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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Aug 04. 2020

같지만 다른, 통제와 자율

HR이 가지고 있는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

코로나로 멈췄던 내부교육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생각의 흐름은 다시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왜 이 교육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 이 글은 교육ROI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ROI보다 더 추상적인 일종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교육에서 생각이 시작했으나 자연스레 교육을 포함하는 관점에서 HR의 흐름을 생각하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교육이 HR에서 보이는 흐름에 부합하는지 혹은 그러한 흐름과 무관하게 당장의 보여지는 효과(?)를 목적으로 해왔는지에 대한 일종의 돌아보기입니다. 

HR을 하면서 늘 방향성을 고민합니다. 상황이 바뀌어서 방법론은 변할 수 있으나 방향성은 쉬이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방향성이라기 보다는 방법론일 수 있고, 방법론도 아니라면 특정 상황을 해소하는 도구로서 존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3년정도의 기간을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일종의 주기로 삼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조직과 개인이 상장하는 환경체계로서 HR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3년단위 목표입니다. 이러한 방향성과 3년의 일종의 중간목표를 설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아마도 '통제'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HR은 그 직무 자체가 기본적으로 통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HR은 그 제도를 통해 구성원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경우에 따라 행동을 제한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 행동 혹은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 페널티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울타리 혹은 일종의 플랫폼을 만들어 놓고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저와 같이 기존의 HR을 배운 이들, 혹은 보수적인 관점에서 HR을 마주했던 이들에게 익숙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일전에도 언급했듯이 동일한 경험을 했더라도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경험이 말하는 바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기존의 통제를 배운 경우 여전히 그러한 방식의 통제를 이야기할 겁니다. 그리고 동일한 경험을 한 저도 통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통제의 방식으로서 자율이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통제와 자율이 가지는 가장 큰 차이는 통제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통제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 후자는 '나 자신'을 통제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전자에서 타인은 오너가 될 수도 있고 '고성과를 내는 사람들', 혹은 인담이 될 수도 있으나 여기에서 공통점은 그 타인이 소수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 후자에서 기준으로서 '나 자신'은 모든 이들이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전자에서는 소수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 일종의 울타리를 정할 수 있으나 후자에서는 모두가 다른 울타리를 가지고 있기에 일정한 울타리를 정하는 일이 과제로 남게 됩니다. 일종의 혼란상태로 보일 수 있겠죠. 이것이 우리가 타인에 의한 통제에서 스스로에 의한 자율로 이행하기 주저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우리는 보다 긍정적인 단어로서 '다름'이라고 말합니다. '타인에 의한 통제'에서 다름은 제거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깔끔하고 표준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 페널티가 부과될 수도 있겠지요. 반면 자율에서 '다름'은 '돌아보기', 즉 '성찰'의 계기가 됩니다. 우리들 개개인의 판단에 미흡함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다름'을 통해 확인하게 되겠죠. 그래서 '스스로에 의한 자율'은 '겸손함'을 기본으로 합니다. 겸손함은 크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겸손함과 모르는 것에 대한 겸손함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겸손함에 기반한 자율은 서로 아는 것이 서로 모르는 것을 보완해줌으로써 우리 개개인이 보다 나은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뭔가 익숙한 단어가 떠오릅니다. '피드백'이라는 단어 말이죠. 


타인에 의한 통제 관점에서 '성과'를 바라보면 우리의 관심은 '고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 내지 특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스스로에 의한 자율의 관점에서 '성과'를 바라보면 우리의 관점은 '내가 일을 잘 하는 방식 내지 특성은 무엇인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자에서는 일종의 정답으로서 주요 행동들을 찾게 되지만 후자에서는 수많은 답이 있음을 전제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강점과 다양성을 찾게 될 겁니다. 전자에서는 '타인을 아는 것'이 중요해진다면 후자에서는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해진다고 할까요. 

간단히 표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통제와 자율 by opellie

교육운영안을 작성하다가 잠시 생각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를 배가 산으로 갔다기 보다는 펼쳐진 바다가 어디서 만들어진걸까를 고민하면서 수원지를 찾아 오르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게 산 위에 있는 수원지를 보고 나서 다시 바다로 내려와 조금은 방향에 확신을 가지고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코로나라는 변수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방향성이 바뀐다면 그건 방향성이 아니겠죠. 


오늘의 아주 주관적인 단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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