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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Jun 04. 2022

Q.E.D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대한 감상(Feat. HR)

영화를 보며 느낀 생각을 남깁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약간의 스포가 될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봤습니다. 박동훈 감독님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라는 영화입니다. 어쩌면 슬픈 영화가 아닐 수 있음에도 개인적으로는 많이 마음이 동했습니다. 아마도 평소 제가 가지고 있었던 하지만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던 무언가를 영화가 건들어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소개하는 대신 영화 속 몇몇 대사와 그 대사에 대한 제 생각들, 느낌들을 남기는 방식으로 기록을 남깁니다. 




"왜 이런 걸 공부했어요?"

극 중 이학성은 이 질문에 "장학금"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지만 대답의 결론은 다음의 대답으로 완성됩니다.

"아름답지 않네?"

HR이라는 일을 하면서 간혹 비슷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음에도 왜 굳이 스터디 등에 나와 배우려 하는가?부터 왜 HR을 했어요? 라거나 왜 굳이 대학원을 다녀요?라는 다른 듯  비슷한 질문들입니다. 다른 듯 비슷한 이 질문들에 대해 저는 늘 이렇게 답을 했었습니다. "그냥 좋아서" 그리고 이제 조금 더 본질에 다가간 답을 만난 듯합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물론 극 중 이학성의 이 대답에 대한 한지우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미 현실에서 만났던 모습들이지요.  

누군가 저에게 왜 HR을 하죠?라고 묻는다면 이젠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틀린 질문에서는 옳은 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지"

사회생활, 그리고 HR이라는 일을 하면서 갖게 된 일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시작할 때 "문제를 먼저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잘못된 것 혹은 틀린 것이 아니라 현재와 바람직한 상태 사이의 거리로 말합니다. 문제를 정의한다는 것은 현재의 나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일의 상태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일에 추가적인 activities를 더해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바람직한 상태를 그려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0년~11년 일이니까 10년이 조금 넘은 그 시기에 저에게 주어졌던 일이 그랬습니다. 저보다 경험이 많은 HR 선임분들이 하나 둘 못한다고 빠지는 상황에서 할 수 있겠다는 말을 하고 프로젝트에 들어간 건 프로젝트 시작 전에 실무의 상태를 이해하고 있었고, 프로젝트가 종료되는 9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에 만들어야 할 모습을 대략적으로 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프로젝트를 정말 신나게 할 수 있었던 건 방법론에 있어 제가 생각하는 대로 운영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틀린 질문에서는 옳은 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다면 그 일은 산으로 갈 겁니다. 우리가 서 있는 현재 상태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바람직한 상태를 정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냥 현재 상황에서 불평만 하고 있는 우리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문제를 정의한다는 것, 다시 말해 현재 상태와 바람직한 상태를 정의한다는 건 자연스레 책임이라는 단어로 연결됩니다. 종종 소개드린 것처럼 책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사전책임(accountability)과 사후책임(responsibility)이 그것입니다. 바람직한 상태를 정의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전책임을 이해하고 있음으로 연결됩니다. 때로는 이 사전책임을 정의함에 있어 단기적으로 우리들 개인에게 있어 불이익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한 개인으로서 무작정 희생하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HR이라는 일만 놓고 보면 때로는 HR이 만드는 제도들이 우리 개인에게는 상대적으로 불이익할 수 있으나 그 방향성 자체가 바람직한 경우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방향성이 달라지지 않는 범위에서 절차, 방법론의 조정은 가능하겠지만 그 방향성을 우리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바꾸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부 정보를 숨기는 것과 같은 행동들이 이에 해당할 겁니다. 개인 경험을 빌어 보면 때로는 그것이 단기적으로 일부 손해가 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나가"

극 중 한지우는 선생님에게 선생님이 제시한 답이 잘못되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에 대한 선생님의 대답은 "나가"입니다. 한지우의 논리에 틀림이 없기에 그럼에도 선생님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권위를 활용합니다. 어쩌면 이는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 듯합니다. 

여기 두 명의 리더가 있습니다. A리더는 상대방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합니다. A리더는 팔로워가 무엇을 하던, 심지어 A리더가 시키는 방식대로 일을 하더라도 무언가 잘못된 것을 이야기하고 이 과정에서 말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렇게 바뀐 말은 그가 가진 권위로 정당화됩니다. 반면 B리더는 팔로워를 인정해줌으로써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B리더에게 있어 팔로워는 일종의 상호보완관계입니다. 완벽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리더와 팔로워,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리더와 팔로워가 서로를 조금 더 완전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관계로 연결됩니다. A리더에게 있어 '나가'라는 단어는 종종 사용이 가능한 단어일 수 있지만 B리더에게 있어 이 단어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될 겁니다. 흥미로운 건 B리더의 모습은 우리가 함께 일하며 때로는 해야 하는 상호 간의 조금은 어려운 말들이 서로에게 조금 더 진심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Q. E. D " Quod Erat Demonstrandum" 

증명했음. 가끔 남들이 해서는 안된다고 하거나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일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직무분석의 기본 절차를 바꿔서 다른 형식의 직무정보도출 워크숍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고, 보상을 위한 개인평가가 아닌 성장을 위한 개인평가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HR이라는 일을 조금 더 온전히 하기 위해 조직에 관한 역할들을 일부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제법 큰돈을 들여 만들었다고 하는 기업 전체 직무역량사전을 혼자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인사정보시스템도 다들 발을 뺐던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HR을 해온 지난 17년의 시간은 어쩌면 HR 담당자로서, 조금은 다른 표현으로 HR프랙티셔너로서 제가 가진 역량을 증명해온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증명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일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위한 증명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증명의 시간은 진행형입니다. 지금 생각하는 모습들에 대하여 앞으로의 언젠가 "증명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을 그려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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