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도 야망이 있다.

by 천정은


학창 시절에 열심히 공부 좀 할걸..

이라는 후회를 결혼 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간호학과에 가야지.. 대학병원에서 멋진 간호사가 돼야지..

과거엔 여기까지가 목표였는데, 아줌마가 되니 하루하루 야망에 불타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좀 더해서 약대나 의대로 갈걸..


육아를 하면서 18년 경력의 간호사가 되었지만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병원에서 원하는 시간에 하라는 업무를 일개미처럼 열심히 했다.

경제적인 이유라는 핑계로 나는 육아를 하면서 워킹맘이 됐다.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했는데 선배의 한마디는 내 정곡을 찔렀다.

조금 일찍 와서 미리 준비 좀 하면 얼마나 좋냐?

누구는 시간 맞춰서 안 오고 싶은 줄 알아?

저기... 저.. 아이 맡기고 오는데.. 아이가.. 울어서..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냉정한 직장의 세계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눈곱만큼의 정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한 내 잘못이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못한 공부를 지금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과 편입도 했고, 독서를 통해 글쓰기도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는 하기 싫던 공부가 아줌마가 되니 공부가 취미가 돼버렸다.

책 보는 게 즐거웠다.

영어도 하고 싶고, 중국어도 해보고 싶고, 또 컴퓨터도 배우고 싶어 졌다.

영어 잘해서 미국 간호사도 되고 싶고, 그래픽 디자이너도 되고 싶었다

물론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지만 아줌마가 되니 나는 야망이 불타올랐다.

젊은 사람이 하는 음악 공연을 보면서 드럼을 배우고 싶었고, 과거에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내 실력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 졌다.

아줌마가 돼서야 나는 절실히 느꼈다.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후회하지 않는 길임을...


학창 시절에는 하기 싫은 공부가 지금은 새벽부터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한다며 일어난다.

직장생활에 목매여 보니 내 시간 조차 직장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 후에도 회식이다 모임이다 라는 면목으로 끼어야만 했다.

왕따 되기 싫으면 말이다.

내 시간을 직장이라는 곳에 저당 잡히는 순간 나는 직장밖에 모르는 사람이 됐다.

18년 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통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지금에서야 나는 야망이 불타올라 새벽 5시부터 눈이 떠진다.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못다 이룬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이 나이에 대학원 진학을 할 수 있을까?

몇몇 공립대학에 전화를 해서 전문간호사 과정에 대해 물어봤다.

40대에 늦은 나이에 진학을 할 수 있을까?

학비는 얼마나 될까?

모집요강을 확인하세요..라는 대답 끝에 나는 저기.. 제 메일로 모집요강 좀 보내주세요..

사실 모집요강을 찾아봐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못 찾는 건지,,

상대방은 쌀쌀맞게 메일 주소 말하세요..

라는 말에 나는 열심히 내 메일 주소를 불렀다.

며칠 후 모집요강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야망에 불타올라 이것저것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지만 이 또한 아줌마이기에 가능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해라 라는 잔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더니 지금 아줌마가 되니 누군가의 잔소리가 그립다.

공부해라.. 책 좀 봐라..라는 잔소리 말이다.

나를 찾아주는 곳이 없어서 서럽고, 내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두렵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면 불타는 야망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 할 일을 다이어리에 적고 하나씩 지워나갔다.

책 쓰기, 독서, 헬스, 자전거 타기, 강의 듣기, 수학 가르치기

단순한 일들이지만 하루하루를 값지게 보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줌마라서 집에서 tv 보고 스마트폰 보고 수다 떠는 일상이 아닌 아줌마이기에 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오늘은 피아노를 치면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피아노가 내 유일한 취미였다.

아픈 엄마를 대신해서 나의 외로움을 달래줬다.

중학교 때까지 나는 피아니스트가 내 꿈이었다.

그런 내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나는 한 번씩 피아노를 치며 과거의 내가 되어본다.

손가락이 굳어서 그때처럼 자유자재로 연주하진 못하지만 내 가슴을 울리는 명곡은 지금도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다.

한 번씩 내 연주를 보며 아이들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엄마도 말이야.. 과거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오늘도 나는 한 곡 더 연주를 한다.

주위에 보면 이런 사람이 꼭 있다.

아줌마가 무슨... 그 나이에 뭘...

내가 혐오하는 사람이다.

맞다. 아줌마가 되니 기억력도 순발력도 지구력도 떨어진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배우는 수업은 늘 내가 꼴찌다.

선생님.. 여기 좀 봐주세요..

젊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늘 애타게 선생님을 찾았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젊은 사람보다 오기 열정 끈기는 더 뛰어날 테니 말이다.

오늘도 컴퓨터 수업을 받다가 선생님..

이해가 안돼요.. 다시 한번 설명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조금 미안했지만 나는 야망이 넘치는 아줌마다.


천천히 가면 어떠랴..

오늘도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아줌마여.. 야망을 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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