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정관헌에서
문화재청과 스타벅스가 마련한 명사초청행사덕에 덕수궁 정관헌을 처음오게됐다. 이렇게 아름다운곳에서 매달 문화행사를 하고 있었구나. 자주 검색해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리톤선생님의 공연이 끝나고 이쁜 아나운서 누님의 소개로 조훈현선생님이 큰 박수와 함께 등장 하셨다.
해본거라곤 바둑뿐이라며 이런 자리가 쑥스럽다고 하시면서 간이 쪼그라든다고 하시는데, 참 인간적인 첫 모습과 함께 선생님의 바둑인생에 대해 듣게 되었다.
네살때 아버지 바둑 훈수로 시작해서 어린나이에 가게된 일본바둑유학 그리고 그곳에서 노스승님과의 특별한 인연, 군대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사연과 생계를 위해 바둑을 두게 된 이시대의 가장의 모습, 하나뿐인 제자에게 모든 타이틀을 내주면서 마음을 비우게 되었고 다시 재기하게된 이야기까지 쉴 틈 없이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가 선생님의 책을 사 읽어서 망정이지(나오자마자 샀다.) 책 을 안 읽고 스벅에서 커피랑 빵을 준다고 해서 온 분들은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선생님이 이런자리에 익숙하지 않으시고,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은채 긴 세월을 1시간만에 풀어놓으려고 하니 이야기의 흐름이 흐릿한것도 사실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모습이 더 좋았고 울림이 있었다.
말을 조금 더듬기도 하고, 이리갔다가 저리가는 이야기지만(물론 책 읽은 사람은 머릿속에 다 그려진다.) 그속엔 찐한 감동이 묻어났다.
특히 가장으로써 돈을 벌기위해 목숨걸고 바둑을 두게 됐다는점이 선생님도 이 시대의 아버지구나 싶었다. 여동생의 대학등록금을 벌기위해 나갔던 부산일보배에서의 우승상금 30만원이 값졌다고 하셨다.(어느 바둑보다도 더 열심히 바둑을 두었다고 하셨다.) 30만원짜리 수표를 은행에서 100원짜리 동전으로 다 바꿔서 온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집에 들어갔을때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일본유학시절 노스승님에게 배운 단 한가지는 '먼저 사람이 되어라' 였다고 한다. 사람이 되지 않고는 바둑을 잘 두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 나에게도 깊게 다가온다.
선생님의 바둑스타일은 정석을 무시하는 바둑이었다고 한다. 변화무쌍한 바둑으로 정석대로 바둑을 두는 상대들을 혼란시키고 제압하셨단다. 그렇게 모든 타이틀을 석권하셨지만 재미있는건 또 모든 타이틀을 가져간것도 올곧은 정석스타일의 바둑을 펼치는 제자 이창호9단이었다.
이창호9단과는 아직도 서먹서먹 하신가보다.
그렇게 긴 이야기도 없으셨고, 타이틀을 빼았겼을때를 얘기하시면서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셨다.
그렇게 짧은 선생님의 바둑인생이야기가 끝나고 질문과 답변 그리고 사인회가 이어졌다.
놀라운건 생각보다 사람들이 책이 없어서 에이포용지에 사인을 받아가는거였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의 친필사인 :)
왜이리 오래 걸리나 보니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난 사진은 안 찍고 선생님께 악수를 부탁드렸다.
선생님의 기를 받고 싶다고.
전 같으면 기를 팍팍 줄텐데 지금은 아니라며 쑥스럽게 손을 내미셨고, 나는 53년동안 바둑만 두어온 전설의 국수의 따뜻한 손을 잡으며 오롯이 그 기운을 느꼈다.
받은 그 기운 브런치가족분들에게 나눠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