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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Jul 23. 2022

개념적 정의의 중요성

“우리 회사에 인턴 있지?” 질문을 받고 다소 당황했었습니다. 제 머릿속에 ‘인턴’은 없었거든요. 잠시 후 대화에서 어긋남이 왜 발생했는지를 알았습니다. 질문자는 ‘인턴’이라는 단어와 ‘기간제 근로자’라는 단어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저는 이 두 단어를 다른 개념으로 구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념이라는 단어를 설명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저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개념이란 일종의 정의 definition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인턴과 기간제 근로를 동일한  계약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저는 이를 인턴과 기간제 근로자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셈입니다. 이렇게 개념을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거나 회사에서 무언가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일 때 항상 제가 사용하는 주요 단어들의 의미를 미리 설명하곤 합니다. 동시에 1 단어 1 의미 원칙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기도 합니다.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본래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본질을 이해한다는 건 비유하자면 물이 시작되는 지점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강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렀을 때 바다만 보고 있으면 우리는 그 바다가 어떻게 생겨나고 어디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하는지 알 수 없을 겁니다. 제가 경험한 HR은 많은 경우 강물이나 물이 시작되는 지점에 대한 이해 없이 바다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거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 님의 대사를 인용한 적이 있지요. 


"움직이는 파도만 볼 줄 알았지 파도를 움직이는 바람을 보질 못했다"


는 말입니다. 움직이는 파도만 보고일을 하다 보면 그 결과 단기적으로는 일을 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MBO가 아닐까 싶습니다. MBO를 외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Management By Objecitves and Self-control"에서 MBO와 and로 연결되어 있는 self-control을 모르고 MBO를 이해했고,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을 피터 드러커 교수님이 하셨다는 누군가의 말에 그게 진실이라 믿었지요. 어쩌면 지금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외형만으로 무언가를 이해하고 있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개념을 이해한다는 건 일종의 '의심'을 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누군가를 믿지 못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 행동, 생각들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의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인지 되묻는 과정으로서 '의심'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의심은 나름의 확신으로 이어진다는 점일 겁니다. 이러한 확신은 리더로서 마주한 상황에 대해서 그 위험 수준을 판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동시에 상대방이 말하는 내가 아는 것과 다름을 마주하면 다시 '의심'의 루틴을 반복합니다. 이를 통해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인지 혹은 모르는 것인데 아는 척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우리 나름의 개념을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만나게 될 겁니다.


살아오면서 종종 '개념'을 말하다가 '됐고'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단어의 개념과 상대방이 이해하는 단어의 개념이 다름을 인지하는 순간들입니다. 개념을 이야기하는 건 제가 이해하고 있는 단어의 개념을 솔직하게 전달함으로써 소통을 이어가기 위함이었지만 많은 경우 상대방은 자신이 이해하는 개념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돌아온 대답은 '됐고'이지요. 


 파도만 보고 있을 뿐 파도를 움직이는 바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생각보다 위험한 일입니다. 파도는 외형이고 바람은 본질적 개념입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그들에게 익숙한 외형이 됩니다. 동일한 개념, 심지어 워딩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했음에도 위치나 도식을 바꾸는 순간 그들에게 그 동일한 워딩은 더 이상 동일한 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외형을 정답으로 두고 있고 무엇보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고 돌아봄으로써 생각을 키워나갈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는 셈입니다. 


개념을 이야기한다는 건 서로가 가지고 있는 방향성이 동일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직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호칭'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누군가는 '보상의 기준'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결국 우리가 만든 제도는 산으로 가서 열심히 일하고 난 후 서로에게 '바다에 가자고 했더니 산에 왔네'라고 말하는 상황을 만나게 될 겁니다. 


제가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가진 개념을 계속 정리하고 돌아보려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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