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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정은 Mar 02. 2021

당신의 월급은 일한 대가가 맞습니까?

교수님, 교수님 너무 성의 없으신 거 아닌가요?

자기 부모 아니라고 함부로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요?

아님 책임지는 행동을 피하기 위한 건가요?

교수님 당신의 월급은 일한 대가 맞습니까?

중환자실 앞에서 나는 속으로 대뇌 었다.

시술은 10분도 안돼서 끝났고, 아버지 상태는 절망적이다 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미 안 좋아져서 병원에 왔다.

약을 써보기 하지만 2명 중 1명은 사망한다.

이 설명을 듣기 위해 중환자실 앞에서 이틀 밤을 꼬박 밤새웠다.

그날 나는 그 교수의 면전에 욕하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아픈 사람만 억울하다. 아픈 사람이 죄인이다.

는 생각으로 그날 하루를 보냈다.

월요일까지 72시간의 밤을 새운 후 다시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4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3일 동안 엄마 없이 지낸 아이들 생각과 생계 전선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속버스 안에서 그 교수의 프로필을 보기 위해 그 대학 병원을 검색했다.

그 교수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고, 최근 지방 방송에 1분 건강 강의를 했었다.

모니터 앞이라 그런지 미소를 띠며 말하는 모습이 역겨웠다.

분명 내 앞에서는 딱딱한 표정과 내 질문에 귀찮다는 식의 대답이었는데 말이다.

대중 앞에서는 웃는 모습을 , 뒤에서는 차가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의료인의 진실된 모습일까?

그날 그분의 이중적인 모습에 쓴웃음이 나왔다.

강자에게는 고개 숙이고, 약자한테는 뻣뻣하게 고개 들고 있는 모습에 말이다.


왜 교수님은 저에게 상처를 주나요?

당신의 행동은 최선이었습니까?

적어도 보호자 입장에서 공감해주는 척, 아니 위로해주는 척이라도 해주면 안 되나요?

자신의 말에 상처 받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를 바란다.

값비싼 진료비와 치료비를 지불한 만큼 최소한의 설명과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컴퓨터 화면만 보는 그분의 태도는 몇 날 며칠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교수님께 인성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아버지 상태가 안 좋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이 한마디가 그렇게도 어렵냐는 거다.

당신은 일한 만큼 월급을 받고 있습니까?

설명하기 귀챦고, 시술하기 귀챦고, 주말은 다 쉬고 싶고, 응급환자도 뒷전이면 뭐하러 높은 직위까지 달았나 싶다.

물론 누구나 주말은 쉬고 싶고, 자신이 높은 자리니깐 주말까지 출근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은 위급한 환자를 살릴 의무가 있다.

그래서 의료인들이 존중받고 월급도 남들보다 많이 받아가는 게 아닌가?

맛있는 거 먹다가 달려올 줄 알고, 여행 가서 되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직업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왜냐고?

가장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교수 한 명을 바라보며 시골에서 새벽차 타고 올라오고, 누군가는 중환자실 앞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환자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교수를 기다리는 심정을 그들은 아는가?

72시간을 중환자실 앞에서 뜬눈으로 지새우며 나는 지난날 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나 후회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를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물론 직업의식 발휘하는 의사들도 많다.

언니가 아파서 1년 가까이 간호하면서 나는 진정한 의료인을 만났다.

그 교수는 나에게 언니의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했다.

동생이 옆에서 간호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들도 최선을 다해보겠단다.

그렇게 교수와 주치의 선생님들은 언니를 위해 노력했고, 옆에서 늘 나를 다독여 주었다.

또한, 퇴근도 안 하고 trachostomy tube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의료인의 모습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기적적으로 살아난 언니의 기사를 교수는 의학 잡지에 실었다.

외래 진료를 보기 위해 교수를 만났을 때, 동생 덕분에 언니가 살아났다며 나를 안아줬다.

그날 나는 그분의 따뜻한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의료인들은 알아야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보호자의 심정을 말이다.

그리고 의료인이라면 최선의 말과 행동을 해야만 한다.

힘들면 관두면 된다.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의료계에 있으면 안 된다.

환자는 약자, 죄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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