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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Sep 13. 2024

3. 팀원의 아이디어를 가로챈 팀장에게 배운 것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자

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2007년 7월, 주40h제도가 확대  시행을 앞둔 4월이었다. 당시 나는 우리 팀장님에게 '연차촉진제도'에 대해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드렸다. 아무래도 처음  하는 제도이니까 미리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였고 우리 팀장님 역시 이에 동의하시고 본부장님께 보고를 진행했다. 그런데 본부장님실에서 나오신 팀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셨다.


"우리는 하지 않기로 했어"


그 결론에는 다른 계열사 인사팀장님 영향이 컸다고 했다. 그분이 법대 출신인데 안해도 된다고 말했다고. 내 입장에서 혹은 구성원 입장에서 연차촉진을 하지 않으면 휴가를 쓰거나 수당을 지급하면 되기에 알겠다고 하고 넘어갔고 그렇게  6월말이 되었다.


"Opellie, 지난 번에 네가 말했던 연차촉진, 그거 우리 팀장님이 한다는데?"


2007년 6월이 지날 무렵 계열사 인사팀 팀원 중 동갑내기 친구가 조용히 나를 찾아왔다. 조금 주삣거리며 그는 나에게 자신의 팀장이 연차촉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것도 마치 자신이 미리 준비해서 시행하는 것처럼 보고를 마쳤다고. 불과 몇 개월 전에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그 팀장이었다. 


우리 팀장님은 표현 그대로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정말 좋았지만 바람직한 리더라 말하기 어려웠다. 인사에 대한 경험도  부족했고, 리더로서 조직과 일에  대한 기준도 없었다. 자신의 팀원이 제안했던 일을 못하게 막아놓고는 은근슬쩍 자신이 한 것처럼 포장하는 계열사 팀장에게 우리 팀장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고 계열사 팀장의 연락을 받았다.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난 그의 자리로 가서 그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나에게 제법 논리적인 설명을 하며 자신이 연차촉진을 한 이유를 설명했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자신의 설명에 흡족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계열사 팀장을  보며 난 이렇게 대답을 하고 자리를 나왔다.


"팀장님 하신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팀장님은 그렇게(말하신 대로) 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는 자신이 합리적인 사람이라 말하고 있었고, 나는 그가 하는 말과 실제 그의 행동이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그는 일관되게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을 유지했다. 업무 성과를 인정받으면 항상 팀장인 자신이 잘해서였고,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치면 어김없이 구성원의 실수로 돌렸다. 그는 상급자로부터 인정받는 팀장이었지만 구성원의 존경을 받는 팀장이 되진 못했다. 


배울 점이 많은 리더는 물론 좋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리더를 경험하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도 있다. 우리가 앞으로 일을 하면서, 또 리더로서 역할을 하면서 우리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 모습을 적어도 우리는 하지 말자는 배움이다. 


솔직히 이러한 깨달음을 실제 행동으로 계속 유지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우리들이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이번 한번만 넘어가자는 말을 하는 유혹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쁜 일은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발생하지만 좋은 일은 의도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한다. 난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런 현실을 탓하고 속상해하고 포기해야 할까.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팀장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적어도 우리 자신은 하지 말아야 하는 모습 혹은 해서는 안되는 모습 리스트에 그 모습을 추가하고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리가 사는 삶, 세상이 조금은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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