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기업에서 16 년, 스타트업에서 1년차 HRer의 생각
제가 HR을 배우고 경험을 쌓는 시간들에서 소통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일방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급자의 지시에 대해 누군가 "왜 하는지?"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많이 낯선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 당시의 저는 무언가 '낯선 strange' 아이였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왜 하는지?"를 물어보고 다녔으니까요. 사실 제가 한 "왜"라는 질문은 "하기 싫어"가 아니라 왜 하는지를 안다면 좀 더 그 일을 잘할 수 있으니까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급자분들에게 "왜 하는가?"를 물어볼 때 사전 설명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같이 드렸습니다. 발생 가능한 최소한의 오해는 줄여보려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다양성을 생각합니다. 몇몇 기업들이 HR이라는 표현 대신 Diversity & Inclus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통'이라는 단어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제 생각은 가장 본질적인 영역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믿어주기
대학시절 어느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아르바이트긴 했으나 1년을 넘게 일을 했고 제법 여러 일들을 했었지요. 그중 하나는 은행 관련 일도 있었습니다. 학원의 현금을 은행에 입금하는 건데 제가 혼자 현금을 들고 은행을 가야 했습니다. 만일 아르바이트 학생을 못 믿었다면 저한테 현금을 맡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당시로 보면 저한테는 제법 큰돈들이었으니 말이죠. 1년 남짓 후 학원을 그만두던 날 원장 선생님은 저를 안아주면서 "덕분에 학원이 잘됐다"라는 말을 건네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간혹 구성원을 믿지 못하는 경영자들을 보곤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구성원들은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에 기반하고 있고 그래서 회사가 아닌 개인을 우선시하는 존재로 바라봅니다. 그분들은 구성원이 자신에 맞추는 행동을 하기 전까지 절대 먼저 구성원에게 믿음을 주지 않고 감시하고 관찰하고 판단하는 모습을 가지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이 갈수록 경영진과 구성원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경영자는 통제를 위하여 더욱 micro 한 management를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가 종종 이야기하는 방법론으로 팃포탯을 이야기합니다. 일단 믿고 그 믿음에 대한 상대방의 react에 따라 반응하는 방식입니다. 먼저 믿어주면 어떨까요. 때론 그 믿음과 다른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과거부터 늘 고민해왔던 것 중 하나가 C-player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먼저 믿음을 주고 나타난 기대와 다른 모습을 대응하는 건 먼저 믿어줌으로써 나타난 것이 아닌 HR이 늘 하고 있고 해야 하는 고민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에 정말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저는 보다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 18년, HR담당자로서 17년의 시간이 제게 말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2. Ground rule 정하기
자율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자유와 달리 자율에는 일종의 원칙이 존재합니다. 그 원칙을 개인 스스로가 정하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분들은 자신이 그라운드 룰을 정해주면 상대방이 편한 것 아닌가? 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만 사견임을 빌어 적어도 D&I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이라면 상대방 스스로가 그 룰을 정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렇게 정해진 각자의 룰이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답을 주고 따라와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 정답을 찾고 생각을 연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많은 상황들을 경험해봐서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는데 그걸 구성원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보면 구성원들은 우리가 만났던 경험과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 경험을 리더들이 배울 수 있다면 리더로서 역량을 더욱 확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3. "내 마음을 맞춰봐" 하지 않기
"점심 먹고 싶은 거 있어?"
리더가 말을 하자 구성원이 짬뽕이라 대답을 했고 리더는 "그거보다는 짜장면이지"라고 말을 합니다. 자신의 답을 정해두고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건 형식일 뿐 실질적으로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경험을 가진 우리들은 가끔 우리가 정답을 제시하고 우리가 무대의 메인에 서고자 하는 욕심을 갖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남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일종의 뿌듯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들은 '경쟁'이라는 가치를 기업의 운영과 제도에 담고 있었습니다. D&I의 시대에서 우리는 경쟁보다는 협력이라는 가치를 조금 더 중요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1+1=2라 할 수 있지만 D&I에서 1+1은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 우리는 1+1이 2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길 바라고 있으니까요.
4. 조직관리를 위한 세부지표 관리하기
위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혹자는 HR이 혹은 경영이 구성원에게 좋은 사람, 좋은 이미지만 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업이란 조직은 기본적으로 성과를 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곳이고, 스타트업이라는 곳은 더 나아가 성장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불확실한 곳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의 성장의 관점에서 그 성장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고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여기에서 말하는 측정지표가 구성원 개인에 대한 측정과 평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성장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고 운영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스타트업을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삼았지만 글의 내용 대부분은 소통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스타트업을 정의함에 있어 단순히 8년 미만의 기업, 시리즈 투자를 받았는지 등의 외형적 기준보다는 해당 기업이 얼마나 수평적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다양성을 얼마나 잘 다루고 있는지, 정형화된 매뉴얼대로가 아니라 구성원의 자율적 판단이 실제 업무와 성과와 얼마나 연결되는지 등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어쩌면 조금 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와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스타트업이라는 곳에 입사한 지 한달 남짓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마주하는 생각들을 조금씩 남겨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