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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Jan 21. 2017

'믿음'에 대한 소고(小考)

세상을 성선설에 가깝게 만들어가는 방법

아침 출근해서 창문을 엽니다. 밤새 사무실에 갇혀 있던 공기와 밤새 추운 바깥에서 지내던 공기를 만나게 하는 일이죠. 일종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창문을 여는 일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일종의 균형을 맞추는 행위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어쨌거나 아침 출근해서 창문을 엽니다. 그리고 15~20분 정도 지나면 창문을 닫죠. 아무래도 추운 걸 계속 견디는 건 아무리 균형을 맞춘다고 해도 계속 견디기란 어렵습니다. 더욱이 사무실에는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죠.


창문을 여는 행위를 '균형'이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드리긴 했지만 현실적인 이유는 아마도 우리 사람 개개인에게 탁한 공기가 그리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밤새 공기청정기를 틀어놓기도 힘들고 지난번 청정기 필터 사건 이후로 청정기도 믿기가 참 어렵게 되기도 했구요. 사무실에는 저 말고도 창문을 항상 여시는 분이 한 분 더 있습니다. 저는 제 자리를 중심으로 창문을 연다면 그분은 한 단계 넘어서 사무실 한 벽면의 모든 창문을 다루시곤 합니다.

하루는 아침에 출근해서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15분 정도 지나 닫았죠. 아무래도 추우니 말입니다. 그리고 5분 정도 지나서 창문을 여는 다른 한 분이 오셨습니다. 닫힌 창문을 보셨고 저에게 이야기합니다. 창문 좀 열게요 라고. 제가 창문을 열고 닫았다는 사실을 모르신 상태죠.


난데없이 창문 이야기를 하는 건 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 내지 신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실무자가 만든 A라는 결과물이 있습니다. 그 실무자의 상급자는 A라는 결과물을 볼뿐 그 A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상급자는 이렇게 말하죠. A라는 결과물에 대해서는 잘못된 건 아닌 거 같지만 그 A를 만들어 낸 과정에 대해 본인이 생각하는 방법론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승인할 수 없다 라고. 실무자는 말합니다. 그  방법론을 이미 지나온 경험을 통해 계속 해왔노라고. 그리고 상급자는 이야기합니다. 내가 본 적이 없으므로 그건 무효야 라고.


HRM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풍경을 참 자주 만나곤 합니다. 그 실무자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는 경우, 자기 자신의 책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  성격상 자기 자신이 모두 다 알고 있어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경우 등등 경우의 수도 다양합니다. 그럴 때마다 참 아쉽기만 합니다. 사람을 채용한다는 건 단순히 그 사람의 머리나 손이나 다리 등의 일부를 빌리는 게 아닌 그 사람의 인생을 빌리는 일(경영의 실제, 피터 드러커)인데 채용을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신뢰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지 못한 상태로 채용하고 계속 감시와 통제를 하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 말이죠. 경력과 경험의 다양성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다양한 경력과 경험에 대해 스스로 본 내용이 아니므로 그 경력과 경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모순에 빠지는 셈입니다.


경력과 경험의 다양성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다양한 경력과 경험에 대해 스스로 본 내용이 아니므로 그 경력과 경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모순에 대하여


사람의 본성이 성악설에 가까운 지 성선설에 가까운 지 솔직히 전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 전자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일련의 일들에 대한 국민들의 대응을 보면 후자를 말하는 게 맞아 보입니다. 실제 기업에서 사람들을 대하면 정말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경우들이 일어나곤 하죠. 그래서 나름 내린 결론은 성선설 원칙에 예외적인 성악설의  적용입니다. 이 결론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런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오늘날과 같은 다양성의 사회에서 보다 효율적이고 더욱 적합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불이익이나 해를 입기도 합니다. 저도 그 사람들 중 하나이구요. 그래서 저는 후자는 교훈으로 남기고 전자는 간직할 기억으로 남겨두는 선택을 합니다. 나쁜 기억의 사람들은 과거에 묻어두고 좋은 기억의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로 간직하는 방식입니다. 군대의 중대장님, 학창 시절 하숙집 아주머니, 아르바이트하던 학원 실장님이나 지금은 멀리 있지만 몇 년 전 많이 챙겨주셨던 제 상사분들은 2017년 1월 현재 제 삶 속에 살아 있는 분들이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우리 삶 속에 성악설보다는 성선설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 개개인의 삶에 이런 요소들이 반복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시나브로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일단 선택을 했다면 그 사람이 그 믿음을 버리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먼저 믿음을 줄 수 있는 우리가 사는 기업 조직, 우리가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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