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혼자가 두려 운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혼자인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성격이 이상할 거야.
늘 혼자잖아.. 라며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힐끗 본다.
학창 시절만 봐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학교 가서 친구들을 잘 사귀라고 이야기한다.
작은 사회를 처음 접해본 아이들은 무섭기도 하고 두려울 텐데 말이다.
친구 많은 게 마치 학교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엄마 말대로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걸어본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니다.
그 친구가 새침하게 대한다거나,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하면 두 번 다시 그 사람에게 말 걸기가 두려워진다.
학교생활에 있어서 친구가 없으면 왕따, 은따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자연스레 엄마들도 학교에 입학하면 무조건 친구가 많기를 바란다.
아니 엄마가 나서서 친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교문 밖에 서서 어떻게든 엄마들 모임에 끼기 위해 이쪽저쪽 사람들에게 기웃거리며 말을 걸어본다.
그러다 나만 빼고 다른 엄마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면, 왠지 기가 죽는다.
대부분의 맞벌이 엄마들도 아이가 초 1을 앞두고 사직을 한다.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서 엄마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엄마들 모임도 초 1학년 때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퇴사를 하고 아이 뒷바라지를 하며 친구 만들기에 적극 나서게 된다.
신랑이 군인인 탓에 우리는 이사를 자주 다닌다.
적응하려고 하면 이사 가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친구관계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유치원에 다니던 막내아들이 어느 날 고민을 털어놨다.
엄마 아이들이 나랑 안 논대.
왜? 물었더니 친구들이 너는 우리 조직이 아니라고 했단다.
아들이 9월에 전학을 했는데, 그 무리 중 한 명이 넌 늦게 들어왔으니 우리는 너를 끼워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그 무리에 끼지 못한 채 혼자 딱지치기를 하고 왔다고 했다.
아이들 사이에도 이런 조직의 대장이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학창 시절을 무사히 넘기고 직장인이 되면 또 어떤가?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 집단에 들어가야 하고, 싫든 좋든 무리에 있어야만 한다.
그 무리를 탈출한 순간 왠지 왕따가 돼서 내 뒤통수가 따가워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같은 병원에서 일했던 동료는 어느 날, 교대 근무를 끝내고 집으로 가려는 중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잠깐 노조 사무실로 오라는 전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사무실로 향한 동료는 그날 저녁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렵게 들어온 병원이었지만,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노조에 가입하라는 선배의 말이었다.
간호 사끼 리 뭉쳐도 살까 말까 하는데 뭉치지 않고 개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이다.
동료는 자신의 뜻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선배의 압박에 못 이겨 노조에서 집단활동을 해야만 했다.
병원에서의 무리 생활이 마치 직장생활의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처럼 말이다.
혼자서는 절대 병원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없다는 게 진리다.
나 역시도 병원에 막 입사한 신규 때 몇 개의 동아리를 가입했다.
물론 내가 원해서 가입한 게 아니고, 반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
직장생활 편하게 하고 싶으면 동아리 활동도 하고, 같이 어울려야 한다는 선배의 충고였다.
마지못해 가입한 동아리 활동은 근무 후에도 업무의 연장이었다.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할 거야.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원치 않던 활동을 한 것이다.
말 한마디 못하고, 이 영화 보자고 하면 따라가고, 맥주 한잔 하고 가자고 하면 네.. 네.. 하면서 따라다녔다.
이게 직장생활의 기본인 줄만 안 것이다.
저는 제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라는 말보다는 직장에서 어울리며 술 한 잔 마시고, 함께 운동하는 사람이 승리자였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알아주지 않는 직장의 냉정함에서 나 역시도 많이 힘들었다.
내 동료 역시도 그런 집단생활의 강요에 몇 년 후 직장이라는 곳을 떠났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강의하면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고 있다.
무리에 끼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승진의 기회는 다른 사람의 것이 돼 버린다.
이런 냉혹한 세계에서 나 역시도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아이를 낳고 아줌마의 세계가 펼쳐졌다.
직장생활의 무리에 벗어나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정보를 알기 위해 가입한 맘 카페에는 모두들 몇 개월의 엄마입니다.
문화센터 같이 다녀요.
함께 마트 다녀요.
같이 밥 먹으러 다녀요.
글들이 수차례 올라왔다.
마치 혼자서 육아를 하고 있으면 외로움이 극대화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디를 가도 유모차 부대가 있고, 각각의 집들을 돌아다니며 하루의 육아 정보를 나눴다.
물론 이런 생활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줌마들의 대화는 늘 내가 아는 누구는,,, 내 친구는... 이라며 자신 주위의 사람들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주위 사람, 아니면 아이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나 역시도 관사 생활을 할 때 그렇게 하루를 다 보냈다.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에 엄마들과 함께 마트에 가고, 함께 맛집 투어도 했다.
그러다 신랑 흉도 보고 시댁 흉도 보면서 하루의 시간을 다 썼다.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몰랐고, 혼자 있으면 외롭다는 생각에 무리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 영양가 없이 말이다.
어느 날, 책을 읽기 위해 집 앞 근처 커피숍을 방문했다.
삼삼오오 모인 아줌마들은 어젯밤 있었던 일들을 일거수일투족 말하기 바빴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순서대로 맞장구치며 마치 자신들만의 전세방인 듯했다.
자신의 아이들은 잠시 잊은 채 하고 싶은 애기를 내뱉느라,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잊은 듯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힘든 상황이나 고민을 털어놓고 의지 하려고 한다.
수다를 떨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수다를 털고 자신의 힘든 상황을 열심히 토로하면 과연 스트레스가 해소될까?
나의 경험에는 허무함과 외로움이 물밀 듯 밀려왔다.
괜한 이야기를 했나? 내 속마음을 너무 보여주었나?
물론 믿지 못한 성격 탓도 한몫했겠지만 말이다.
혼자만의 힘으로 내 감정을 들여다봤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허무함과 외로움을 느끼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혼자의 시간을 갖지 않아서이다.
파스칼이 (팡세)는 인간의 불행은 빈 방에서 혼자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 않아서 생기는 거라고 했다.
이 말에 공감하는 이유는 ,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단 다수의 사람들에게 의지 하려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혼자라는 시간을 아니 외로움의 시간을 혼자 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의 저자인 나코시 야스후미는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구급 병동과 개인 클리닉에서 5천 명에 이르는 환자들을 만나며 그들에게서 공통된 문제를 발견했다.
현대인은 모두 소속집단에 단단하게 묶여 살아가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에 불쑥 찾아오는 깊은 공허감의 이유이다.
“잠시도 혼자 있을 시간이 없다면 오히려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관계에 집착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때 행복은 더 가까워진다.”
혼자만의 시간은 나의 마음을 마주하고, 내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집단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마음속 문제가 분명해지고, 본래의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