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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Sep 11. 2022

공정하다는 말

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기록

연초 모 기업의 성과급 이슈 이후로 공정성이라는 단어가 계속 눈에 들어옵니다. 얼마 전 소개했던 책에서도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리뷰로 남긴 적이 있지요. 

조직과 사회가 공정하고 공평하다면 그중에서 하위층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망칠 길이 없다. (중략) 서열의 기준이 정당하지 않다 혹은 기준이 정당해도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믿음 덕분에 우리는 자신의 열등성을 부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하고 공평한 조직에서 이 자기 방어가 성립되지 않는다. p249,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다산초당

비슷한 개념으로 과거 인사평가제도를 이야기하면서 인사평가에 있어 객관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인사평가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요. 반대로 인사평가를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한다면 정말 객관적일까요? 요즘 발달하고 있는 AI가 인사평가를 한다면요? 판단 결과의 객관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AI가 사람을 판단한다는 윤리의 논쟁이 또 발생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시 공정성이라는 단어로 돌아와 볼까요?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정성이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어떤 이들은 그들이 나름의 공정성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기도 하지만 공정함이라는 것이 구구단을 외우고 누군가의 사례를 듣고 그들이 행한 절차대로 한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경청이라는 단어에 대해 대화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 중간중간에 고개 끄덕임과 같은 추임새를 넣고 있다고 해서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미 이러한 외형의 행동을 하지만 우리를 존중하고 있지 않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본 경험들을 제법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말을 '경청'하고 있을까? 에 대해 우리는 쉽게 "YES"를 말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공정성이란 좋은 단어이지만 이 단어에는 사람의 판단이 들어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대하여 A그룹은 공정하다 말할 수 있고 B그룹은 공정하지 않다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구성원 분들 면담을 하다 보면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마주합니다. 구성원 분 입장에서 보면 정말 열심히 & 일을 잘하는 구성원과 대충 일하는 구성원이 있는데 이들에 대한 보상이 적정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일을 잘하는 사람과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는 사람 탓을 하기 좋은 맥락을 가지고 있고, 심할 경우 이는 사람의 심리적 상태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을 실제로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보다 좀 더 많은 경험을 했을 수 있고,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보다 좀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보다 더 많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누군가는 숫자를 보다 쉽게 읽고 다른 누군가는 글자를 좀 더 쉽게 읽습니다. 큰길을 지나며 우리들의 양쪽으로 두 사람이 지나고 있다면 우리들의 왼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우측통행을 하는 사람이지만 우리들의 오른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좌측통행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걸어 다닐 때 좌측통행을 기준으로 말하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이렇게 보면 공정성의 문제는 상대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공정성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준'일 겁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같이 제도가 사람을 통제하는 기준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그래서 성장할 수 있도록 가이드로서 역할을 하는 기준 말이죠.


Fairness, Fair play,
반칙을 하지 않고 정해진 기준에 따라 정정당당히 임하는 것


이러한 공정성의 문제는 기존에 우리가 운영해왔던 평가와 보상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기업이, 혹은 상급자가 의사결정자로서 완벽한 존재가 되어 누군가를 판단하는 제도로서 평가와 보상이 아니라 구성원이 각자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인식할 수 있는 제도 내지 기준으로서 평가와 보상으로의 전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조직에서 일을 할 때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평가하는 것으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 이렇게 해?"라거나 "이것밖에 못해?"는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화살의 방향을 두고 있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행동특성을 고민하고 이들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를 평가하고 일을 잘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한 기준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적어도 해당 기업의 구성원들에게 있어 공유되고 필요한 경우 언제든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기준은 구체적인 상태나 단 하나의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일종의 방향성으로 구성원들이 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그 방법론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해왔던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일이 어렵고 해 본 적 없는 일을 하는 것의 어려움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낯설음은 언제나 두렵지만 낯설음을 익숙함으로 만들어가는 건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본 적 없는 신나는 즐거움일지도 모릅니다. 해왔던 일을 하면서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보려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밤 시간 동안 행군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첨병 역할을 했는데 행군 중에 발목을 접질리고 말았지요. 계속 걸어서 부대에 도착했을 땐 같은 부위를 반복적으로 접질린 상태였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을 때 발목은 많이 부어서 전투화에 발이 들어가지 않는 상태가 되었었지요. 당일 예정된 훈련에 참가를 못하고 막사에 대기를 했었습니다. 예상컨데 당일 훈련이 조금은 힘들었던 듯도 합니다. 훈련을 마치고 복귀한 한 선임은 막사에 대기중인 저를 향해 손을 휘둘렀습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요. 저는 그가 한 행동이 옳은 일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는 모두가 뛰는 훈련에 발목을 다쳤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못한 것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공정하다는 게 그래서 참 어렵습니다. 다만 적어도 우리가 하는 HR이라는 일이 영향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영역 안에서라면 적어도 우리만의 공정성을 만들어볼 수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냥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고 여전히 실무자로서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공정함을 이야기할 자신은 없지만 HR이 할 수 있는 공정성을 조금 더 고민해보려 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생각하시는 공정성이란 무엇일까요? HR은 , 우리들은 그 공정성을 위해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요? 

2022년 추석 연휴를 보내며 해보는 생각을 기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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