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llie Dec 12. 2022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feat. 변화 촉진자로서 HR의 역할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는 단어를 종종 만납니다. 받은 만큼 일을 하는 것, 맡겨진 업무 이상의 추가적인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의 의미를 가진다고 합니다. 이 단어를 이야기하며 어떤 분들은 세대 이슈와 연결 지어 말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코로나 펜데믹이 가져온 새로운 현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관점과 그 해석은 다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는 그 다양한 관점 중 하나로 제가 이 단어를 바라보는 생각을 조금  남겨보려 합니다. 관점을 하나 더 추가한다 정도가 되겠지요. 


헤겔의 변증법

개인적으로 변증법적인 관점을 좋아합니다. 학창 시절 배운 물리 지식을 빌면 작용-반작용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요. HR이라는 일을 하면서 만나는 일들이 많은 경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조직, 사람과 일과 조직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 변증법적 구조에 끌리는 걸 수도 있겠죠. 

인터넷 포털의 백과사전 속에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소개를 잠시 가져와 봅니다. 

헤겔은 인식이나 사물은 정(正)·반(反)·합(合)(정립·반정립·종합, 또는 卽自·對自·즉자 겸 대자라고도 한다)의 3단계를 거쳐서 전개된다고 생각하였으며 이 3단계적 전개를 변증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정(正)의 단계란 그 자신 속에 실은 암암리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단계이며, 반(反)의 단계란 그 모순이 자각되어 밖으로 드러나는 단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순에 부딪침으로써 제3의 합(合)의 단계로 전개해 나간다.
이 합(合)의 단계는 정과 반이 종합 통일된 단계이며, 여기서는 정과 반에서 볼 수 있었던 두 개의 규정이 함께 부정되면서 또한 함께 살아나서 통일된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정(正)의 단계

개인적으로 17년을 HR을 하며 현장에서 살아왔습니다. (정확히 19일이 지나면 '가득 채운 17년'이 됩니다 :)) 그 시간들을 뒤돌아 보면 이미 지나온 시간부터 우리들의 주변에는 조용한 사직이 존재했습니다. 직장인은 늘 가슴 한켠에 사직서를 들고 다닌다는 말이 있죠. 신입사원 시절에는 충만했던 동기가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고 적당히 일을 하거나 주어진 일들을 하는 선에서 일을 한다는 말들도 우리는 제법 오래전부터 하기도 하고 듣기도 했었습니다. 사실은 "암암리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이 표출되지는 않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단계"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 우리는 이전부터 그 모순을 알아채고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아무도 그 모순을 이야기하지 않고 말하는 대신 참거나 원래 현실이란 이런 거야 라고 말을 해왔던 것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오늘날 이러한 주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현상을 보며 기성세대로서 우리들이 많이 당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반(反)의 단계

반(反)의 단계에 이르면서 대사직(big quit),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등의 말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한 일종의 트리거 trigger역할을 한 건 아마도 세대의 변화, 그리고 코로나라는 팬데믹의 영향이 컸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전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코로나 펜데믹이 변화를 촉진하는 트리거 trigger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이들이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수면 위로 올라왔을 주제였지만 그 속도를 더욱 앞당겨 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합(合)의 단계

2022년의 마지막 달을 만나고 있는 지금 우리들을 보면 아직 합(合)의 단계로 이행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코로나가 익숙해지면서 우리가 일하는 방식들은 코로나 이전의 방식으로 어느 정도 돌아가고 있는 듯하고요. 집무실(執務室)과 같은 원격 근무를 보다 보편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보편적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아직은 어려워 보입니다. 사실 대규모 기업들을 중심으로 기존에도 이미 원격 근무 방식이 존재했었으니까요. 


합(合)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

개인적으로 합(合)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은 일종의 균형점을 찾는다는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그 균형점은 서로의 모순을 서로가 인정하고 그 모순들을 최소화하고 상호 보완하는 새로운 형태가 될 수도 있고 두 지점 사이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의 타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태도

합(合)의 단계로 이행하기 위해 우리는 변화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성세대로서 우리들은 기존에 이미 수년 혹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나왔던 경험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정답으로 인식하고 강요하는 대신 그들을 통해 배우는 모습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배운다는 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고 옳은 것을 유지하고 그른 것을 고쳐나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기성세대의 반대편에서 우리들은 기성세대의 경험을 존중하고 그들의 경험에 새로운 생각들을 제공함으로써 그 경험을 보완하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배움은 결국 지금의 우리들에게 낯선 새로운 생각을 마주할 용기와 어쩌면 우리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우리들이 갖추어야 함을 요구합니다. 이를 본 글에서는 변화를 마주할 용기로서 변화에 대한 태도라 표현합니다. 


HR과 변화

"지난 십여 년 간 HR은 정말 변하지 않았다"

어느 기업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했던 말입니다. (덕분인지 인터뷰는 인터뷰로만 끝났습니다. :)) 솔직하게 1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HR은 제가 HR을 시작한 2006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구성원의 세대가 바뀌고 사람의 인식이 변하고 있음에도 그 사람과 인식을 반영해야 할 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변화를 어딘가에서 만들어가는 분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누군가 하지 않은 제도적 변화를 시도했을 때 그 변화의 결괏값으로서 모습에 대해 HR 담당자 스스로도 어느 정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양성이 늘어가면서 그 예측값의 정확도는 더욱 낮아질 테니까요. 

그럼에도 합(合)에 이루기 위해서는 HR의 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변화를 만들어가고 구성원분들이 변화에 함께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역할, 울리히가 제시했던 변화 촉진자로서 역할 말이죠. 17년간 HR실무자로 살면서 개인적으로 HR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인적자원관리가 아니라 구성원과 조직의 성장이 함께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흐름에 맞는 변화를 관리하고 때로는 만들어가는 역할 말이죠. 


2022년을 마무리하는 12월의 12일째가 되는 날에 각 자리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수많은 HR 담당자분들이 변화를 이끌어가는 역할로서 HR을 만들어가실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기록합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사평가, 그리고 HR의 역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