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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Nov 08. 2022

소통疏通Communication

어렵지만 쉽고 쉽지만 어려운 소통의 의미에 대하여

가끔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은 소통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정답이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위와 같은 질문들을 만나지 않았겠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다만 우리가 만들어가는 시간들처럼 소통에 있어 나름의 답에 조금씩 더 가까워질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시간만큼 우리가 조금 더 경험하고 생각한다면 말이죠. 


우리가 알고 싶은 대상은 소통이니까 우선 소통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면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는 의미가 보입니다. 이 문장을 조금 더 세분화해볼까요. 


우선 '뜻'이 존재합니다. 

여기에서 '뜻'을 우리는 다른 말로 '내가 생각하는 바' 혹은 '내가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소통을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메시지를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생각 혹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을 달리 풀어보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영향력이란 상대방에게 작용하는 힘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보면 소통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생각, 메시지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단어는 "서로"입니다. 

소통이라는 단어는 '나' 혼자만 있는 경우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나에게 말하는 혼잣말이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이를 두고 소통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어려움을 만납니다. 나 아닌 상대방은 '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가 아니라는 건 상대방이 나와 다른 경험과 생각과 배움 등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동일한 상황을 서로 다르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소통에 있어 말하기보다 듣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다름'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이 왜 필요할까를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서로 다른 부대의 군인들을 보며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저씨'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 '아저씨'라는 단어는 지금 당장의 만남에 필요한 호칭이었으나 이후의 어떠한 관계성이 담겨있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다름'이라는 단어를 이해한다는 건 우리가 서로에 대하여 관계성을 가지고 있음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기업이라는 조직 내지 공동체에 모여서 있음을 의미합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한다는 건 우리가 그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가 연결되어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협업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앞의 두 단어를 생각해 보면 '통하여 오해가 없음'은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 메시지가 상대방의 다름을 존중하는 상태를 기반으로 상대방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소통을 이해하는 두 가지 개념을 도출할 수 있을 겁니다. 


1.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 혹은 메시지
2. 다름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함


이러한 개념으로 소통을 생각해보면 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를 있을 듯합니다. 

본 글에서 짚고자 하는 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은 위의 두 가지 요소 이외의 다른 요인들의 개입입니다. 내가 경험이 더 많은데, 내가 더 좋은 학교를 다녔는데, 내가 더 상급자인데와 같은 생각들의 개입은 우리가 소통을 보다 온전히 하는 데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들어본 단어 중 '권력 거리 power distanc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홉스테드 Geert Hofstede라는 분의 이야기이죠. 권력 거리가 크면 클수록 상하 간 소통이 더 어려워질 겁니다. 내가 경험이 더 많고, 내가 더 좋은 학교를 다녔고, 내가 더 상급자인데라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상하의 개념을 기반으로 합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더 잘났음을 생각의 기본으로 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기본 가정은 '다름'을 인정하는 대신 '다름'을 '틀린 것'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하는 리더들을 만나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래 해봐라. 결국 안될걸

거봐 내가 안된다고 했지

해보라고 맡겼는데 거봐 안되잖아


소통을 방해하는 다른 요소의 개입으로 언급할 다른 요인은 심리적 안전감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이런 제도를 시행하자고 제안을 했을 때 이것이 자신에게 '거봐'와 같은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제공될 거라 생각이 든다면 우리는 굳이 말을 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이는 '사후책임'이라는 단어와 연결됩니다. 사후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에 책임질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모습입니다. 심리적 안전감의 부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침묵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최근 종종 들리는 단어로 '조용한 사직 Quiet Quitting'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기업에서 '최소한의 주어진 일만 한다'는 의미라고 하죠. 조용한 사직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물리적인 사직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조용한 사직은 일종의 유체이탈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직장에 갈 때는 잠시 진심과 영혼을 집에 맡겨두고 몸만 가는 모습입니다. 앞서 군대에서 군인이 서로가 서로에게 사용했던 '아저씨'라는 단어처럼 말이죠. 


소통을 잘하고 싶다면 우리는 소통에 필요한 위의 두 가지 요소에 최대한 집중하고 앞서 언급한 다른 요소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소통은 특히나 오늘날 스타트업 조직에서 더욱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소통을 한다면 어쩌면 적어도 우리 조직에 있어 세대차이는 다른 기업들의 관심사에 불과한 것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소통이라는 단어는 단 두 글자이지만 오늘날 무척이나 중요한 단어이고 동시에 매우 어려운 단어이기도 합니다. 지나온 시간에 스스로에 대해 소통을 잘한다고 평가하는 분들은 많이 만났지만 주변에서 그 사람에 대해 소통이 잘 된다고 평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개인차이만큼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요. 홉스테드가 이야기한 권력 거리가 큰 문화에서 살고 있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갓 일병을 달았을 때 처음으로 흔히 말하는 조인트를 까인 적이 있습니다. 왜 맞는지 몰랐지만 그때 했던 생각은 내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것을 내가 저 위치가 되었을 때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개선이 시나브로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기업이라는 조직은,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좀 더 편하고 즐겁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가며 의미를 찾는 것이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통도 그렇습니다. 같이 만들어가 보실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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