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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은 Apr 26. 2024

Prologue

맥시멀리스트라는 운명

  이사를 앞두고 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버렸다. 남편이 제발 이사 후에는 깔끔하게 좀 살자며, 바닥에 무언가를 두는 것은 절대 ’ 정리‘가 아님을 나에게 끊임없이 주지 시키는 바람에 나 또한 적잖은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혼 때 정리와 관련된 이슈로 박 터지게 싸운 후로는 서로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사 후에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남편을 보니, 나도 이제는 좀 정리라는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데 대체 정리는 어떻게 하는 거지? 외할머니도, 우리 엄마도 대체로 비슷한 모양새로 살았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타인의 집 내부를 온라인으로나마 접하게 된 뒤로부터는 우리 집이 깨끗하거나 깔끔한 쪽보다는 너저분하거나 정신없는 축에 속한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부터는 나도 좀 바뀌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지식을 활자로 익히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리’에 관련된 책을 접했다. 그중 가장 기억나는 책으로는 <심플 라이프>와  <시어머니 유품정리>가 있었는데(그러고 보니 둘 다 일본인 작가가 쓴 책이다), 특히 <시어머니 유품정리>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내가 갑자기 죽는다면 이 많은 (정리되지 않은) 짐들을 치우는 사람은 나를 얼마나 원망할까 싶으니 등꼴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평소 ‘죽음을 생각해라’라는 메멘토모리 정신에 심취해 있던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책이었다.


  다양한 ‘정리’ 관련 글을 읽어본 후 깨달은 바로는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이다. 일본의 유명한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말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라고. 일견 맞는 말이긴 하다만, 내가 소유한 많은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물건들을 보며 설렘을 느끼는 나는 대체 어떻게 구제해야 할 것이냐는 말이다. 세상에서 버리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나는 대체 왜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일단, 외할머니, 엄마, 나 모두 잘 못 버리는 사람, 일명 ‘꿍쳐놓는 사람’이다. 보고 배운 것이 아끼는 것(물론 아끼는 것과 못 버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인지라 버리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우리 3대 모녀라 할 수 있다. 버릴 때 죄책감이 드는 것은 모든 물건에 값어치를 매기고, 살 때의 가격을 잊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 자라며 보고 배운 환경이 그러해서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자, 그러면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일종의 ‘유전병’이라고 했을 때, 과감히 버리는 행동을 끊임없이 행함으로써 나는 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고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진심으로 이제는 정리해야 할 때가 오기는 왔다. 뱃속의 아이까지 아이가 둘. 더 이상 나의 추억거리를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함께 거주하는 공용 공간에서 자리를 많이 차지할수록 우리 아이들의 짐은 천장까지 쌓일 기세이기 때문이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그럼 나는 어찌해야 할까. 궁여지책으로 버리기 전에 ‘기록’이라는 것을 함으로써 죄책감을 덜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리의 달인이라는 배우 채시라 님이 한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다. ”필요냐, 욕망이냐 , 그것을 구분하고 욕망은 버리세요. “ 자, 이제 나도 필요와 욕망을 구분하여, 나의 욕망을 하나씩 덜어내려 한다. 나의 자잘한 욕망에 달려 있던 추억을 글로 풀어내고, 그 욕망의 영정사진을 찍어냄으써 미련을 버려보고자 한다.

  

  아무도 관심이 없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했던 물건들. 이건 그 물건들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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