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llie Jan 24. 2023

GMS성장관리시스템 1.0 Intro.

HR practitioner, opellie

주니어 HR실무자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느 HR실무자 모임의 뒤풀이에서 여러 선배님들이 HR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 조용히 듣고 있었구요. 술도 못먹고 딱히 안다고 말할 것도 없는 시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저에겐 무척이나 중요했던 것, 선배들의 경험담을 최대한 듣고 머릿속에 정리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때 어느 분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좋다고 해서 제도를 도입했지만 결과론으로 좋지 못했다고. 만일 누군가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적합한 HR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그때 제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그거 내가 해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한 일종의 숙제였습니다. 


HR실무자로 5년 차를 졸업할 즈음에 인사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시니어 급 HR담당자가 포기했던 프로젝트에 들어가 원래 정했던 기한 내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오픈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다른 HR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와 달랐던 점은 말 그대로 맨 땅을 놓고 설계하여 결과물을 그리고 기둥을 올리고 그 안을 채우는 모든 과정을 전부 수행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에 23개 정도의 서로 다른 산업군의 기업들이 공통으로 사용해야 하는 시스템이라거나 그 중 금융권이 포함되어 있어 프로젝트 중간에 갑자기 규제기관의 말이 바뀌기도 하는 핸디캡(?)도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잊을 수 없는 건 아마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이가 많지는 않으리라는 점에서 소중함,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HR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조금씩 그려 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단편소설들이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들 단편소설이 하나의 이야기였음을 이해하게 된 시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HR을 배우면서 늘 중요하게 들었던 단어가 있습니다. '성과'라는 단어 입니다. 그리고 이 성과는 맥락상 주로 조직의 성과를 의미했습니다. 기업은 주가 되고 구성원은 종이 되어 일종의 상하관계가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존엄이 무너지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왜 일하는걸까?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돌아보면 처음 취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건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시험을 준비한다며 고시원에서 집에서 보내주는 30만원으로 생활비를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사치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고2일 때 IMF라는 게 있었으니까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집에 내려갔습니다. 아버지와 저녁 산책을 나섰고 잠시 길을 걸으며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돈을 좇지 마라" 여전히 집은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이상해보일 수 있는 아버지의 말씀에 아들은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아들인데요" 

처음 취업을 생각할 때는 돈이 목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목적이 강했습니다. 이후 일을 하면서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습니다. 사회생활 첫 해 감사실에서 1년에 대해 주변에서는 대단하다며 그 자리는 전임자, 전전임자 모두 3개월을 못 버틴 자리라며 놀라워했지만 사실 그 1년 동안 저는 버티겠다는 생각보다는 일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HR을 만났습니다. HR을 만났고 사람들을 만났고 일을 좀 더 온전히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경험을 통해 일을 알게 되었고 외부 모임과 공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HR이라는 일을 좀 더 깊게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낸 18년의 시간, HR담당자로서 17년의 시간을 통해 지금 제가 하는 왜 일하는가? 에 대한 답은 '도움'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시절 공부방 등의 활동을 하면서 생각했던 그 단어로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대학시절엔 막연했던 그 단어가 경험을 통해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도움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서 저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제시합니다. 기업과 구성원이 어느 일방의 희생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도와주는 관계를 기반으로 함께 우상향의 직선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름을 성장관리시스템이라 붙였습니다. 성장관리시스템은 단순히 성과를 관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관계로 보면 성장은 성과를 포함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성과가 다소 단기적인 느낌이라면 성장은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집니다. 성과가 다소 물질적인 것으로 그 의미가 해석된다면 성장은 이를 기반으로 질적인 영역까지를 다루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성과가 경영의 관점에서 주로 조직의 성과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성장은 조직을 포함해 그 조직을 만들어가는 구성원과 직무까지 포괄하여 이들이 함께 성장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러한 맥락의 이야기를 실제 현장에서 다양한 리더, 구성원분들과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흥미로운 건 리더분들 중에는 그건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 현실적이지 않아라고 말하는 분들의 비중이 많았고, 구성원 분들 중에는 해보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입장이나 관점, 경험 등에서의 차이가 있겠지만 중요한 건 성장관리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제안하는 제 머릿속에 얼마나 구체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그 그림들을 구현할 방법론으로서 절차, 양식 등의 제도설계가 되어 있는지일 듯합니다. 좋은 이야기, 이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구체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건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합니다. 


제가 하는 HR이 '기업과 구성원의 성장'이라는 방향성을 구체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어떻게 할 것인지와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스템이라는 단어에 조금이나마 적합하도록 그려보려 합니다. 


오랜 시간을 배우려 노력해 왔지만 배우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배운 것에 대해 생각하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건 배우는 것보다 조금 더 어렵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생각을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건 그보다 조금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건 늘 어렵습니다. 좀 더 긴 호흡의 글을 쓰는 건 좀 더 어렵습니다. 


제가 기록하는 글들이 정답이 아닌 HR을 좋아하는 분들의 생각의 실마리가 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합니다. 


진심을 담아 기록합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사담당자로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