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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May 30. 2020

경험에 대하여

경험, 경험을 보는 관점, 그리고 리더

임직원 중 누군가 면담을 요청하고 같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하고자 하는 건 만일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이라는 질문을 속으로 던져보는 일입니다. 인사팀장으로서 혹은 무언가 좀 더 높은 위치에 있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내 자신이 더 잘났음을 보이기 위함이 아닌 저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상대방이 얼마나 고민하고 있고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저도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입니다. 물론 온전히 같아질 수는 없겠으나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비추어보면 그런 노력이 나름 긍정적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각보다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지금 우리에게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경험을 이미 지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경험을 했을 때 힘들고 서운하고 속상했지만 상급자가 하는 이야기에 뭐라 말할 수 없어 끙끙거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걸 잊고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 때의 내가 아니라 상급자로서의 나이니까 '모르는 것을, 혹은 아닌 것을 모른다고 혹은 아닌 것이라고 말할 용기가 없는' 상급자로서 '나'이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같은 경험들을 해도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 경험이 그 받아들이는 사람을 통해 발현되는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수직계층이 매우 강한 조직에서 경험이 어떤 이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다른 어떤 이에게는 자신이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모습의 리스트에 올리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그 경험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어떤 이는 그 경험이 왜 일어나는가?를 고민합니다. 어떤 이는 지나온 시간의 경험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시간 속 상대방으로서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무언가를 행위자가 되어 당연한 것으로 행하기도 하고, 다른 어떤 이들은 그 불합리함을 작은 움직임으로서 조금씩 개선해나가려 노력합니다. 동일한 경험이라도 경험이 누적되어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의 모습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로서 제가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입대하고 갓 자대를 배치받았을 무렵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적어도 내가 배치받은 이 부대의 모든 사람들은 나보다 이 부대에 대해 하루라도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만큼 내가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일정한 경험이 만들어지는 어느 시점이 되면서부터 나보다 먼저 있었던 분들 중 어느 분들 경험이 멈춰있음을 확인했지요. 한 분대를 이끄는 리더로서 분대원들이 진심으로 따를 수 있도록 원칙을 가지고 스스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의대로 소대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그 경험들이 발현되고 있었고, 제가 생각했던 건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라는 다짐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리스트'를 만들어갔던 셈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이 원리는 동일했습니다. 팀원의 건의사항을 자신의 공으로 가로챈 어느 팀장의 모습도, 직급이 높다며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했던 어느 리더도,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했던 상급자의 모습도 그렇게 제 머리 속에 그려진 제가 되지 말아야 할 리더의 모습들로 만들어졌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늘 조심스럽고 생각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모습이 나오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때문이겠죠. 늘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는 일은 생각만큼 마음 편한 일은 아닙니다. 올해 초에 그런 적이 있습니다.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다가 실수를 했지요. 마음 속에 뭔가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무언가를 느끼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노라고. 그건 제가 말을 잘못했노라고. 말하고 났을 때의 속시원함은 절대 잊지 못합니다. 


경험이란 무작정 많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닐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일에 대한 사고를 하기 위해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듯, 경험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에도 일정 수준의 경험은 필요합니다. 통계 등의 데이터 분석을 할 때 일정 수준의 데이터가 확보되어야 비로소 그 다음 단계의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중요한 건그러한 경험들이 일정수준 갖추어져 있음을 전제로 그 경험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왔는가가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경험을 우리는 매 순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과거에 경험이 많다가 아니라 매 순간 경험을 마주하고 있지요.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경험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들을 마주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지금의 경험을 재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의 경험을 통해 지금의 나는 계속 배우고 있는지, 과거의 경험으로 상대방의 경험에 조금 더 공감해줄 수 있는지 말입니다. 


어느 팀의 면접에 참여를 했습니다. 지원자 분 모두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 경험을 통해 생각하고 있는 면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그 경험에서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적어도 그 분들은 모두 경험대로 하면 된다가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면접 내내 거의 질문을 하진 않았지만 그런 면에서 행복했던 면접이었다라고 말할 수는 있을 듯 합니다. 


맺음말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다른 말로 표현하면 리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리더란 경험을 통해 얼마나 배우고 있는지, 단지 이런 경험을 했어서 그대로 하면 되가 아니라 이런 경험을 했는데 이런 부분에 변화를 주면 더 나아질 수 있어 라는 관점에서 배우고 있는지를 실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몇 년 전 '당신은 전문가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손사래를 쳤던 것처럼 '당신은 리더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전히 전 손사래를 칠 겁니다. 그건 HR담당자로서 일을 해온 14년 반의 시간동안의 배움보다 앞으로 배워야 하는,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는 걸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한 까닭입니다. 경험이 있으니 리더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리더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지금 우리들의 경험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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