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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Sep 04. 2023

우리는 정말 리더가 되길
원하지 않는 걸까?

"왜 솜을 먹고 그래요""

치과를 갑니다. 그동안 관리를 잘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의사분의 말씀을 듣고 긴 숨과 함께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개인적으로 살면서 가지고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걸  아는 분들은 모두 나에게 스승이다"라는 기준입니다. 대학시절 공부방 활동을 할 때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순수함을 배웠을 때도, 군에 입대할 때 나보다 하루라도 먼저 자대에 와 있던 선임들도, 사회생활 속에서 만나는 무수히 많은 분들도 그렇습니다. 제가 정말 친한 사람들 이외에 말을 함부로 놓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잘 못하거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크고 작은 지식, 경험,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저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의학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를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를 믿고 병원을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치과를 방문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의사'라는 명함 속에 담긴  지식과 경험에 기반한 전문성을 신뢰하고 있다고 할까요. 만남의 시작은 나름 긍정적인 관계를 기대했음을  이야기합니다. 


치과라는 치료가 늘 그렇듯 비용도 비용이지만  여러 번  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의사분이 하는 말들을 만나게 됩니다. 치과에서 일하시는 다른 분들과의 대화라거나 환자에게 치료 과정에서 하는 이야기들이지요. 어쩌면 치과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베드에 누워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있는 게 전부이다 보니 말들을 듣고 싶다거나  의도적으로 듣자가 아니더라도 그냥 들리는 말들이 있겠죠. 흥미로운 건 그 말들을 듣는 시간이 누적되면서 처음 치과에 방문할 때 의사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일 겁니다.


그러다 하나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베드에서 입을 벌리고 얼굴에 덮개가 씌워진 채로 누워있는 제 입에 의사분이 소독약이 묻은 솜을 넣었는데  그 솜이 목으로 넘어가는 일이 발생했고, 저는 거의 본능적으로 일어나 켁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솜을 뱉어냈습니다. 그때  의사분의 말이 귀에 들려옵니다.

"왜 솜을 먹고 그래요"

눈물까지 나며 켁켁거리는 제 귀에는 의사분의 웃는 소리와 솜을 왜  먹냐는 의사분의 말이 들려왔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번 치료를 마치면 다시 이곳에 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환자를 걱정하는 대신 자기 자신에 대한 방어를 먼저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의사분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는 순간이었고 환자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 의사에게 내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사건 이전에도 무언가 개운치 않은 작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본인들끼리 치아를 번호로 이야기하는데 제 귀에 들린 번호와 다른 번호를 이야기한다거나 하는 등의 일들이었고 치아사진을 찍을 때에도 잘못해서 여러 번 찍는 등의, 어쩌면 환자 입장에서 보면 원래 그렇게 찍는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죠. 


'리더'에 대한 기대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일입니다. 국내 상위 대기업에서 HR을 해오신 분이 리더로 계시다는 말에 개인적으로는 많은 기대를 했었습니다. 무언가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만난 첫 날  만난 리더분의 모습은 사무실에서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기대가 무너지는 건 그 장면 하나로 충분했었습니다. 

일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누군가에게 리더의 역할을 부여하지는 않을 겁니다. 경험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리더는 일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 경험이 나름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었음에 대한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가진 경험은 우리들이 그들에게 '리더가 되어라'라고 말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좋은 출발점은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좋은 리더를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경험은 그의 지난 시간이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건 지금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리더'에 대한 인정

이러한 인정은 기업 조직 내에서 공식적인 '리더'의 직책을 부여받는 방식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리더'란 그가 가진 외형이 아닌 그가 가진 지식, 경험,  사고방식으로부터 만들어진 영향력에 대한 구성원의 인정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전달하는 방식의 중요한 소통 도구는 말과 행동입니다. 

위 치과의사분은 외형적으로 의사라는 공식적인 인증을 가지고 있었고, 나름 일정 시간 이상의 치과치료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남의 순간, 즉 병원을 찾아가는 건 이러한 외형적 인정을 기반으로 합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첫 만남에서의 인정은 이후의 만남의 시간을 통해 더 강화될 수도, 의구심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환자의 상태, 안전보다 자신을 먼저 걱정하는 듯한 말과 행동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상대방에 대한 신뢰보다는  의구심을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왜 리더가 되길 싫어할까? - 롤모델이 없다

최근 들어 요즘 우리들은 리더가 되길 싫어한다는 맥락의 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많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런 현상은 단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영역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한 혼란(混亂)스러움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리더라고 불렀던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리더에게 기대하는 것과 다른 모습들이 나타나고, 리더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지고 그러한 리더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더불어 결국 우리 자신도 우리가 의구심을 품게 된 리더의 모습과 다르지 않게 되리라는 걱정, 그런 모습의 우리들을 거부하는 현상이라고 할까요. 동시에 롤모델이라 생각했던 리더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서 갖게 되는 상실감, 배신감 등도 있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리더가 되길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우리가 경험한 리더들의 모습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일 지도 모릅니다. 다른 모습의 리더를 그려보지만 현실적인 한계를 마주하는 일련의 경험들은 결국 우리들이 리더를 하지 않겠다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20년 6월 동료분들이 지어준 닉네임


리더가 된다는 것

리더가 된다는 것은 "리더로서 역할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리더는 팀장을 달고  임원의 직급을 달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꾸준한 노력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의 말과 행동을 통해 구성원에게 영향력을 제공하고 이 과정을 통해 리더는 구성원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될 겁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최종 상태에 도달했음이 아닌 여전히 정상이 보이지 않는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바위, 지형 등을 만날 수도 있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을 헤쳐나가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리더의 모습으로서  롤모델을 우리가 보여줄 수 있다면 리더가 되길 싫어한다는 말보다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는 말이 좀 더 많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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