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이 질문을 받았다면 대부분은 "그렇다"라고 대답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을 잘하고 싶다고 할 때 우리는 일을 잘하는 방법을 찾곤 합니다. 메모의 기술과 같은 방법론을 제안하는 책을 사서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사람들이 일을 잘하게 만드는 묘약은 세상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있다면 이미 대략적인 무언가가 나왔을 텐데 여전히 우리는 이 방법론이 정답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방법론을 알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일을 잘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가치판단의 영역입니다. 그 가치판단은 주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인사평가를 이야기하며 인사평가는 기본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가치판단을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니까요.
간혹 소개드렸던 개인 일화가 있습니다. 다른 팀에서 일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에게 데리고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제안이 왔고 그러겠다고 합니다. 그 친구와 일정 시간 같이 일을 하고 나서 어느 날 그 친구는 저에게 물어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보고 일을 잘 못한다고 말하는데 왜 저는 자기를 보고 일을 잘한다고 말을 하냐고 말이죠.
다른 경우로 인사팀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팀으로부터 팀원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해당 팀장님은 저에게 조용히 오셔서 '미안하다'며 그 팀원이 일을 잘 못하고 실수가 많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저는 그 팀원과 3년을 넘게 같이 일했습니다. 일을 통해 해당 팀원은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판단하기 전에 자신이 판단해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일을 잘한다의 기준을 무엇으로 두고 있는가에 따라 일을 잘하는가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첫 직장에서 HR을 하기 전까지 저는 제가 기간제 근로의 신분으로 입사를 했다는 걸 몰랐었습니다. HR을 만나고 머릿속에 개념들이 들어오면서 그때야 비로소 자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각을 한 시점에는 이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난 뒤였죠. 전임자가 남겨놓고 가버린 과제를 치워야 했고, 무엇보다 HR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일을 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일을 잘하자" 대신 "일을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제대로"라는 단어에는 "혹여나 회사를 나가게 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게 일을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일을 잘 하자' 보다는 '일을 제대로 하자'라는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2006년 HR을 만나고 나서부터 줄곧 스스로에게 제안하고 지키고자 한 가치 이기도 합니다.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우선은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노동법을 공부했고 기존의 프로세스를 배우고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자료들을 최대한 모았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그 지식들을 활용합니다. 이는 말과 글이 행동으로 연결되는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경험들을 통해 더 나은 상태의 경험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다시 경험으로 연결하며 당장 경험으로 연결할 수 없는 생각들은 다시 글 등을 통해 구체화하는 과정을 진행합니다. 제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해온 어찌 보면 딱히 새로울 것 없는 노력들입니다.
당시 우리들이 T-HIS라 이름 붙였던 그룹 통합인사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했을 때 일입니다. 해당 프로젝트 이전에 저는 일종의 무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공채 출신과 중소기업 출신 경력입사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할까요. 프로젝트를 마주했을 때 그분들은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외부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고 말이죠. 당시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아무리 제가 돈을 내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거액을 주고 컨설팅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고 그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해서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프로젝트 종료 후, 인사정보시스템을 론칭한 후 이루어진 회식자리에서 당시 HR상무님은 팀장님들에게 "Opellie가 일을 잘한다"는 말을 건네주셨습니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어느 순간 일을 제법 잘하는 우리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둘의 차이로 기초공사를 이야기합니다. 일을 잘한다는 건 일을 잘했음을 인정받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만일 자원이 제한적이라면 보이지 않는 곳보다 보이는 곳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겁니다. 반면 제대로 하는 건 보이는 곳을 뒷받침하는 보이지 않는 곳부터 제대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을 제대로 하는 건 어쩌면 생각보다 쉬운 길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조금은 사서 고생하는 시간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부끄러움 대신 당당함으로 우리 자신을 마주할 수는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에게 제대로 일을 한다는 것은 부끄럽지 않게 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내 아들을,
두려움 앞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승리 앞에 겸손함을 아는 그러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깨끗한 마음, 높은 목표로서 스스로를 다스리게 하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함에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내 아들로 하여금 마음에 새기도록 해주소
-남계 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