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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Aug 08. 2021

책임 | R&A

Responsibility & Accountability

"R&A를 정리했으면 합니다."

과거 입사한 어느 기업에서 저에게 처음으로 부여했던 일종의 과제였습니다. 어쩌면 답이 없어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해 제가 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R&A를 문서화하는 것을 그리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R&A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단어가 있습니다. "계륵鷄肋"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이 단어는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하지 않기도 애매한 그런 대상을 말합니다. 몇 년 전 일화이긴 하지만 여전히 R&A를 문서화하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제도는 구성원의 행동을 제약하기에 그것이 문서로서 구체화될수록 그 제약은 더 커진다는 점에서, R&A를 명시한 문서가 자칫 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만드는 데는 많은 구성원의 도움과 시간이 필요한데 계속 업데이트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순간 문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관리를 위한 문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위의 사례에서도 그랬습니다. R&A를 문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음에도 하지 않았을 때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불만 내지 요구사항을 인사 혹은 경영진이 무시하는 듯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까닭입니다. 당시 제가 했던 건 R&A를 문서화하는 대신 각 직무 담당자들이 자신이 하는 직무를 이해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타 구성원, 특히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고,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관점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구성원분들이 서로의 연결성을 이해하고 갈등이 되는 부분들을 마주한다면 '협의' 내지 '수렴'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R&A를 판단하는 기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구성원분들이 '협의' 내지 '수렴'의 과정으로 이행함에 있어 그러한 일종의 판단을 하는 기업 내부의 공통 기준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서화를 하되 문서에 어디까지가 A부서 일이고 B부서 일인지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닌 A부서와 B부서가 만나서 그 연결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판단에 참고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그 기준으로 세웠던 항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객 창출 효과성 / 효율성 기여도
2. 업무수행에 필요한 정보획득의 용이성
3. 업무수행에 필요한 역량/경험의 수준
4. 프로세스상 연계성(밀접성)
5. 업무수행 완결성

상기 각 항목들에 대하여 서로 연결된 부서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어느 단위 조직에서 수행하는 것이 더 적정하다고 보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아울러 DVDM방법론으로 발생한 R&A 이슈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DVDM은 각각 정의 Definiton, 가치 정의 Values, 어려움 내지 장애요인 Difficulties, 해결방안/대안 Methods를 말하는데 이를 아래와 같이 R&A의 관점에서 개념을 정리했습니다.  

D , Definition
해당 업무를 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 필요한 정보/지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V , Values
 해당 업무를 작성자가 수행할 때와 협의그룹이 수행할 때 각각 얻거나 잃을 수 있는 가치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D , Difficulties
 해당 업무를 작성자가 수행할 때와 협의그룹이 수행할 때 각각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장애요인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M , Methods
 Values와 Difficulties를 고려할 때, '고객 창출'이라는 궁극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무엇인가?

김용진 님의 "경영학 사용 설명서"에는 책임의 2가지 종류로서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를 이야기합니다.

전자(accountability)는 사전 책임으로 후자( responsibility)는 사후 책임으로 이야기하며 후자의 경우 "일이 끝난 후에 지게 되는 책임이며 타율적이고 과거 지향적이며 조직 내 정치 구도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책임에 초점을 맞추면 당연히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가 형성된다. 그런 데다가 직위에 따라 기계적으로 권한을 부여해버리면 권한은 많고 책임은 지지 않는 사람들이 마구 생겨난다. reference. 경영학 사용 설명서 p75-76, 김용진 저, 클라우드 나인

R&A가 이슈화되는 경우 현실적으로 사후 책임이 메인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이는 위의 인용글에서 보듯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R&A를 논의하는 주된 이유는 사후 책임이 아닌 사전 책임을 그 메인 주제로 다루는 방향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위에서 소개드린 개인적인 경험은 사전 책임에 대해 구성원들이 스스로 인식하는 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스타트업 등의 기업에서 초기에는 R&A에 대한 이슈는 잘 발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기업에서는 말 그대로 일당백의 역할을 해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 경험을 근거로 기업이 성장해나가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R&A에 대한 이슈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도 이러한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것이 수면 위로 올라올 정도는 아니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수면 위로 올라온 셈입니다. R&A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많은 기업들이 가지는 공통의 고민입니다. 다만 사전 책임 responsibility와 사후 책임 accountability 중 어느 것으로 바라보고 다룰 것인가는 R&A를 다루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이슈라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실무단에서 들려오는 R&A는 주로 A에 초점이 맞춰있을 수 있습니다. R에 집중하는 조직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조직문화로서 자유와 책임이 공존하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나아갈 수 있다면 A에 집중하는 조직은 자율성보다는 제도에 의해 구성원의 행동이 제약되는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을 듯합니다.


많이 어려운 주제입니다. 조금은 이상적일 수 있으나 R&A가 제대로 작동하는 조직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바람직한 조직문화로서 일 하는 조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성원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그것이 서로 연결된 직무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상태라고 할까요. HR이 그렇듯 이에 대한 우리 실무자들의 고민과 관심, 경험들이 모이면 조금 더 나은 상태로의 R&A에 대한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R&A에 대한 한 실무자의 생각을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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