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과 바둑인생 60년

덕수궁 정관헌에서

by 찌기

문화재청과 스타벅스가 마련한 명사초청행사덕에 덕수궁 정관헌을 처음오게됐다. 이렇게 아름다운곳에서 매달 문화행사를 하고 있었구나. 자주 검색해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리톤선생님의 공연이 끝나고 이쁜 아나운서 누님의 소개로 조훈현선생님이 큰 박수와 함께 등장 하셨다.

해본거라곤 바둑뿐이라며 이런 자리가 쑥스럽다고 하시면서 간이 쪼그라든다고 하시는데, 참 인간적인 첫 모습과 함께 선생님의 바둑인생에 대해 듣게 되었다.


네살때 아버지 바둑 훈수로 시작해서 어린나이에 가게된 일본바둑유학 그리고 그곳에서 노스승님과의 특별한 인연, 군대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사연과 생계를 위해 바둑을 두게 된 이시대의 가장의 모습, 하나뿐인 제자에게 모든 타이틀을 내주면서 마음을 비우게 되었고 다시 재기하게된 이야기까지 쉴 틈 없이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가 선생님의 책을 사 읽어서 망정이지(나오자마자 샀다.) 책 을 안 읽고 스벅에서 커피랑 빵을 준다고 해서 온 분들은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선생님이 이런자리에 익숙하지 않으시고,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은채 긴 세월을 1시간만에 풀어놓으려고 하니 이야기의 흐름이 흐릿한것도 사실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모습이 더 좋았고 울림이 있었다.

말을 조금 더듬기도 하고, 이리갔다가 저리가는 이야기지만(물론 책 읽은 사람은 머릿속에 다 그려진다.) 그속엔 찐한 감동이 묻어났다.


특히 가장으로써 돈을 벌기위해 목숨걸고 바둑을 두게 됐다는점이 선생님도 이 시대의 아버지구나 싶었다. 여동생의 대학등록금을 벌기위해 나갔던 부산일보배에서의 우승상금 30만원이 값졌다고 하셨다.(어느 바둑보다도 더 열심히 바둑을 두었다고 하셨다.) 30만원짜리 수표를 은행에서 100원짜리 동전으로 다 바꿔서 온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집에 들어갔을때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일본유학시절 노스승님에게 배운 단 한가지는 '먼저 사람이 되어라' 였다고 한다. 사람이 되지 않고는 바둑을 잘 두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 나에게도 깊게 다가온다.


선생님의 바둑스타일은 정석을 무시하는 바둑이었다고 한다. 변화무쌍한 바둑으로 정석대로 바둑을 두는 상대들을 혼란시키고 제압하셨단다. 그렇게 모든 타이틀을 석권하셨지만 재미있는건 또 모든 타이틀을 가져간것도 올곧은 정석스타일의 바둑을 펼치는 제자 이창호9단이었다.


이창호9단과는 아직도 서먹서먹 하신가보다.

그렇게 긴 이야기도 없으셨고, 타이틀을 빼았겼을때를 얘기하시면서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셨다.


그렇게 짧은 선생님의 바둑인생이야기가 끝나고 질문과 답변 그리고 사인회가 이어졌다.


놀라운건 생각보다 사람들이 책이 없어서 에이포용지에 사인을 받아가는거였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의 친필사인 :)


왜이리 오래 걸리나 보니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난 사진은 안 찍고 선생님께 악수를 부탁드렸다.

선생님의 기를 받고 싶다고.

전 같으면 기를 팍팍 줄텐데 지금은 아니라며 쑥스럽게 손을 내미셨고, 나는 53년동안 바둑만 두어온 전설의 국수의 따뜻한 손을 잡으며 오롯이 그 기운을 느꼈다.


받은 그 기운 브런치가족분들에게 나눠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