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공간과 장소

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들 때 그곳은 장소가 된다.

by Opellie

책이란 참 묘합니다. 어릴 적엔 의무감으로 보아야 하는 책들을 제외한 일체의 책들, 심지어 만화책이나 무협소설 등 마저도, 을 멀리했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순간 책을 읽고 있었고, 같은 종이와 글씨로 이루어진 책인데 유명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펼쳐 첫 페이지를 읽다가 느껴지는 이질감에 바로 책을 덮었는데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우연히 서점을 배회하다 마주한 책에 몰입되어 있기도 합니다.


책을 본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를 만드는 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나 자신의 생각을 더할 용기를 갖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얻는 건 '보다 온전한 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우리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채우고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으로서 책 읽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잠시 책을 놓고 있어도 다시 책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책 소개를 시작합니다.


도서명 : 공간과 장소

저 자 : 이-푸투안

출판사 : 사이


우리가 공간을 <움직임 movement>이 허용되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장소는 <정지 pause>가 일어나는 곳이 됩니다. 움직임 중에 정지가 일어난다면 그 위치는 바로 장소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p19

저자는 공간과 장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공간은 정의와 의미를 획득함으로써 하나의 장소로 변모해 갑니다. p55
공간을 규정해 주는 사물과 장소를 언급하지 않고 경험적 공간에 대해 논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p55

공간은 처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일 수 있지만 그 주어진 공간에 우리들의 생각, 경험을 더함으로써 주어진 것으로서 공간은 처음 주어진 것과 다른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간을 통해 우리는 공간에 익숙해지고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을 구분하게 됩니다. 익숙한 공간은 그렇지 않은 공간에서 만날 수 없는 편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일 하는 공간은 어떠한가요?라는 물음이 남는 순간입니다.


혼자 있을 때 인간의 사유는 자유롭게 공간을 떠돕니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면 동일한 곳에 자신들의 세계를 투영하는 그들을 인식하게 되면서 나의 생각은 억제됩니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고독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p39

MBTI가 'I'로 시작하건 'E'로 시작하건 간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은 나름의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말을 더 많이 하거나 목소리가 크고 누군가는 그 반대에 있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그들이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거나 생각을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HR을 하면서, 팀 리더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항상 강조하는 건 '인간의 사유가 자유롭게 공간을 떠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다양성의 인정과 수용(D&I, Diversity & Inclusion)'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라는 공간이 두려움, 심리적 불안이 존재한다면, 다양성을 판단하는 공통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두려운 공간이 되고 경영자에게는 구성원을 믿지 못하는 조직이 될 겁니다. 우리는 어떤 조직, 어떤 공간을 만들길 원하고 있을까요? 지금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그 공간을 만드는 방향에 있을까요? 매 순간 우리가 고민해야 할 주제 아닐까 생각합니다.


건축은 복합적인 행위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인식하고 다양한 차원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즉 실용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차원, 마음속과 종이 위에 건축적 공간을 그려내는 차원, 이상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형태를 창조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개인의 전부를 헌신하는 차원 등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p114

제가 하는 일로 바꾸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제도를 만드는 일은 복합적인 행위입니다. 그 과정에서 기업과 구성원들을 인식하고 그들이 가지는 다양한 관점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즉 실용적으로 제도가 본래 가지고 있는 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한 장치를 고민하는 차원, 마음속과 종이 이 헤 제도적 공간을 그려내는 차원, 이상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형태를 창조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개인의 전부를 헌신하는 차원 등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올바른 제도를 만드는 일은 고도의 복합적인 사고에 기반한 예술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크기와 거리를 판단하는 기술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분할하는 방식도 복잡성과 정교함에서 있어서 그야말로 천자만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문화 간에는 일정한 유사성들이 존재합니다. 그 유사성은 궁극적으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p133

과거 HR을 하는 우리들은 어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그 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 "우리 기업과 적합하지 않아"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산업, 기업마다의 성격이나 방향성이 달라서 A기업에 적합한 제도가 B기업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이들 서로 다른 산업, 기업에 공통분모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공통분모는 바로 일을 정의하고 수행하여 결과를 만드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경험은 사람이 겪어온 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즉 경험한다는 것은 , 배운다. 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어진 것에 따라 행동하고 그 주어진 것으로 창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중략) 경험은 위험을 극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중략) 적극적인 의미에서 경험을 한다는 것은, 대답하게 낯선 환경에 도전해 알 수 없는 것들과 불확실한 것들에 대항해 실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163

그래서 경험을 한다는 것은 매 순간 변화를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가 더 나은 그리고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길 희망합니다.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HR이 하는 & 해야 하는 역할도 그렇습니다. 기업에서 구성원들이 적극적인 의미에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그러한 환경을 만드는 일 말이죠. HR은 구성원이 일에 대한 경험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그들의 경험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제안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경험관리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의 정신은 일단 탐구의 길로 들어서면 개인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 공간적 도식을 만들어 냅니다. p210

개인적으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직접경험, 간접경험, 생각경험이라는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생각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사람으로서 가지는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확장할 수 있게 됩니다. 직접경험에서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을 재료로 사고를 확장하는 이와 경험을 정답으로 삼는 이의 차이는 생각보다 매우 클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서로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선택은 우리들의 몫일 겁니다.


장소들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가시화될 수 있습니다. 다른 장소들과의 경쟁이나 갈등, 시각적 뚜렷함, 예술, 건축물, 축제와 의식을 환기하는 힘 등이 그런 역할을 하겠지요. 이렇듯 한 장소의 정체성은 삶에 대한 개인 또는 집단의 열망, 요구, 기능상의 변화를 어떻게 극적으로 만드는 가에 따라 생생한 현실이 됩니다. p269

Edgar Schein이 제시한 조직문화의 세 가지 가정 중 '인공물 artifacts'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양한 수단으로 가시화된 장소들 역시 우리 조직을 이야기하는 인공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인공물에 의미를 담아 인공물을 통해 우리는 우리들이 바라는 열망, 기대를 현실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같은 대상도 그 대상에 담긴 의미를 공감하거나 그 의미와 대상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 깊은 심리적인 유대감을 가지게 될 겁니다. 시간이 흘러 그 의미가 훼손된다면 그 누구보다 마음 아파할 수도 있겠지요. 본 책에서의 장소, 김현경 님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람', 그리고 제가 하는 HR이라는 일에 있어 '제도'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도를 만들 때 단순히 그 제도의 외형이 멋진가 가 아니라 그 제도가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이고 그 방향에 부합하게 제도가 설계되어 있는지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people don't buy what you do; people buy why you do it.

Simon Sinek은 그의 TED 영상에서 애플이 그들의 제품을 파는 데 있어 다른 점을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 때문에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 일을 왜 하는가를 기준으로 구매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일 하는 장소, 우리와 함께 일하는 동료와 상급자 등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하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책을 읽으며 남은 과제입니다.


책에 대하여

쉽게 읽히지만 생각보다 쉬운 책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빨리 읽고서 "한 권 읽었어"라고 진도율을 체크하기보다는 천천히 보면서 저처럼 읽다가 잠시의 공백기간을 가지면서 그 책을 음미하는 책 읽기를 해보고자 하신다면 우리의 생각을 더 넓혀줄 수 있는 좋은 책으로 소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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