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눈물이....

아줌마는 눈물이 많다.

by 천정은


젊었을 때는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라곤 흘러본 적 없는 내가 아줌마가 되니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다.

내 감정이 메말랐나 봐,,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작은 것에 상처 받고 혼자서 눈물을 훔치곤 한다.

아마도 내 눈물샘이 마르지 않은 건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인 듯하다.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새벽 2시간마다 눈을 뜨면서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보면서 눈물이 주르륵 났다.

2시간마다 일어나야 해서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면서 나의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구나..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엄마라는 애기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날이 있다.

한편으로는 코 골며 자는 신랑을 보면서 괘씸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분유를 한 번도 타본 적도 없고, 아침이면 아이가 우는 소리가 안 들렸다며 꼬박 6시간씩 잠을 잤으니 말이다.

왠지 모르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지만 일하는 가장이라는 생각에 이해하기로 했다.


아이가 조금 자라고 나니 유치원에 들어갔고 졸업식과, 입학식 때 눈물이 났다.

아이 셋을 키우며 워킹맘이 었던 나는 다른 사람보다 아이의 학교나 유치원에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미안한 맘에 눈물이 났다.

아이들이 자라면서부터는 잠시 짬을 내서 자전거를 탔다.

해 질 녘 음악이나 강의를 듣고 자전거를 타면서 하늘에 지는 노을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참,, 고생했구나.. 힘들었지? 잘했어.. 너를 응원할게..

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노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 아줌마 뭔 일 있나?

라며 쳐다보곤 했지만 당시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의식 되질 않았다.


최근에는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쓰러져서 119를 타고 대학병원에 실려갔다.

코로나가 한창 일 때라 응급실 진입조차 어려웠다.

4시간을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면서 나는 온갖 걱정이 되었다.

창밖을 보며 흘렀던 눈물은 과거의 아버지로서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지난 세월에 대한 슬픔이었다.

아픈 엄마를 대신해서 늘 새벽 4시에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해서 도시락을 싸서 줬다.

그렇게 아버지라는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했던 생각이 나서 폭풍 눈물이 났다.

응급실에 도착 후 가쁜 숨과 고열로 야윈 아버지를 본 순간 나는 통곡했다.

코로나 검사가 나올 때까지 격리실에서 아무 처치도 받지 않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의료진에게 달려가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애타게 부르는데..

기다려라.. 코로나 검사가 나와야 처치가 들어간다..라는 간호사의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순간 나는 울면서 말했다.

당신들 의료인 맞아?

내가 이렇게 부르잖아요..

한 번만 쳐다봐 주면 안돼요?

그렇게 응급실 한복판에서 나는 울며 애원했다.

그 후 2개월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삶과 죽음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고 아버지는 지금은 퇴원을 하셨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야윈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났다.

2개월의 병원 생활 동안 주말마다 4시간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 당시 나는 진정한 의료인의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환자가 병이라는 죄목을 들고 찾아온 죄수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르지 않는 내 눈물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다 늙어버린 부모를 볼 때마다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사실 울고 싶을 때가 많지만 참아야 할 때가 많다.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슬픔이 전이될까 봐 최대한 참는다.

아줌마가 되고 나니 과거의 메말랐던 나의 감정들이 되살아 난 듯하다.

아무 일도 아닌 것에도 눈물이 나고 길을 가다가도 눈물이 난다.

이런 나를 보며 신랑은 갱년기라고 말한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줌마의 감수성을 알기나 할까?

갱년기라서 그러겠지..

약이나 사서 먹어..

퉁명하게 내뱉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한 번씩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생이 뭐 있나?

흥청망청 살아라가 아니라 가볍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소한 말 한마디로 상처 받고,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며 사는 내가 안쓰럽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 상대하느라 내 정신은 너덜너덜 해지는 순간마다 나는 인생 가볍게 살자.. 라며 다짐했다.

비우고 버리면 되는 거야.. 라며 나 자신을 다독였다.

과거에는 흥분해서 싸우고 부딪쳤지만 아줌마가 돼보니 인생 너무 애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소비하지 말자....

물론 한 번씩 컨트롤이 안될 때도 있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많다.

억지로 웃어보려 하지만 어색하기만 하다.

반대로 눈물은 참으려고 하지만 줄줄 새어 나온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눈물이 나고 예쁜 꽃만 봐도 눈물이 났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 인생에 여유가 없음을 느끼는 요즘은 더욱더 눈물이 난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산다는 건 바쁘고 안 바쁘고를 떠나서 내가 느끼는 내 감정의 상태인 거 같다.

바쁘게 살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일하느라 내 마음을 돌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삶의 쉼표를 쉬기 위해서 말이다.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내 마음의 여유를 불어넣기 위해서 말이다.

오늘은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20km를 달렸다.

내 삶을 재충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시간이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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