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llie Jan 12. 2020

글쓰기, 일상의 기록

일과 사람과 조직, 그들 속 어딘가에 있는 나의 이야기

"글" 이라고 할 만한 걸 처음 써본 건 군대에서 였습니다. 입대해서 자대배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집에서 이런저런 간식과 가볍게 볼 수 있는 잡지를 보내주셨죠. 그 중에 페이퍼(PAPER)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그 때 독자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실어주는 란이 있었고, 사실 군대라는 곳에서 조금씩 시간이 날 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가볍게 글을 써서 보냈다가 실렸었죠. 그 후로 군대에서부터 조금씩 무언가 기록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복무시절엔 군대이야기를 할 수 없고 대신 개인 생각을 '시'의 형식을 빌어 기록하기 시작했죠. 나중에 혼자 생각했던 건 이게 결국 '일기'라 말할 수 있겠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만 어릴 적 선생님의 검사를 받기 위해 쓰는 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하루를 기록하고 싶을 때 하는 '일기'라고 말이죠. 어릴 적엔 일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못하고 숙제로 작성했었다면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야 비로소 '일기'라는 것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제대하고 복학을 하고 나서도 생각들을 정리하는 습관은 계속이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찮가지였죠. 고시원과 자취 등을 전전하면서 기록들이 없어지는 걸 보면서 온라인에 기록하기도 했고 그 동안 썼던 글들을 엮어 비매품으로 시집도 한 권 만들었습니다. 5권 정도 만들어서 가족들과 개인적으로 친한 분들께 드렸지요. opellie라는 아이의 생각들을 말이죠. 

시라는 게 특별히 무언가가 떠올라서 쓰는 게 아니다. 시는 그냥 자기 일상에서 개개인들이 느끼는 무언가가 있을 때 그걸 기록해 놓으면 되는 거다. 그게 형식상어디에 속하냐에 따라 시가 될 수도 소설이 될 수도 수필이 될 수도 있다. - 언젠가 들었던 어느 시인분의 강연 중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의 기록
opel 그가 사는 이야기 중에서, by opellie
시라고 하기엔 정말 시를 쓰시는 분들에게 부끄러워 내 스스로 '낙서'라 부르던 것들, 일종의 일기라 할 수도 있지만 어릴 적 내개 강제로 다가왔던 일기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건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내가 하고 싶어서, 단지 그 한 가지이다.
opel 그가 사는 이야기 중에서, by opellie


저에게 브런치는 일종의 기록장입니다. 하루 24시간 중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대상이 'HR이라는 일'이기에 그 '일'에 대해 기록한다는 건 제가 살아가는 '하루'를 기록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어떻게 했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할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렇게 일에 대해 기록하면서 일을 돌아보고 그 일을 하는 opellie를 돌아보고, 일이 영향을 주고 받는 조직과 리더를 돌아보고 다시 그 돌아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글"은 그렇게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겠죠. 그 기록을 통해 '나'와 '일'과 그것을 이어주는 생각과 행동들을 돌아봅니다. 


어릴 적엔 일기쓰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검사를 받기 위해서 했던 것이라서 일까요? 어쩌면 딱히 쓸 이야기도 없는데 무언가를 써야만 한다는 강제가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씁니다. 대단히 잘났다거나 정말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 아니라 한 개인의 생각, 특히 HR이라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을 씁니다. 그 일을 통해 바라본 나와 사람들과 조직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남깁니다. 그래서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제 글을 보시는 분들께 글로나마 감사를 드립니다. 


2019년도 평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성본은 아니지만 제도변화를 위한 기본 틀로서 평가제도를 조금씩 바꿔가는 두 번째 해입니다. 그 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기록'입니다. 본인평가를 통해 스스로 자신이 한 일을 기록하고 상사평가를 통해 평가의 근거와 의견을 기록하는 과정입니다. 보다 명확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 본인평가와 상사평가의 단계를 나누어 공지를 하고 있기도 하죠. 아직도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을 어려워 합니다. 아직 평가제도에 대한 경험이 적은 분들은 그래도 빠르게 적응하지만 오히려 사회생활을 오래하신, 그래서 평가의견이 아닌 통보 방식의 결과평가에 익숙한 분들은 이러한 방식을 생각보다 많이 어려워 합니다. 여전히 간혹 "평가등급만 기재하면 되는가?" 라는 문의가 들려오고 이에 대해 저는 "평가의견도 작성하셔야 합니다"라는 답을 반복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평가제도의 목적이 보상보다는 성장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평가제도를 통해 그 기록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 일해온 동료를 돌아보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고자 한다고 할까요. 


글을 씁니다. 아니 기록을 합니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기록을 공유하고 기록을 돌아봅니다. 모 글로벌 기업은 A4 6page의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말도 들리는 시점입니다. 언론 기사들은 ppt가 도입되었던 취지를 잃었음을 이와 함께 이야기하지만 A4 6page를 일정 기간 반복해서 작성하다보면 ppt가 아니더라도 점차 그 분량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존에 ppt가 효율적이지 못했던 건 그 ppt에 요약되어 있는 A4 6page의 내용을 모른 채 ppt를 작성하고 설명했던 까닭이라 생각합니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여느 논문들에 있는 한 두 문단의 abstract을 작성하고 있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험이 늘어날수록 bias도 늘어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