 지금 뱃속의 아이가 아들인 데다가 하면 할수록 나는 자수에 소질이 없음을 깨달았던지라 자수 취미는 점차 내게서 멀어져 갔다. 물론 남은 자수 재료는 아직도 한가득 서재에 모셔두고 있다. 프랑스 자수 책과 함께 당근에 올려야겠다 싶지만 작디작은 미련이 남았는지 주저하고 있다.


4. 오일 파스텔.

오일 파스텔이 유행할 무렵, 나도 유행에 편승하여 오일 파스텔로 그림책을 쓰는 강의를 수강했더랬다. 한 달 안에 그림책 한 권을 만들어 보겠다며 야심 차게 시작했었는데…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이었던 때라, 이 취미는 육아에 방전되어 버린 내 체력이 허락해주질 않았다. 오일 파스텔 세트와 전문가용 스케치북, 그림책 제작 관련 책들이 이 취미의 결과물로 남았다. 몇 작품 그리지도 못했기에 아직도 못다 이룬 꿈으로 남아있다. 둘째 육아휴직 중에 다시 도전해 볼까 싶은 취미다. 가능하려나.


5. 아이패드 드로잉

프로크리에이트 애플리케이션으로 드로잉을 배웠었다. 드로잉을 해보고 싶어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까지 장만한 나는, 역시 뭔가를 시작하려면 잔뜩 준비물부터 구비하고 보는 초 조급증 대문자 P가 맞는 듯도 하다. 기초 강의를 수강하면 강사님의 최신간 드로잉 실용서를 증정해 준다는 말에 혹해 클래스101 초보자용 강의를 처음으로 완강했고, 나는 그 두꺼운 실용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기초 강의를 모두 수강한 덕에 지금도 인스타그램 업로드용 사진을 편집한다든가 하는 소소한 작업에 아주 유용하게 활용 중이다.


6. 수채화 드로잉

신입 시절, 멘토님과 함께 한 달 정도 인사동 화실에 다녔었다. 이때 잠깐 배운 수채화는 어릴 적 몇 년간 배웠던 전공 미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었고, 정말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들쭉날쭉한 야근만 아니었어도 꾸준히 화실에 다녔을 텐데 한 달만 배운 것이 너무나 아쉬워 혼자라도 배워볼까 하는 마음에 붓이라든지 물감, 팔레트 등을 틈날 때마다 사들였다. 그리고 이 물건들은 지금도 나의 ‘미련 박스’에 고이 모셔져 있다. 하나의 취미는 짐 한 꾸러미 이상을 남긴다. 그 꾸러미를 볼 때마다 중단한 취미에 대한 아쉬움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에 대한 괴로움이 교차한다.


7. 전통매듭

전통 매듭은 오래전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것이다. 실과 접착제 등 필요한 재료를 사고, 서울시립도서관에서 전통매듭 관련 책도 빌리는 등 본격적으로 배워보려 하였으나, 책은 한 달 가까이 연체되었고, 결국 작품 한 개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책을 반납하였다. 유튜브에 각종 강의들이 무료로 올라와 있어서 잘 따라 해 보기만 하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도무지 틈이 나질 않았다. 진득이 앉아서 뭔가에 집중하기에는 난 저질체력임을 여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이 외에도 손으로 사부작대는 것은 대부분 좋아하는지라, 원데이 클래스니 뭐니 다양하게 시도했었고, 만드는 동안에는 뿌듯하고 즐거웠으나, 그 결과물로 남은 물건들은 시간이 갈수록 처치 곤란인 ‘잡동사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직접 만든 건데’, ‘만들 때의 추억이 담긴 건데’, ‘이건 그때 그래서 만들었지’ 등 버리지 못하는 사유는 넘쳐흘렀다. 이제야 돌이켜 보니, 위에 열거한 다양한 취미들 중 뭐 하나라도 진득하게 몇 년간 해왔으면 전문가 못지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원체 이것저것 관심은 많은 반면, (엄마 말씀에 따르면) 지구력은 딸리는 나라는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을.


넘쳐나는 물건들을 처분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취미와 중단할 취미를 골라 보려 한다. 내 손을 떠난 취미와 연결된 물건들은 추억을 위한 사진 파일로 남긴 후 이별을 고하련다. 버릴 생각을 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리지만, 하나씩 하다 보면 산더미같이 쌓인 잡동사니도 조금씩 줄어 가겠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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