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불공평하다. 라며 지금껏 살았다.
누구는 물질적으로 풍요한 집에서, 누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
누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 먹고 명품을 대수롭지 않게 사고, 누구는 중고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것 한 개도 겨우 사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누구는 용돈 받아가며 생활하고 누구는 일개미로 평생 벌어서 학비 갚아야 한다.
몇 년 전 조선일보 손녀 사건이 뜨겁다.
10살 된 아이의 갑질의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가 치민다.
그렇게 부유한 집안에서 기본 예의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조선(일보)만 저러는 거 아닙니다. 제가 저런 집에 운전기사 했습니다. 소격동 k갤러리, 논현동 S케미컬 외손녀 등등. 꼬마들 갑질 대단합니다. 필리핀 보모 배를 발로 걷어차질 않나, 70대 요리사 아줌마에게 접시를 던지려 하고 운전하는 기사 얼굴에 장난감 물총을 쏘질 않나, 애 엄마가 차에 안 타고 있으면 ‘내가 엄마랑 똑같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잘리고 싶어’, 이루 말로 옮길 수도 없다. 조선일보만 저러는 거 아니다. 저 꼬마들이 자기네 회사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거지로 알고 있다.”
‘조선일보 손녀’ 사건의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지금 우리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지,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직책도 없는데 사무실에 나와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직원들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갑이라는 사람들은 오늘도 백으로 당당하다.
주위만 둘러봐도 백으로 사는 갑은 오늘도 막말하며 자기 맘대로 인생을 살아간다.
내 동료가 근무하는 병원은 원장님 사모님이 병원으로 출근한다.
남편이 의사인데 마치 자기가 사모라는 직함으로 말이다.
직원들에게 웃어라, 젊은 애가 왜 이리 애교가 없냐?
청소는 했니? 원장님 방은 왜 이리 더럽니?
화장 좀 하고 다녀라. 돈 벌어서 뭐하니?
그러니 연애를 못하지..
온갖 인신공격을 해가면서 갑질을 한다는 것이다.
뒤에서 고통받는 직원들은 깡으로 버텨보지만 늘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는 것이다.
남편 잘 만나서 사모님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거기에 맞는 행동과 언어를 사용해야 존경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하녀 부리듯 직원들에게 잔소리하며 간섭하는 사모를 누가 존경하겠는가?
내가 몇 년 전에 다녔던 병원장 사모님은 이와 대조적이다.
오픈 병원임에도 병원 한번 오지 않았지만, 어느 날 일을 하는데 한 아주머니가 원장을 찾았다.
당연히 환자인 줄 알았던 우리들은 잠시 앉아서 기다리세요..라고 했다.
고개를 숙이며 네,, 기다릴게요..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했다.
외모도 너무 수수했고, 손에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있어서 우리는 지인 분일 꺼라 생각했다.
검정 비닐봉지를 건네며 이거 하나씩 드세요..라고 했고 거기엔 유산균 음료수가 들어있었다.
한참 후에 가서 보니 그분은 원장님 사모님 이였다.
겸손한 태도와 행동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원장님을 만났고, 웃으며 남편에게 직원들과 식사하세요 하며 인사하고 나갔다.
그 후에 원장님 사모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한 번씩 이야기한다.
원장님 사모님은 멋진 분이신 거 같아요.
늘 뒤에서 남편을 존경하며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태도를 본받고 싶었다.
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겸손한 태도를 가졌다면 이 사회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누구나 백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p 씨는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깡으로 살아간다.
반면 같은 동료는 큰아버지 아래 부서에서 편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동료는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가장 편한 부서에서 일하며, 직장에서 인정받는 듯 보였다.
동료와 다르게 호랑이 상사가 있는 p 씨는 오늘도 야근이다.
야근 수당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상사가 남으니 어쩔 수 없다.
반면 동료는 오늘도 정시 퇴근에 늘 여유로워 보인다.
배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들리고, 졸린 눈을 비벼보지만, p 씨는 동료가 부럽기만 한다.
고민이 있으면 큰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 무언가 든든한 뒷 백이 있기 때문이었다.
p 씨는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고민을 털어놓을 수가 없다.
이게 생존법칙이라고 냉정하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직장생활에서는 밀어주고 손 좀 써주는 사람이 있어야 출세가 쉽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변변히 백이 없는 사람은 상처를 많이 받기도 한다.
같은 지역 출신, 명문대나 고등학교 동창 정도 되어야 그나마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다.
도와줄 지인, 선후배 라인이 없다면 일을 잘해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야근까지 해가며 열심히 일해 보지만, 승진 때 보면 라인이 있는 사람이 먼저 올라간다.
그래서 골프 쳐가며, 술 마셔 가며 시간을 보내는 라인들이 많다고 한다.
나 역시도 라인이 없어서 늘 일개미로 살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병원에서 직함 하나를 내걸고 누구를 뽑아야 하나?라고 하면 간호과장은 자신의 후배를 추천한다.
그것도 자신에게 잘하는 후배 말이다.
우스개 소리로 일 잘하려고 하지 말고, 선배들 인사권 있는 사람들을 잘 챙겨.
그분들하고 친해져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일끝 나면 내가 한잔 살게요. 제가 모실게요 라며 깍듯이 모신다.
이 부류에 끼지 못하는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묵묵히 일만 하며 나만의 라인을 만든다.
이렇게 살지 않겠어. 두고 봐.
내 라인을 내가 만들 테니.. 하고 말이다.
그래서 죽도록 독서를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병원의 모 공직자분이 치료를 받기 위해 방문했다.
그때 한참 시장, 교육장 투표로 시끄러운 분위기였다.
그 공직자분은 이번에 교육장으로 몇 번을 뽑아 달라고 했다.
나는 왜요? 그분과 아는 분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자신을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도와준 분이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여기까지 고속 승진하게 도와줬다는 뜻이었다.
이번엔 자신이 도와줄 차례라면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그분이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없었다면서 말이다.
한마디로 백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나도 그분을 도와서 이번 선거 때 승리하도록 하겠다
뭐 이런 뜻이었다.
실력도 노력도 백보다 앞설 수 없는 거라면서 말이다.
2주 후에는 그 공직자의 사모님이 우리 병원에 방문했다.
약간의 알코올 냄새가 나서, 혹시 술을 드셨냐고 물었더니, 반주로 조금 마셨다고 했다.
운전하고 오신 건 아니죠?라고 물었더니, 하하하 웃으며 걱정 마요.. 이곳 경찰서장 와이프랑 같이 마셨으니깐... 이렇게 말한다.
언제 음주 단속을 나오는지도 정보를 알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며 자신의 백을 자랑했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원망하지 않고, 잘살기 위해 인생의 불공평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말이다.
그러나, 한번씩 회의감이 드는 건 왜일까?
왜 힘없는 약자에게는 무거운 소금가마니 하나씩을 지고 낑낑거리며 살아야만 하는지 마음속 한 구석이 울컥했다.
대하소설 작가 조정래 선생이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란다.
인생에는 두 가지는 공평합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 어느 철학자가 인생은 원인의 철학도, 결과의 철학도 아니다. 경과의 철학이다.라고 말했지요. 그 경과 속에는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 들어 있어요
그때부터 나는 나만의 노력, 아니 나만의 백을 만들기로 했다.
내가 아는 나만의 백이라는 것은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엮어가자는 것이다.
동창도, 같은 고향도, 동기도 없지만, 내 라인을 내가 만들어서 길을 만들기로 했다.
또 한 가지는, 남의 말을 잘 믿지도 듣지도 않는다.
나를 위한 말이건, 나의 잘못을 지적한 말이건 간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유명한 작가이자 명강사인 한 교수는 남의 말을 안 들은 것이 내 성공의 비결이라고 했단다.
속된 말이지만 똥개는 짖어도 열차는 간다. 그게 자신의 신조라는 것이다.
너무 우울해하지도 말고, 남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내 라인을 타고 쭉 걸어가면 된다.
다음의 두 가지 사례를 보며, 어떤 인품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한 정치가는 외출하기 위해 건물에서 나왔는데도, 자신을 태울 차가 나타나지 않자 날 뭘로 보고? 라며 격분했다고 한다.
캐리어 논란인 김 의원은 일본에서 귀국해 김포공항 입국 문을 나설 때 자신의 캐리어를 수행원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밀어 패스하듯이 건넸다.
누리꾼들은 권위주의 모습이라는 비난을 했다.
이런 반응에 김 의원은 자신의 행동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반해 혼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 씨가 현역에서 열심히 뛰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 공장을 시찰하러 갔을 때 혼다 씨를 태운 자동차가 문 앞에 도착하자 수위가 다가왔다.
통행증 좀 보여 주세요.
깜빡했어요.
그럼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수위는 가차 없었다. 그가 사장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혼다 씨는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려는 동행자를 만류하고 통행증을 다시 가지러 가기 위해 차를 돌렸다.
결코 잘난 척하지 않는 혼다 씨의 인품을 느낄 수 있는 일화다.
어떤 회사에서 복도를 걷던 한 신입 여성 사원이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왜소한 노인을 발견했다. 목례를 하고 지나쳤지만, 청소부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 노인이 아들에게 사장 자리를 넘겨준 선대 사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식은땀을 흘렸다고 한다.
자리 차지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오늘도 백 줄 에서 땀 흘리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도 허세 부리는 사람들에게 아부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 사람들에게는 배울 것이 없다.
겸손한 사람들은 라인과 백이 있더라도 티 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제는 나만의 라인에서 묵묵하게 살아보자.
내일의 태양을 내 손으로 잡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