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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Apr 09. 2022

꼰대와 리더, 같지만 다른

외형이 아닌 진정성이 꼰대와 리더를 말한다.

꼰대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공식적 리더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꼰대라 생각하지 않지만 주변에서 자신을 꼰대라 말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니어 시절 만났던 공식적 리더들과 비교해 스스로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나름 많은 희생을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했는데 구성원들이 이걸 알아주지 못함에 속상해합니다.


공식적 리더를 꼰대라 부르는 구성원이 있습니다. 그는 공식적 리더가 꼰대라 생각합니다. 그는 공식적 리더가 권위적이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구성원에게 강요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공식적 리더가 꼰대라 생각하고 그래서 말을 해도 안 통할 거라 생각하기에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공식적 리더는 그의 이야기를 판단할 거고 결국 자신이 틀렸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틀렸다"는 결론을 그가 내리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두 입장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다름의 문제입니다. 사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기업이라는 곳, 리더라는 자리는 의사결정을 합니다. 리더 입장에서는 결정을 해야 하니까 판단을 하는 건데 누군가는 이를 독재라 말을 합니다.


보고서 양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공식적 리더가 있습니다. 

A 리더는 구성원이 만든 보고서가 자신의 스타일과 거리가 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말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리고 폰트를 고치고 띄어쓰기를 고치고 표의 색을 고칩니다. 

B리더 역시 동일한 상황을 만났습니다. 구성원이 만든 보고서가 자신의 스타일과 거리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때 B리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틀리거나 잘못하신 건 아닙니다. 다만 이건은 내가 보고를 해야 하니까(혹은 이야기 구조를 이렇게 짜는 게 조금 더 설명하기 적절하니까) 내 스타일로 바꿔볼께요"

그리고 B리더는 자신의 스타일로 문서를 바꿉니다. 물론 폰트를 고치고 띄어쓰기를 고치는 것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상황이 있습니다. 

동일한 상황이지만 A리더는 틀림을 이야기하고 B리더는 다름을 이야기합니다. 동일한 상황, 동일한 내용이지만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다릅니다. A리더의 말에는 없고 B리더에 대한 말에는 있는 게 있습니다. '배려'라는 단어입니다. 때론 판단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지금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배려'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입니다. '배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눈을 맞추고 있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고 해서 배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배려'의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배려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A리더와 B리더 모두 선택한 결과는 같습니다. 자신들의 스타일로 문서를 변경하는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상대방에게 주는 메시지는 다릅니다. A리더는 상대방에게 그가 일을 못했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반면 B리더는 상대방에게 상대방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음을 전달합니다. A리더는 자신의 생각을 정답으로 기준을 잡고 상대방을 판단하지만 B리더는 자신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같게 놓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가 하지 못했던 방식이나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꼰대와 리더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종 듣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하면 꼰대이고 이렇게 하면 리더라는 식의 정답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감히 말씀드리면 이렇게 구분하는 기준이나 정답은 없습니다. 아무리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진다 하더라도 구성원은 여전히 그를 꼰대라 부를 수도 있고, 눈을 맞추거나 별도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지 않더라도 리더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참 고맙게 생각하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닉네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몇 년 전 모바일 게임 하나가 출시되고 회사 내 동료분들이 모여서 그 게임을 하기로 합니다. 그분들이 저를 초대하면서 몇 가지 닉네임을 지어주었습니다. 사실 제가 그리 잘하는 게임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함께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생긴 제 또 다른 이름들을 소개합니다. 

기업 속 opellie의 또 다른 이름

위 이름을 건네준 한 분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해당 동료분이 집에 가서 남편분과 회사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분은 남편분에게 자신이 회사 인사팀장을 믿는다는 말을 했는데, 남편분의 반응은 이랬다고 합니다. 

인사팀은 믿으면 안 돼

위 말에서 인사팀을 리더라는 단어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지금 리더로서 우리들은, 혹은 구성원으로서 우리들은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들의 공식적 리더에 대해 '믿음'이라는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매일같이 만나는 리더와 팔로워의 상호작용 속에서 리더로서 우리들은, 혹은 우리들이 함께 일하는 공식적 리더들은 그들의 상대방으로서 우리들에 대해 '판단'을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경험을 공유'하고 있을까요?

우리 리더는 믿으면 안돼

라는 말을 리더로서 우리들은 혹은 리더와 함께 하는 우리들은 듣고 있고 혹은 하고 있지 않을까요?


꼰대와 리더를 고민하는 한 사람으로서, 

HR이라는 일을 통해 사람을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꼰대와 리더,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한 사람으로서

남기는 


꼰대와 리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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