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10년 채우는 것은 쉽지 않지요
한참 동안이나 서랍 속을 굴러다니던 굿네이버스 10년 기부 인증서다. 종이로 된 것들은 보관을 오래 할수록 변하고 또 짐이 되기 일쑤인데, 나는 특히나 이런 종이로 된 것들을 잘 버리지 못한다. 참 볼 때마다 뿌듯해하면서도 일상에서는 딱히 들춰 볼 일이 없으니, 짐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이런 것들이 쌓이면 ’잡동사니’ 운명으로 귀결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관하다가 이번에 이사 준비를 하며 결국 인증샷(이지만 버리기 직전에 찍었으니 영정사진이라고나 할까)을 찍고 안녕을 고했다.
십 년을 넘게, 그러니까 글을 쓰는 기점으로 거의 15년째 매 달 기부했다고 하면 참으로 대단한지고 싶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금액이 월 1천 원으로 좀 소소하기 때문이다. 15 년 x 12 달 x 1,000원 = 180,000원. 15년을 꽉 채워서 기부해도 18만 원 정도뿐이다. 적은 금액이지만 나는 굿네이버스라는 기관에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소소하게 좋은 일을 한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좋았고, 귀가 길 매 번 나를 붙잡으려 하는 유니세프 봉사자들에게 “저는 이미 기부를 하고 있답니다^^”라고 완곡히 거절할 만한 명분이 생겨서 심적으로 편했다.
굿네이버스와 함께 한 이 가늘고 긴 인연의 시작은 다분히 속물적인 이유에서였다. 2009년 6월 29일, 대학교 도서관 앞에서 굿네이버스가 행사 부스를 차리고 학생들을 모았다. 호기심이 일어 들러 보았는데, 봉사자 한 분께서 나를 붙들고는 월 1천 원 이상씩 매 달 자동이체 기부를 약속하면 화장품 샘플 꾸러미를 준다고 꼬셨다. 화장품 하나를 꾸준히 쓰는 데 쉽게 질리곤 하는 나는 한창 화장품 샘플 써보는 데 재미가 들려 있었던 참이었다. 월 1천 원이면 용돈 내에서 크게 무리가 가지 않겠다는 생각에 덜컥 자동이체 서명을 하고는 샘플 꾸러미를 받아 왔다. 이게 참 적은 금액이라 꾸준히 기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듯하다. 돈 한 푼에 아쉽던 고시생 시절에는 천 원도 아까웠지만, 굳이 기관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기부 해지 절차를 밟는 데엔 또 내 귀차니즘이 이겨 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6월의 햇살 좋던 날, 가볍게 화장품 샘플 꾸러미로 나의 기부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기부에 관해서 잘 떠올리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통장에서 1천 원이 인출되었다는 문자가 울릴 때, 연초에 연말정산 기부금 영수증에 12,000원이 찍혀 있을 때, 기부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2009년 과거의 나를 칭찬한다. 우리 삼촌은 기쁨 중에서도 나누는 기쁨이 제일 크다고 말씀하셨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약 2년 전부터는 유니세프에도 약소하게나마 매 달 기부를 시작했다. 기부금을 굿네이버스에 기부하는 금액보다 20배 이상 늘렸는데 과연 이 기부도 10년 이상 지속할 수 있을까? 뭐든 10년이 고비다. 이 10년을 넘기면 평생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덕분에 세 번 연속 굿네이버스 서포터즈인 굿히어로서 활동도 할 수 있었다. 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관심을 두지 못했던 서포터즈 활동을 원 없이 해볼 수 있었다. 이름이 박힌 인증서와 기념 굿즈는 정말 내가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 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녀석들인데, 이번에 이 아이들도 모두 영정사진을 찍어주고 보내주었다. 이렇게 기록해 두면, 나중에 찾아볼 수 있으니까 안심이다. 이미 버린 후에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사진을 보며 마음이 그리 쓰리지 않은 것을 보니 잘 버렸다 싶다. 나도 버릴 수 있다. 하나하나 줄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