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이 만들어지는 과정 1step - 한 아이의 성장기
여기 이제 막 인사발령을 받아 인사팀으로 첫 출근을 한 아이가 있습니다. 평소 HR이라는 일을 하고 싶어 했던 것도 아니고 HR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순환보직이라는 제도에 의해 반 강제로 인사팀 발령을 받았습니다. 인수인계를 받긴 했으나 그 내용은 주로 기존에 이런 양식으로 이렇게 해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전임자로서 자신이 엑셀을 얼마나 잘하는가를 자랑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처음 맡은 업무는 3대 보험과 내근직원 채용이었습니다. 업무를 맡고 보름 만에 사고가 났는데 사실은 전임자가 제대로 하지 않은 일의 결과가 담당자가 바뀌고 나서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었고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는 담당자라는 이유로 책임이라는 단어를 떠안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왜 하는지도 모른 채 2개월가량의 시간이 흘렀을 때 아이는 불쑥 이런 생각을 합니다.
눈치 보다 아무것도 못하고 나가느니, 차라리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부끄럽지 않게 해보고 나가자
생각을 하려면 재료가 필요합니다.
HR에 관해서는 백지상태로 시작했기에 HR에 대한 판단을 위한 재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의 HR community, 오프모임, 책, 학원 등을 통해 마주한 누군가의 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자료, 관련 도서, 노동법 학원과 온라인 강의 등은 이러한 재료를 만날 수 있는 주된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잘못된 정보들도 있었겠지만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재료들을 접하려 노력하였고 재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목적은 판단을 배제하고 최대한 많은 자료를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주변에서 HR담당자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으니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부터 성격이 외향적이지 않다거나 너무 진지하기만 하다거나 목소리가 작다거나 하는 이야기부터 어느 기업의 공채 출신 담당자로부터는 중소기업에서 HR을 시작해서 HR을 잘 모른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때 아이는 그 말들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들의 말이 정말 맞다고 내 자신도 생각하는지, 내성적이라서 술담배를 안해서 중소기업에서 HR을 시작해서 HR이라는 일이 정말 스스로에게 적합한 일이 아닌지. 그리고 스스로 답을 했습니다. 그건 아닌 것 같노라고.
인사시스템 구축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자체 구축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경영진은 자체 구축을 요구하고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그 프로젝트에 아이가 참여하게 됩니다. 아이는 말합니다.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그리고 했습니다.
'할 수 있어'라는 말의 기반에는 지난 시간 동안 모으고 배운 재료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말이었고, 누군가가 만든 자료였고, 누군가의 글이었던 재료들을 꾸준히 보고 생각하고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 누군가의 말이었고 누군가의 자료였고, 누군가의 글이었던 재료들을 재정리해서 지금의 아이의 말과 자료와 글로 재구성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해석
위 이야기에서 아이가 보인 주된 패턴은 정보 혹은 자료를 수집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자료를 수집함에 있어 그 자료를 판단하기보다는 양적으로 최대한 많이 만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수집한 자료들을 보면서 그들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누군가의 멋진 자료를 보며 "이 장표는 왜 이렇게 만들어진 걸까" "이 단어는 무슨 의미일까" "이야~ ppt 정말 잘 만드신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등등의 생각들을 하는 시간입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자료들을 '주어진 학습'으로 표현합니다.
주어진 학습
'주어진 학습'은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기록하고 만들어 놓은 자료들을 만남으로써 하게 되는 학습을 의미합니다. 이 '주어진 학습'에 있어 중요한 건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자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일에 대한 우리 나름의 관점을 형성함에 있어 누군가의 주관적인 생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만나고 그 생각들 중에서 우리가 주체가 되어 수용할 자료들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학원, 특히 박사과정을 만나면서 수시로 들었던 단어 중"Critic"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선행연구논문을 읽고 나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부분에서 보완이나 추가 연구가 필요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는 의견 등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논문들을 마주했을 때 저는 내가 뭐라고 감히 이 분야 끝판왕들의 논문에 critic을 할 수 있을까 했지만 돌아보면 위 이야기에서 아이는 이미 혼자서 나름의 critic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critic을 통해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글, 누군가의 자료에 기반해 아이만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전문성이 만들어지는 과정 2step - 한 아이의 성장기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아이는 스스로 움직여 결과를 만들어내는 시간을 본격적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의 생각과 모아 온 자료, 모임 등을 통해 알게 된 분들의 도움 등을 기반으로 직접 일을 구체화하며 이전까지 머릿속에만 있었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을 정말 알고 있음으로 입증해 내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기존의 공부를 바탕으로 아이는 자신이 MBO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MBO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목표에 의한 관리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책으로 교수님의 강의로 수년간을 알고 있던 MBO라는 이름 말이죠.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MBO를 처음으로 자신의 MBO를 작성해야 하는 순간을 만났습니다. 개념으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얀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라는 시험 볼 때의 진리를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다시 만났습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해석
주어진 학습은 우리의 생각을 자극하고 생각이 다양한 생각의 가지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재료로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주어진 학습만으로는 온전히 말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가 볼 수 있게 말과 글, 그림 등의 방법론을 활용해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크게 주어진 학습에 기반한 재료들 기반으로 생각하고 재정리하고 표현하는 과정으로 연결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재정리하고 표현하는 과정은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을 때 제가 했던 방식도 그렇습니다. 평소 보아왔던 자료들 중 현재 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재료들을 다시 찾고 재정리해서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방식입니다.
그 시작은 '주어진 학습'이었지만 그 주어진 '학습'을 기반으로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일에 적합하게 재구성을 합니다. 이를 개인적으로 '만들어가는 학습'이라 표현합니다.
주어진 학습을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알고 있는' 상태가 된다.
주어진 학습을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알고 있는' 상태가 됩니다. OKR이 좋은 도구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OKR을 어떻게 조직 내에 내재화시킬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최소 수년간 OKR이 강조되어 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오늘날 OKR을 제대로 하고 있는 기업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을 우리는 다른 말로 '직접 경험'이라 말합니다. 직접 경험은 우리에게 다음 두 가지 기능을 제공합니다. 하나는 앞서 우리가 마주한 주어진 학습이 더 이상 주어진 것이 아닌 우리 자신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직접 경험이 이후 익숙한 것이 되어 그것이 다시 주어진 학습의 자리로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직접경험을 기반으로 같지만 어쩌면 다른 직접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개인이 전문성을 확보해 가는 과정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이렇게 하면 짧은 시간에 비전문가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느 책은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는 전문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1만 시간을 삼을 수 있다 보다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할 겁니다. 달리 말하면 개인의 노력에 따라 그 시간이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일을 하면서 위와 같은 패턴의 일 하는 방식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 하는 방식으로서 조직문화
이렇게 우리 조직에서 당연한 것, 해야 하는 것,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일 하는 방식을 개인적으로 조직문화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일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전문성을 만들어갑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가치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하면서 주어진 학습과 만들어가는 학습을 반복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우리 조직에서 우리들이 일 하는 방식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일 하는 방식은 처음엔 어색하고 가끔은 실수를 만나기도 하겠지만 패턴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우리들에게 조금 더 적합한 성공방식으로서 기본 가정(Basic underlying assumption)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일 하는 방식으로서 우리 기업의 조직문화를 말이죠.
여기에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사실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우리는 우리가 혼자서만 일을 잘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조직의 가치로 연결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경우를 종종 만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문성과 더불어 조직과 개인이 함께 성장하는 GMS를 이야기하기 위해 살펴보아야 할 단어는 '협력'입니다. 다음 글의 주제가 되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