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나의 고민이나 생각을 말하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언제나 포옹해줄 것 같은 사람도, 언제나 내 편 일거 같은 동료도 어느 순간 내 뒤통수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내면을 꼭꼭 숨기며 남에게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내 아는 후배는 직장에서 자신이 1인 2역을 한다고 한다.
상사가 프로젝트 하나를 맡고 자신이 한 개를 맡아야 정상인데, 상사의 강요에 못 이겨 두 개의 프로젝트를 혼자서 다 해야만 했다.
서류에는 상사의 싸인으로 대신하고, 몸으로 뛰어다니는 건 다 자신의 몫이라는 말이다.
상사는 자신은 할 일이 많으니 후배 보고 다 하라는 식이다.
막상 상사의 하루 일과는 커피 마시고, 일 조금 하고 외출하고 오후에 어슬렁거리다 퇴근한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구청에 신고해서 감사라도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살기 위해 진실된 마음을 숨긴 채 네.. 알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저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대신할 순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직장을 떠나야 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살면서 나의 솔직한 성격, 나의 과거, 아픔을 들춰낸다는 것은 나의 단점을 저당 잡히는 꼴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직장생활에서는 어떻게든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가식적으로 웃고, 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초라하고 힘없는 자아를 안아주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러다 보니 가장 가까운 동료, 선후배라 할지라도 괜히 나의 고민과 아픔을 말하려다가도 망설여진다.
며칠 후 아니 당장 내일이 되면 몇몇 사람들이 수군대며, 세상에.. 이런 사람이었대..라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도 술자리에서 우리는 동료니깐 서로의 말은 비밀이야..라고 굳게 믿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아픈 과거나 현재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말해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마 그들을 믿어서 라기 보단 누군가가 나의 애기를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밤새 내 편이라 믿으며 서로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몇 달이 흐른 뒤, 응급실 근무를 하는데, 당직 샘께서 자연스레 누구누구 알죠?
이러는 거였다.
당황한 나는 어떻게 아세요?라고 묻자 자신의 동아리 후배라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털어놓았던 일급비밀이 소문이 난 거였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나와 관련된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다.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교훈을 남긴 채, 직장에서는 나도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다녀야만 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의 내면을 볼 줄 아는 안목을 키워야 하지만, 외적인 조건, 외적인 모습만 보고 홀딱 넘어간다.
상냥하게 대해준 상사, 가식적인 동료들 틈에서 나 역시도 외적으로 친한 척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의 직장생활을 하니, 어느 날은 옆에서 아부하는 동료나 후배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뒷 담화에 앞에서는 아첨에 내가 봐도 피곤해 보였다.
생존의 법칙이라고 하기엔 쇼. 쇼. 쇼. 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쇼를 하는 직장에서 견디다 보니 지금은 그 사람의 행동만 봐도 인성이 보였다.
처음에는 엄청 잘해주다가 뒤에서는 본색을 드러내는 사람, 이중인격을 보이며 험담 하는 사람, 인신공격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본질적으로 사람의 내면을 중요시하고, 내면이 꽉 찬 사람이 내 옆에도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은 sns를 안 하면 우주인 취급을 받을 정도로 누구나 하고 있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또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다분하다.
믈론 상업적으로 홍보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많다.
이 역시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내면은 감춘 채 외적인 모습, 외적인 행복을 자랑하기 위함이라고나 할까?
sns에 올리는 사진들은 절대 자신의 불행한 모습은 보여지지 않는다.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 여행, 맛집 탐방, 예쁜 아기의 모습, 고급 레스토랑 등 누군가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그런 사진들을 보면서 지금의 나와 너무 비교를 한다.
하루하루 반복 속에 지친 나의 모습과 달리 늘 외국 여행지에서 멋진 풍경과 외국 사람들 사이에서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좋은 음식점에서 음식을 음미하기보단 사진기를 들이 미는 게 먼저고, 지금의 마음 상태를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행복한 척 보여야만 한다.
이런 가식적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도 나 자신은 왠지 초라하다.
사진만 봐서는 부럽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행복한 얼굴, 행복한 식사, 행복한 여행을 경쟁하듯이 말이다.
아는 지인은 최근 책이 출판되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보였다.
sns만 보면 그야말로 꽉 찬 스케줄에 강연에 하루가 금방 지나갈 것처럼 보였다.
회사에 가면 vip대접받으며 강연을 하고, 끝나고 나면 맛있는 식사가 제공된다며 자신의 생활을 만족해했다.
그 누가 봐도, 1인 기업가로서 당당히 성공한 모습, 자유스러운 일상을 부러워할만했다.
사진 속의 자신은 행복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몇 달 후 그 지인과 차 한 잔 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엿들을 수 있었다.
강의를 하기 위해 홍보를 해야 하고, 무료로 해주라는 곳도 많고, 강의료도 조금밖에 안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홍보할 겸 열심히 달렸으나, 사실 지금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사진 속 모습만 봐서는 그 누가 봐도 부러워하는 모습이였으나,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말이다.
화려한 모습과 웃음으로 얼굴을 가리며 행복하고 싶어서 행복한 것처럼 사진을 올리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명문대생들 중 여유 있게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내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힘들고 좌절하더라도 남들에게는 긍정적인 면만을 내보이게 된다. 고 보도하고 있다.
힘들고 불안한 자신의 모습을 들춰내며 위로받기보단 그 모습을 꼭꼭 숨긴 채, 여전히 근사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급급 한다는 것이다.
나만 행복하지 않나 봐,, 남들은 다들 즐겁고 행복해 보이네 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자존감 하락은 어느새 자신을 부정적인 자아개념을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
나만 뒤처지고 있나 봐, 라는 생각으로 보여주기 위한 쇼를 선택하는 삶이 아닌, 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솔직해져야 한다.
싫으면 싫다. 부당한 건 부당하다. 아닌 건 아니다. 나는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떠날 거야.. 더 나은 삶을 선택할 거야.. 라며 부지런히 외쳐야 한다.
왜냐하면 행복은 당사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행복하고 누구나 잘살고 싶다.
그렇다고 가식적으로 보여주기 식으로 행복을 사고 팔 수는 없다.
한 줌의 행복이 아쉬운 시기다.
누군가 행복을 전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진정한 내가 정면으로 맞설 때만 행복은 나에게 올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할 줄 아는 용기가 있다면, 행복은 어느덧 나의 옆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