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llie Dec 11. 2019

프레임, 주어진 것과 만들어가는 것

일에 대한 우리들만의 프레임을 그려보면 어떨까요?

연말입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과 한 해를 준비하는 시간이 공존하면서 다이어리가 부쩍 눈에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다이어리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름 효율적인 방법론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정작 저 자신에게 맞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당연히 사둔 다이어리를 온전히 제대로 사용한 적도 없지요. 그래서 전 늘 무지 노트나 수첩을 사용합니다. 그냥 제약이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가는 게 전 더 편하더라구요. 업무리스트 정리를 엑셀로 하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노트나 폰의 메모에 남겨놓거나 혹은 브런치의 글로 임시저장을 해놓기도 합니다.


살면서 생각보다 여러 형태로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서 움직이도록 강요받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겠죠. 뭔가 맞지 않음을 느끼는 건 제 경우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제 경우 기억에 남는 타인의 관점으로 제 자신이 평가를 받았던 최초의 경험은 대학 동아리였습니다.(물론 학창시절이 가장 전형적일 수도 있지만 너무 전형적이라 아예 그런 생각들을 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듯 합니다.) 매주 토요일에 자원활동을 나가는데 가끔 개인적인 일들로 빠지는 우리들을 보며 선배들은 개인주의적이라는 단어를 남겼습니다. 아마도 선배들이 알던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던 가치와 신입생으로서 우리들이 생각하던 가치가 달라서 였겠죠. 그렇게 한동안 우리들은 개인주의적인 신입생들이 되었습니다.


조직이 만드는 프레임이라는 걸 체감적으로 배운 곳은 군대였습니다. 강제된 프레임에 일방적으로 우리들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강제된 프레임 덕분에 그 강제성에 어느 지점에서 'NO'를 말해야 하는지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어느 지점이 소위 말하는 '선'을 넘는 것인가?에 대해 상황을 놓고 판단하는 나름의 주관적인 기준이라고 할까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HR을 하는 사람으로서 조직이 부여하는 프레임을 그 안에서 움직이지만 그 프레임에 매몰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프레임에 매몰된다는 건 그 조직이 지시하는 것의 옳고 그름에 대한, 다시 말해 '선'을 넘는지 넘지 않는지에 대한 판단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래서 그 프레임에 매몰되지 않는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찾은 그 기준은 바로 '일'입니다. 제가 HR을 하면서 일과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일은 그 자체로서 감정이 없습니다.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감정이 있을 뿐이죠. 다시 말해 우리가 일에 대해 그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왜 하는지, 그 일을 통해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의 기준값으로 잡을 수 있다면 우리가 상황에 따라 우리들의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일에 대해 하는 판단은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를 일을 중심으로 하는 프레임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종전에는 조직에서 제시한 프레임 안에서 우리들이 그 조직에 맞추는 방식을 취해왔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도 여전히 자주 보이는 방식이기도 하구요. 일전에 어느 학교에 지원하는 친구의 지원서를 잠시 본 적이 있었어요. 저에겐 생소한 전공이기도 하지만 조금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네가 하고자 하는 방향은 A인거 같은데 왜 B를 내용에 썼냐고.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해당 학교에서 좋아한다고. 작은 이야기이지만 사실 이런 모습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지요.


악동뮤지션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를 자주 듣진 못하지만 그들을 우연히 TV에서 마주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건 그들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 프레임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노래와 TV 속 모습을 통해 전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그 분들을 몰라요. 그냥 제 느낌이 그렇습니다.)


박사과정을 진학할 때 결정을 망설이게 했던 가장 큰 요인이 대학원 박사과정이라는 프레임이었습니다. 저는 좀 더 배우고 배운 걸 같이 이야기하고 실무경험이 이론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무언가 정해진 게 명확한 프레임이 보였기에 조금은 망설였다고 할까요. 가진 게 없는 자로서 현실에서 작게나마 인정해줄 수 있는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인식과 그 프레임이 주는 힘듦도 있겠지만 무언가 계속 생각하고 배운다는 즐거움도 있기에 입학을 했고 그 첫 1년, 2학기 동안 여실히 두 가지 상반되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만나고 있습니다.


제 경우 엄밀히 말하면 머리가 나쁜 탓에 남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지했던 게 남들의 생각이 아닌 제 생각을 시작점으로 이어가며 스스로 프레임을 만들고 그 과정 중간중간에 다른 분들의 생각을 더해가며 생각 프레임을 계속 고쳐가게 했던 계기였습니다.  생각의 기준이 남들이 정답이라 제공한 프레임이 아니라 제가 생각한 프레임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대학원에서 제가 마주한 과제 중 하나가 남들과 프레임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가 되었습니다. 사실 조직 내에서 면담을 하면서도 늘 가지는 주제이기도 하구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든 그 혹은 그녀와 제가 항상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2019년에 고마운 경험을 하나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진 일에 대한 프레임을 처음 보는 분들에게 전달하는 기회가 있었고, 3개월의 과정이 끝나고 주셨던 '고마움'에 대한 메시지를 만났습니다. 제 생각에 공감해주신 분들이 있다는 것, 여전히 다소 ideal한 이야기들을 진지하고 재밌게 받아주심에 감사한 마음을 담고 12월을 보냅니다. 지나온 시간만큼 제가 가진 생각의 프레임도 성숙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노력합니다. 스스로 돌아보고 다른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물론 머리 한계로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요. 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죠. :)


한 해를 정리하며 우리들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일에 대한 우리만의 프레임을 그려보는 것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HR에 있어 '대화'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