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적엔 소위 편을 갈라서 하는 놀이가 많았습니다. 축구나 농구가 그렇고 땅따먹기나 비석 맞추기, 최근 영화로 등장했던 오징어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편을 나누어 놀았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들은 누구 편도 아니었습니다. 매번 편이 바뀌었고 편이라는 건 놀이를 위함이었지 우리들 사이의 본래 관계를 규정짓는 것이 아니었던 까닭입니다. 어찌 보면 그렇게 편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편이라는 외형 이전에 친구로서 우리들이 먼저 존재했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들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같이 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조직생활을 하면서 '편'이라는 단어는 '라인'이라는 단어로 바뀌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편'과는 많이 달랐지요. 편이 나뉘었지만 그 이전에 존재했던 친구사이의 개념이 없이 네 편과 내편만 남은 셈입니다. 대리 시절의 저에게 한분이 다가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이제 대리 정도 되었으니 앞으로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었고, 그분의 '정치'란 '라인'을 만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조직생활에서 라인은 적어도 저에게는 사실 많이 불편한 무언가였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라인'이란 일의 옳음보다는 나와 우리 편에게 유리한가 가 우선적인 판단 기준이 되게 만들었고, 문제 즉 일의 해결과 개선보다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로 초점을 이동시키는 그런 류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나름의 선언(?)을 했었습니다. 난 이런 거 못하겠다고. 물론 혼자만의 소리 없는 선언이었지만요.
조직생활을 하면서 운이 좋게 생각의 방향이 맞는 혹은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합리적이라 부를 수 있는 경영자분들을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굳이 라인을 타거나 만들려고 한 게 아니고 일에 대한 생각, 방향이 같았고 그래서 방법론을 지지해주었던 경우인데 이를 어떤 분들은 '라인'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보는 관점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겠으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았으니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조금은 더 당당하게 HR프랙티셔너로서 생각을 이야기하고 제도로 구체화하고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18년째 조직생활을 하고 있는 게 가능한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나는 '일'의 편이 되기로 했다.
회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 양서류 론(theory?)을 펼치곤 합니다. 관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요. 누군가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일의 옳음이라는 관점에 따라 A의 입장을 지지할 수도 있고 B의 입장을 지지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18년간 조직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항상 하는 말은 '나는 일(work)의 편이다'라는 말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 될 수 있도록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노력함을 말합니다. 연결하여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는 표현입니다. 굳이 '라인'이라는 걸 따진다면 저는 '일' 라인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HR이라는 일이니 HR라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하는 HR이 옳은 방향성을 가지고 옳은 방법론을 적용하여 한 걸음씩 나간다면 HR은 좀 더 멋지고 신나는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의 편이 되기로 했다는 건,
사실 조금은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종종 표현하는 '의도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이기에 어쩌면 당연히 나에게 이로운 것을 찾게 되기 때문이겠죠. 우리 머릿속에는 항상 panic monster가 있습니다. (panic monster라는 용어는 Tim Urban의 TED 영상에 소개된 캐릭터를 인용하였습니다.) 이 panic monster는 우리가 일의 편에 서서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우리에게 달콤한 유혹을 건넵니다. 이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면 내가 편하고, 일을 적당히 하면 지금의 내가 편할 겁니다. 적당히 일을 했음을 보여주기만 해도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일의 편이 된다는 건 이 panic monster를 우리가 이성으로 관리를 할 수 있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옳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회의를 하다 보면 가끔 대화의 방향이 사람을 향해 있는 경우를 마주하곤 합니다. 그들의 많은 경우 그 방향에 있는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가? 가 기준이 되어있곤 합니다. 일이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고 우리가 옳은 방법론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가 아닌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가? 에 대한 논쟁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익이 될 때 원칙을 이야기하고 이익이 되지 않을 때 유연성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말이 바뀌거나 일관성이 없어지는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리더 혹은 사람이 아닌 '일'의 편에 서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옳은 일을 고민하고 올바르게 일을 하는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