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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Nov 29. 2024

14. 어라, 웃어?

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공식적인 인사팀장 타이틀을 달기 시작한 건  2018년 1월이었다. 사업시작 3년 차를 맞이하는, 이전에 인사팀 자체가 없었던 기업의 인사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말정산 등 행정업무들도 많고 무엇보다 인사평가를 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인사담당자로서 나에게 인사평가는 연말연시에 하는 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일을 중심으로 한 해를 돌아보는 그래서 더 나은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 그리고 지금 막 입사한 나에게는 지금 이 기업에서의 시간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인사팀장이 왔으니  인사팀장이 인사평가를 진행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고, 내 상급자분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다. 오늘이라도 당장  공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최대한 기존 절차대로 진행하려 하고 있었다. 지난 1년간의  기업경험도, 기존의 평가방식도,  기존 평가를 운영했던 어느 리더의  생각과 의도도, 기존 절차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도,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개념, 절차의  도입은 무리수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절차를 대략 파악하고  인사평가 공지를  하자 A본부장님으로부터 잠깐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사업 초기부터 함께 해왔던 나름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분은 기본적으로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 행동 등을 가진 분이었다. 


"본부장님 안녕하세요."


"인사팀장으로 온 Opellie입니다"


"어서 오세요"


"아직  적응도 안 됐을 텐데 부른 건 인사평가 공지 한 거 때문에 보자고 했어요"


A본부장님은 기존 평가방식에 불만이 많으신 듯했다. 기존의 방식은 인사를 메인으로 하진 않았지만 나름 대기업에서 리더 경험, 즉 평가자로서 경험을 해보셨던 분이 그대로 가져와 운영하고 있었다. A본부장님은 평가의 공정성,  객관성 등을 이야기하며 말을 하다가 순간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나는 최대한 내 말을 줄이고 본부장님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본부장님은 이렇게  말을 건네셨다.


"어라, 웃어?"


나는 본부장님의 이야기를 조금은 편하게 듣고 있었다. 본부장님이 제기한 공정성, 객관성은 인사담당자, 특히 평가제도를 운영해 온 경험을 가진 나에게 그리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익숙함에 가까웠다. 본부장님이 하시는 평가에 대한 쓴소리는 대부분 내 경험 안에 있었기에 나로서는 당황하거나 긴장할 이유가 없었고, 본부장님이 그렇게 말하시는 이유를 나름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이유였다.


"인사팀장, 센 놈이 들어왔네. 허허허"


사실 나는 오히려 이때 당황을 하긴 했다. 이건 내 생각 밖에 있는 반응이었으니까.

그리고 본부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인사  잘 부탁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A본부장 직할 조직의 리더분이 따라 나왔다.


"놀라셨죠?"


"네? 아, 괜찮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사실 웃으시는 걸 보면서 저도 놀라긴 했어요"


팀 리더분이 전한 이야기는 이랬다. A본부장님 기업에 새로 구성원이 들어오면 종종 오늘과 같은 상황을 만들곤 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은 많은 경우 주눅이 들거나 큰소리에 기가 눌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리고 큰 소리를 내는 본부장님 앞에서 편하게 웃으며 말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말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입사 초반 회사생활 적응 과정에서 A본부장님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특히 기업 history와 value chain에 대해서 본부장님이 가지고 계신 지식, 경험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조직 성과 지표를 만들어야 했을 때 사업의 구조와 절차 등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신 것도 A본부장님이었다. 


A본부장님과 같은 말, 행동을 난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 이는 권장할 만한 성질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부정적인  말과 행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특히 인사담당자로서 우리들은 그 다양성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우리가 만나기 싫은 사람,  상황이라도 인사담당자로서 '나'가 있다면 우리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말과 행동, 상황에서도 인사담당자로서 '나'를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위협적이라 생각했던 상황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위 이야기 속 Opellie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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