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반 러시아에는 ‘수염세’라는 게 있었다. 표트르 황제(1672∼1725)는 러시아의 이미지를 말끔하게 정돈한다는 명분 아래 전국 귀족들에게 ‘수염 면도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무용지물. 귀족들은 반드시 수염을 지키겠다며 반발했다. 콧대 높은 귀족을 꺾을 묘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황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수염을 기르는 귀족에게 해마다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역시 결과는 세금의 승리였다. 귀족들은 목숨보다 귀하다던 수염을 깎기 시작했다.
[원문 기사글 링크 하단에 제공]
재밌는 책 소개 글을 만났습니다. 책은 '세금'의 역사를 이야기하지만 기사글을 보면서 저는 세금이라는 '제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도는 그 제도가 효력을 행사하는 물리적 범위 내 구성원의 행동을 제약합니다. 세금이라는 제도는 매우 직접적인 영향력을 제공하고 구성원의 즉각적인 반응을 얻어내게 됩니다. 과거 우리는 제도의 이러한 특성을 주로 활용해왔습니다. 구성원들이 왜 하는가?를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혹은 왜 하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이상한 것이 되었던 시기의 일입니다.
그런데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상태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도가 구성원에게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기 전에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상태가 아닐까요? 수염을 깎지 않는다면 세금을 부과하겠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수염을 깎는 행동이 나오는 상태 말이죠. 다시 말해 제도가 굳이 없어도 제도가 추구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상태가 되겠지요. 그래서 제 글에서는 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제도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염을 깎아야 하는가? 다시 말해 수염을 깎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위 기사글의 중간에 나오는 인도에서의 세금 이야기가 그렇겠지요. 올바르지 않은 제도는 여러 갈등과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위의 기사를 보면서 우리는 제도를 생각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를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겁니다.
1. 목적이 올바른가?
조금 오래전에 제가 직무분석 절차를 진행할 때 일입니다. 직무분석 절차로 SME설명회가 있었고 인원을 나누어 3번 정도 진행을 했었습니다. 해당 설명회에서 저는 '나쁜 인사담당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구성원분들은 회사가 직무분석을 시행하는 목적에는 구조조정이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설명회를 통해 본 절차의 목적이 구조조정이 아닌 인사제도 개선임을 설명했으나 설명회 이전에 이미 형성된 인식을 바꾸는 건 어려웠고 당시 설명회를 진행하면서 참 많은 된소리들을 마주했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가량의 시간이 지나 직무분석 절차가 완료되고 산출물이 나왔을 때 저에게 된소리를 남겼던 모 부장님은 지나가시며 '고맙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당시 그 고맙다는 말을 저는 다음과 같이 받아들였습니다.
"제도를 옳은 방향으로 만들고 운영해줘서 고맙다"
'올바르다'는 건 일종의 판단을 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건 자칫 올바르지 않음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어렵습니다. 여기 퇴직 의사를 밝힌 구성원이 한 분 있습니다. 해당 구성원은 2주 뒤에 퇴직을 하겠다고 하고, 회사는 1달 뒤로 정하자고 말을 합니다. 동일한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회사가 취업규칙에 1개월로 정했으니 혹은 민법상 고용계약을 근거로 1개월로 주장을 해야 할까요? 제도적으로 이야기하면 서로 상처가 남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옳은 방향은 합의를 하는 것에 있습니다. 합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회사가 1개월이라 말하는 이유와 구성원이 2주라 말하는 이유를 상호 이해하고 서로의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업무의 연속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인수인계를 온전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이직할 때 늘 남아 있는 회사의 업무를 우선했습니다. 그중 한 예를 들면 1달 전에 퇴직 이야기를 했지만 후임자를 찾지 못했고 저는 회사를 옮긴 이후 후임자가 들어왔을 때 별도의 시간을 내어 후임자분을 대면하여 업무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본 글에서는 옳은 방향을 가진 제도는 특정 개인 혹은 일방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가 올바르게 되어감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제도라 말합니다. 회사에 이익이냐 구성원 개인에게 이익이냐가 아니라 업무의 연속성이 유지되어 일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기 위함입니다. 이는 어느 일방의 입장을 위해 다른 일방의 입장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동으로 마주한 이슈에 대한 최적의 대안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옳음을 함께 확인하고 합의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퇴직 의사를 1개월 전에 밝혔다고 해서 업무 인수인계가 잘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2. 방법론이 올바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어떨까요?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더 나은 통치를 위해서는 비도덕적인 행위도 허용된다고, 즉 그 행위가 더 나은 통치라는 목적에 부합한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여 그 방법론의 정당성을 이야기합니다. 앞에서 올바른 제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한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올바르다라고 말할 수 있음을 전제로 만일 제도가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가정한다면 그 방법론은 올바르지 않아도 될까요? '더 나은 통치'라는 목적에 부합한다면 비도덕적인 방법론도 허용되어야 할까요? 퇴직 의사를 밝힌 구성원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죠. 업무의 연속성 확보라는 목적이 올바르다고 가정하고 기업이 구성원에게 법에서 혹은 취업규칙에서 1개월을 명시하고 있으니 이를 지키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구성원에게 이야기했다고 가정해볼까요? 실제 이렇게 하는 기업 혹은 인사담당자도 있겠지만 이는 어찌 보면 방법론 관점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제도의 목적 관점에서 올바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취업규칙에서 1개월의 명시는 근로자에게 강제성을 부여한다고 할 수 없지만 기업, HR이 이를 강제성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한다면 그래서 업무의 연속성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이는 정당한 방법이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 1개월이라는 시간만 충족하면 업무의 연속성이 확보될 수 있는가에 대한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하겠죠.
올바른 일을 올바르게 한다
조금 오래전에 어느 리더십 강의에서 강사분이 말했던 리더의 모습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리더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라 일이 올바르게 진행되기 위한 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 올바른 일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 올바르게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HR이 하는 일이자 동시에 방법론으로서 제도는 그 목적이 올바른 일이어야 하고 그 방법론에서 올바르게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과 제도는 올바른 목적과 올바른 방법론을 가지고 있을까요? 답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생각만이 있을 뿐입니다. 관련하여 읽어볼 문장으로 사이먼 시넥의 인피니트 게임의 한 내용을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유한게임식 리더는 회사의 실적을 사용해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의 가치를 증명한다. 무한게임식 리더는 자기 커리어를 사용해 회사의 장기적 가치를 높인다. (중략)무한 게임에서 그가 수익을 얼마나 내고 은퇴했는지는 핵심이 아니다. 은퇴 후 13년이 흐르든, 33년이 ㅎ르든, 300년이 흐르든 회사가 게임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더욱 번창할 수 있도록 올바른 기업 문화를 정립하고 갔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본다면 발머는 패배했다. p39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