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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Jul 18. 2023

스타트업 HR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는 2021년 말까지 그 규모의 크고 작음은 있지만 구분을 하자면 소위 기성기업에 가까운 기업들에서 HR을 해왔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차에 들어가 인사팀을 만들고 일종의 기준점으로서 제도들을  만들기도 했지만 산업특성과 모기업이 있었음을 생각해 보면 스타트업보다는 기성기업에 가깝다고 해야 하죠. 그러다 어느 스타트업 COO분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 글을 보고 HR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고 그렇게 스타트업에서 HR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성기업과  스타트업 중 무엇이 좋고 나쁘다를 논하고 싶진 않습니다. 대신 스타트업이 나름 성장이라는 흐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기업 초기부터 가능한 고려를 해야 할 점들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물론 HR의 관점을 기준으로 작성하는 글입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순간은 이미 늦은 상태이다.


HR관점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HR이 다루는 영역 중 오늘날 특히나 강조하는 소통, 조직문화, 다양성, 투명성, 공정성 등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오늘날 이들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지요. 이들이 조직 내 이슈로 드러나고서 이를 대응한다는 건 사실 많이 늦은 시점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건 조직이 감내할 수 있는 임계값을 넘어섰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현상은 일종의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면 아래에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되어 온 관행, 일 하는 방식, 성과에 대한 생각, 공동체로서 기업에 대한  생각 등이 이미  존재함을 말하며 그건  눈에 보이는 현상을 마주했을 때 되돌리기엔  너무 거대한 장애물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걸 보기 위해 우리는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좋은 기업, 좋은 문화는 그냥 놔두면 알아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시로 잘 가고 있는지, 방향성을 잃거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의도적인 노력'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 몇 가지를  기록합니다. 


팃포탯(Tit-for-Tat), 선의를 제시하되 최소한의 울타리를 만들기

어느 스타트업 대표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넷플릭스와 같이 규칙이 없어도 자율적으로 일하고 성과를 내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말까지만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그다음 말도 듣고 말았습니다. 우리 기업 구성원들은 넷플릭스 구성원이 아니라서 대표님이 생각하는 기업을 만들기 힘들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대표님은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이 부족하므로 계속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게 기본 마인드였습니다.

반대의 사례도 있습니다. 어느 스타트업 대표님은 우리 구성원들, 특히 몇 년간 함께 한 구성원들은 그냥 두어도 알아서 잘하는 사람들이라 이야기를 합니다. 몇 년간 성과를 잘 내고 있다고 말이죠. 그런데 디테일을 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개인적으로 연결직무 bridge tasks라 부르는 손이 많이 가고 보이지 않는 일들을 은근슬쩍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는 모습들입니다. 이들 bridge tasks들은 많은 경우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은근슬쩍 넘어갔고 새로 입사한 이들이 조기 이탈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기업 내 일종의 보이지 않는 결계가 만들어집니다. 

팃포탯tit-for-tat을 종종 이야기합니다. 무작정 구성원을 좋게 혹은 나쁘게 볼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응답을 기준으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기업이 선의를 제공했을 때 그 선의가 악용된다면 그다음 기업의 포지션은 선의가 아닌 원칙대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일이라는 매개체로 연결되었지만 하루 8시간을 같이 일한다고 해서 그들을 정말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예측일 뿐입니다.

선의를 제시하되, 그 선의가 악용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울타리는 제도의 모습으로 구체화되며 기본적으로 이는 우리 조직에서 해야 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 할 수 있는 일로 구체화됩니다. 이것들이 잘 만들어지면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제법 괜찮은 조직문화에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최소한의 울타리를 지키기

리더, 특히 창업자나 경영자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구성원도 원칙을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지키는 척하겠지만  실제로는 다른 행동을 할 겁니다. 이를 우리는 디커플링 decoupling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울타리를 지키는 것이 단기적으로 기업에 불리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울타리를 깨뜨리는 선례를 남기면 그 울타리는 점차 무너질 겁니다. 울타리가 무너진다는 건 우리 기업에서 해야 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경계가 사라진다는 걸 말합니다. 


장기적으로 조직의 미래 역량 수준을 높이는 것에 집중하기

스타트업은 사람이 중요합니다. 오래전 회자되던 '1% 인재가  99%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적어도 오늘날 스타트업에서는 유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계속 특정 개인에 의존하다 보면 조직은 어느 순간 기준이 되지 못할 겁니다. 이 상황이 되면 조직은 그냥 조직을 운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의 핵심인재가 정말 인성까지 완벽한 자율적인 존재로서 공동체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 조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될 겁니다. 가장 좋은 건 그 인재가 조직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조직은 해당 인재에서 추가 역할을 부여하여 그가 조직의 성과역량, 학습역량을 높이는 리더가 되도록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추가적인 보상을 지급해야 할 수 있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조직의 미래 역량 수준을 높이는 결과로 연결될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한 의도적 노력은 생각보다 단순할 수 있습니다. 나름의 기준, 원칙을 세우고 그에 적합한 사람들을 모으고 같이 성장하는 환경을 통해 실제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이 단순한 원리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 순간 우리는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모든 스타트업을 뭉뚱그려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마주한 스타트업의 모습을 스타트업 전체로 일반화할 생각도 없습니다. 

어떤 스타트업은 포지션 하나를 채용하기 위해  장문의 문서를 제공합니다. 어떤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래서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에 대해 기업 내에서 많은 고민을 하여 만든 결과물입니다. 수시로 지원자들과 소통하려 노력하기도 하죠. 반면 어떤 스타트업은 두세 줄의 포지션 정의만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첫인상을 만납니다. 

기업마다의 사정과 이유가 있을 겁니다. 혹자는 원래 해왔던 대로 한 것일 수도 있고, 어느 기업은 채용담당자와 리더 사이의 관점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 중 어느 것이 정답이고 옳고 어느 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단 하나의 완벽한 정답은 없겠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는 가치들을 살펴보다 보면 나름 바람직한 방향성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겁니다.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힘든 시기에 '나'는 살짝 뒤로 미루고 '우리'를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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