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내일 좀 내려올래요?"
입사 첫 주가 지나는 목요일이었다. KTX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의 지역의 한 임원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용건은 내일 바로 내려와 달라는 이야기였다. 서울에서 지하철 타는 거리도 아니고 KTX를 타야 하는 거리라 좀 급한 감이 있었지만 일단 알겠다고 말하고 기차를 예매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글쎄요. 내일 바로 내려와 달라는데요?"
인사팀장이 입사해서 해결해 주길 바랬던 고민이 있었을까? 생각하며 다음 날 아침 KTX를 타고 내려갔다.
"어서 오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Opellie라고 합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사무실을 둘러보고 구성원분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임원분과 대화를 시작했다.
"갑자기 내려와 달라고 해서 놀랐죠"
"사실은 서울 본부장과 가까워지기 전에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 하나는 많은 의미를 품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임원과 서울에 있는 임원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 지금 나를 내려오라고 한 건 새로 온 인사팀장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기업 내 권력구조를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임원의 권력이 조금 더 세다는 것은 명확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임원분의 말은 나이스한 표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다른 임원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이 임원분이 나를 급히 내려오라고 한 이유는 임원분과의 대화를 통해 명확해졌다.
'내 편이 되어라'
난 인사를 하면서 사내정치 혹은 편 가르기를 조금은 많이 싫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내정치와 편 가르기는 내가 일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고 궁극적으로 기업과 구성원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건 내 기준으로 올바른 방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임원은 대놓고 나를 보고 '자기편'이 되라고 말하고 있었다.
"제가 개인적으로 '양서류 론'이라고 부르는 게 있습니다."
"?"
"양서류는 그 필요에 따라 물속과 물 밖을 오갑니다"
'인사라는 일을 기준으로 그 필요에 따라 판단하겠습니다"
비유적으로 대답을 했지만 짐작건대 마주 앉은 임원분은 마음에 드는,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으리라.
인사업무를 하면서, 특히 인사팀 리더 역할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몇 번 만났고, 난 그때마다 양서류 론을 이야기하곤 했다. 단기적으로 그 결과는 나에게 그다지 반갑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심한 경우 인사팀장 포섭(?)에 실패한 임원의 모함을 받은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상황을 그리 걱정하지 않는 건 내가 한 일과 말과 행동에 대해 나름의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일을 할 때 은밀하게 하기보다는 열린 상태로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모함이 있어도 사실관계는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모기업 감사실의 정기감사가 시작되었고, 나는 감사팀 첫 인터뷰 대상자로 감사팀과 면담을 했다. 감사팀은 나에게 기업 내 정치, 즉 편 가르기가 존재하는지를 물었고,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인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사내정치 혹은 편 가르기는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사를 하는 조직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감사실이 오기 전에 제가 조치를 취할 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양서류 론(?)은 때로는 나에게 단기적인 불이익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인사담당자로서 나는 여전히 양서류 론을 이야기한다. 그건 내가 하고 있고 좋아하는 인사라는 일에 대한 예의이자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인사를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니까.